마지막음식이되어버린 "잡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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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순(bokding)등록 2007.05.30 16:59

5녀전 첫손주를 안으시며 좋아하셨던 아버님 이모습이 너무도 그립습니다. ⓒ 전복순

지금 저희아버님께선 전주(예수병원)에서 사경을 헤메고 계십니다. 이틀전 아침부터 전화벨이울렸습니다. 낯선 남자의 목소리에서 다급함이 전해져왔습니다.

"여보세요 여기순창병원인데요 며느님이시죠"
"예 무슨일이시죠"?
"지금 아버님께서 괭장히 위독하십니다. 폐쪽에서 숨을 돌리질못해 인공호흡에 산소포화도까지 하셨는데 아무래도 전주 큰병원에 가셔야할것같습니다."

저는 가슴이철렁 내려앉아 손이 떨려 제대로 말도 나오질않았습니다.병원에선 10시40분까지 전주에 도착할것이니 응급실에서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저는 수화기를내려놓고 마음을 진정시키며 출근한남편에게 이상황을 전해주었습니다. 한걸음에 집으로 달려온 남편은 사색이된채 이마에선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병원응급실에 도착하자마자 일분도안되 응급차에서 아버님모습이 보였습니다. 의식도없으실줄알았는데 다행히 의식도 있었고 말씀도 곧잘하셧습니다. 그모습에 조금은 안심이되어 다행이다 싶엇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심한멀미를 하셨는지 영기운을 차리지못하셨습니다. 그래서 휴게실에 모셔다드렸더니 의자에 누우시자마자 곤한잠에 빠지셨습니다. 그간 아버님 병수발에 농사일에 더욱마르시고 수척해진 모습이 어찌나 안스럽던지 한참을 측은지심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아버님께선 계속되는 기침으로 무척 고통스러워 하셨지만, 안고간두살배기명진이에게만은웃음을지어보이셨습니다. 손주만 보시면 행복해하시는 아버님,부디 이렇게 아프시더라도 오래오래 옆에만 계셔주셨으면 하는바램뿐이었습니다.

이것저것 검사에 힘들어하시는 아버님을 뒤로한채 아이들때문에 집으로 와야했습니다. 남편은 아버님곁을 지키다 11시가 다되어서야 피곤한 모습으로 들어왔고 내일출근을 위해 무거운 잠을 청했습니다.

모두가 잠든 시각 12시쯤 전화벨소리에 저는 얼른일어나 병원이 아니기를 바라며 수화기를들었습니다.

"나다 영진에비 깨워서 언능 병원으로 오라고 해라"
'왜요 어머니"!
"아부지가 갑자기 숨이멎어서 폐속에 호스를 끼웠는디...인자가실란갑다"
"아직모른게 너는 애기있은게 오지말고 가만 보내라"

저는 얼른 남편을깨워 병원으로 보냈습니다. 곤히 자고있는아이들때문에 가보지도 못하고 마음만 졸이며 남편전화를 기다렸습니다. 새벽까지 기다리다 언제 잠이들었는지 금새 아침이 되었습니다.

큰아이를 부랴부랴 어린이집에보내고 둘째를 업은채 병원으로 달려갓습니다. 저는 응급실에 계셔야할 아버님모습이 보이지않아 당황스러워 간호사에게 물었습니다. 어제밤 바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고해 3층을로 올라갔습니다.

마침 중환자실쪽에서 어머님과 친척분인 당숙모께서 나오고 계셨습니다. 모두들 벌개진눈으로 저에게 얼른 아버님께 가보라하셨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남편과함께 천천히 들어갔습니다.

아기의손목만한 호스가 아버님입속으로 들어가 고통스러운 호흡으로 헐떡이고 계셨습니다.
저는 목이메여 어찌할바를 몰랐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말씀도곧잘하셔서 괜찮을줄알았는데 지금내앞에 아버님모습은 금방이라도 돌아가실것만 같았습니다.

아버님의 차디찬손을 꼭 잡으니 빗물처럼 쏟아지는 눈물은 그치지않았고.아무리불러보아도 아버님께서는 대답이없으셨습니다.

"아버님 기운차리세요 영진이도 못보셨잖아요"
"형님들도 못보셨잖아요"기운차리세요 아버님"...

옆에있던 남편의 소리없는 눈물은 저를더욱 가슴아프게했습니다.

지난 24일(석가탄신일) 몇달전부터 심상치않았던 아버님병세때문이었는지 이상하게 그날따라 시댁에 가봐야겠다는생각에 우리네식구는 시골집으로 향햇습니다.
저는 특별히 할줄아는음식이 없어서 오랜만에 그래도 만들기 쉬운 잡채를 해드리려고 수퍼에들러 재료를 사들고 갔습니다. 어머님께선 한창바쁜 모내기철이라 논에계셨고, 귀가어두운신 아버님께선 손주들온것도 모른채 늘 앉아계시던 안락의자에서 담배를 피우고계셨습니다.

어머님과 남편은 점심을먹고 모를심으러 갔고 참시간이되어 저는 본격적으로 잡채만들기에 돌입했습니다. 그런데 둘째아이가 자꾸보채는바람에 면을가스불에 올려놓구서 밖으로 잠깐 나간사이 면이 너무 많이 삶아져 불고말았습니다.

그래도 이것저것 양념을 넣고 버무리니 간은딱맞아 먹을만했습니다. 맛있게 해서 드리려했는데 죄송한마음으로 한접시담아 아버님께 갔습니다. 그런데 아버님께서 점심을 간신히 드시고서는 잠에서 깨어나질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창문쪽에 놔두고 아이들과함께 모심는데 참을 챙겨갔고 한참동안 머물다 집으로 왔습니다.

다녀와보니 접시가 비어져 씽크대에 있었습니다. 맛업는 잡채를 며느리 생각해서 다드셔준 아버님께 정말 죄송스러웠고 감사했습니다. 다음엔 더맛있는음식 해드려야지 하는다짐도했구요.

그런데 그불고 맛업는 잡채가 아버님께 마지막 음식이 되리라곤 상상도 않했었기에 그게 더욱 마음에걸려가슴이 미어집니다. 이럴줄알았으면 맛있는 갈비라도 해드리는건데 이제와 후회한들 아무소용업기에 죄송스러운마음 금할길이없습니다.

아버님께선 젊은연세에 과음으로 인해 건강을 일찌감치 잃으셨습니다. 그래서항상 혼자고생하시는 어머님과 자식들뒷바라지를 제대로 못해준게 마음에걸리셨는지 식구들이모두 모일날이면 약주에힘을빌어 자식들에게 미안한마음을 표하시곤했습니다. 오랜시간 마음에 무거운짐을 안고 매일집안에서 외로운 삶을 사셨을 아버님생각에 또다시 마음이 짠해집니다.

서울 형님들이 다녀가시고 저녁때쯤 모를 마저심고 오신다는 어머님을 모셔다주러 남편과저는 시골집을 향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어머님께선 논에 물을 대러가셨고, 남편은 집에있는 휘발유기름을 차에넣고있었습니다. 거실에 있던화초들은 아버님의 손길이 닿지않아 모두둘 시들해있었습니다. 열고싶지않던 안방문을 열었습니다. 늘계시던 의자에 앉아계실것만 같던 아버님모습이 보이지않자 뜨거운눈물은 다시 제볼을 적십니다. 6살 큰아들이 눈치를 채고 엄마 왜우냐며 자꾸 되묻습니다.편히가실날만을 기다리는 이현실이 정말 꿈만같습니다.

마음의준비를 하라는 의사선생님말씀에 다잡았던 마음이 다시무너져내립니다.
아버님 부디 편한곳으로 가시어 못다한 삻은 행복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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