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투표제, 신속히 보완해야 한다

부안군, 경주 방폐장의 악몽...; 근본책임은 정부에 있어!

검토 완료

신봉기(msdr89)등록 2007.05.03 14:53
주민투표의 망령이 또 머리를 든다. 제주 해군기지 유치 여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을 보며, 여론조사든 주민투표든 근본적 책임은 주민투표법을 잘못 제정한 정부에 있음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한다.

주민투표는 주민의 차원에서 입법되어야 한다. 국가가 질 책임을 주민에게 떠맞겨 주민과 지자체들끼리 싸우게 만드는 "국가정책에 대한 주민투표"의 유형은 진정한 주민투표제가 아니다. 저준위방폐장이 아닌, 핵쓰레기 처리장인 고준위방폐장 설치를 고민해야 할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 더 심각한 문제가 닥치기 전에 신속히 입법개선이 이루어져야만 한다.

아래 글은 기자가 그리 오래지 않은 날에 썼던 글이다. 여전히 주민투표제가 문제가 되기에 옮겨 싣는다.



방폐장 유치 주민투표를 보고

Ⅰ. 갈등인가, 화합인가?

방폐장 부지선정을 위해 20년의 세월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1986년에 방폐장 부지선정을 위한 작업이 처음 시작된 이래 경북 울진·영덕, 충남 안면도, 전남 장흥, 인천 굴업도, 전북 부안 등 방폐장 터를 찾아 전국 곳곳을 헤매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2003년 우리 사회를 전면적 대결구도로 몰아갔던 부안군사태를 생각하면, 방폐장 유치경쟁을 서로 앞 다투어 유치하게 만든 ‘주민투표’란 묘책을 왜 이제서야 생각하게 되었을까, 안타깝게 보일 지경이다.

높은 찬성률로 방폐장 유치가 확정된 경주의 환호성 뒤에 가려진 불법·불공정 시비, 탈락도시의 박탈감과 경주 인근 도시의 피해의식 등은 또 다른 갈등의 불씨를 안고 있다. 그동안의 갈등이 다른 모습으로 증폭될지 아니면 승복하며 화합의 모습을 보여줄지는 아직은 미지수다.

Ⅱ. ‘돈 잔치’로 잃는 것들은...

방폐장 유치를 신청한 경북 경주시, 포항시, 영덕군, 전북 군산시에서 지난 11월 2일 동시 실시된 주민투표에서 유권자 20만8607명의 경주시가 89.5%의 찬성률을 보여 유치지역으로 결정되었다. 이 유치 확정으로 경주시는 정부로부터 3000억원의 특별지원금과 연평균 85억원의 폐기물 반입수수료, 한국수력원자력 본사(직원 약 900명) 이전에 따른 연간 42억원의 지방세 수입, 총 사업비 1286억원의 양성자가속기 사업 유치, 경상북도의 지원금 300억원 등 방폐장 유치에 따른 경제적 파급효과는 3~4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주민투표운동 과정에서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현수막들, 정부가 특정지역을 편파 지원한 의혹에 대한 한 탈락도시 시장의 강력한 대응책 강구 의지, 탈락 도시들에 있어서 방폐장 반대단체에 대한 행패 자행 등 그 혼란이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정부와 언론도 결과와 주민의 직접참여에 의한 민주적 결정이라는 것에만 관심이 있을 뿐, 관권·금권 투표 시비는 사실상 외면해왔다는 비판도 있는 실정이다.

방폐장 부지로 선정된 경주 역시 불법 투표 시비 등 후유증으로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비록 지질조건이 양호한 것으로 확인은 되었지만 부지안전성의 문제도 이제 실제적인 조사의 시작단계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천년고도 경주의 이미지는 방폐장 부지 선정으로 ‘방폐장도시’의 이미지를 씻을 수 없게 되었다. 목전의 ‘돈 잔치’ 결과가 부메랑이 되어 경주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알 수가 없다.

Ⅲ. 법적 과제

방폐장 선정 주민투표는 인근 지방자치단체의 참여를 배제하는 등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내재하고 있다.

1. 초지역적 계획결정에 있어 인근 지방자치단체의 참여권 배제

방폐장 부지 선정은 행정결정에 해당하지만 더 정확하게는 행정계획의 결정행위로서의 성격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일반적인 행정계획결정에 있어서는 계획관청에게 광범한 재량권이 허용되지만, 주민투표에 의한 방폐장 부지선정은 주민투표의 결과 그 자체에 행정청이 기속될 뿐 계획관청의 자율성은 전혀 허용되지 않는다. 이는 여러 이익의 정당한 형량이 요구되는 행정계획의 영역에 있어서 특이한 유형의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방폐장 부지 선정에 있어서 가정 선행되어야 할 것은 방폐장 건설계획상 예견되는 피해의 정당한 형량이라고 할 것이다. 이른바 행정계획에 있어서 형량명령(Abwägungsgebot) 내지 정당형량원칙이 그것이다. 형량명령 내지 정당형량원칙이라 함은 방폐장 등 설치를 위한 행정계획을 수립함에 있어 계획고권(Planungshoheit)을 가진 행정청에게는 일반적인 행정처분에서 나타나는 행정재량 이상의, 광범한 계획상의 형성의 자유 즉 계획재량(Planungsermessen)이 인정되는바, 그 재량권 행사 과정에서 공익과 공익간, 공익과 사익간, 사익과 사익간에 이익을 정당하게 형량하여야 할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형량에 있어 조사를 누락하거나 형량에 포함하여야 할 이익을 누락하거나 특정한 이익을 너무 과잉평가하는 등 형량하자(Abwägungsfehler)로 인해 형량명령 내지 정당형량원칙을 침해하게 되면 그것은 곧 위법이 되게 된다.

방폐장 건설계획의 이익형량 과정에서 주민의 이익을 소홀히 평가하거나 환경상 이익을 너무 과도하게 비중을 두어 그릇된 평가를 초래하는 등의 형량하자는 위법인 행정계획이자 행정처분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정당형량원칙 내지 형량명령의 엄격한 준수가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여기서 지방자치단체는 방폐장 부지선정이라는 행정계획결정이 계획고권에 바탕한 계획재량권에 기하지 않고 주민투표의 결과에 의존하도록 하고 있는 것은 전술한 바와 같이 그 자체로서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와 달리, 계획책정권을 갖는 지방자치단체는 당연히 헌법 제117조에 의한 자치행정권의 한 내용으로서의 계획고권을 가질 뿐 아니라 계획고권은 헌법상의 법치국가원리에서 당연히 도출되는 것이기 때문에 계획고권의 침해는 곧 위헌·위법의 문제를 야기할 수가 있다. 이러한 계획고권의 침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인근 지방자치단체에게 방어권 및 참여권(Abwehr- u. Teilnahmerechte)이 보장되는 것이다.

이러한 방어권에서 곧 계획자치단체의 인근 지방자치단체는 자기에게 피해를 야기할 우려가 있는 때에는 계획자치단체의 행정계획에 대하여 계획고권에 기한 방어권을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게 된다. 또한 방폐장 부지선정으로 인하여 침해를 받을 우려가 있는 인근 지방자치단체는 방폐장 부지선정결정에 대하여 정당하게 참여할 권리를 가지게 된다.

주민투표에 의한 방폐장 부지선정 결정과정을 보면 주민투표 그 자체로 인해 부지선정이 확정되었기 때문에 어느 단계에서도 인근의 이해관계 있는 지방자치단체에게 의견을 구했다든지 결정과정에 참여기회를 보장하였다는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중대한 법리적 문제점이라고 할 것이다.

2. 행정편의적 주민투표의 문제

방폐장 부지 선정은 본래 원자력법 등에 의하여 여러 이해관계 있는 개인이나 단체의 이익을 비교형량하여 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방폐장지원특별법(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처분시설의유치지역지원에관한특별법)을 제정하여 지방자치단체간에 경쟁을 유발한 후 그 결론에 정당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것은 너무나 행정편의적인 발상에 근거한 것이라고 본다. 이 점은 인접 자치단체에 참여권·방어권을 부여하지 않는 경우에는 더욱 큰 문제점을 갖게 된다고 할 것이다.

3. 민주적 정당성의 문제

주민투표법 제24조는 투표결과는 주민투표권자 총수의 3분의 1 이상의 투표와 유효투표수 과반수의 득표로 확정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전체 유권자의 17%만 찬성해도 방폐장 부지로 선정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17%의 찬성이 과연 민주적 정당성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3분의 2 이상의 투표와 인접 지방자치단체의 주민들에 대한 투표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3분의 2 이상으로 하더라도 그 결과는 23%인바, 23%는 민주정 정당성이 있고 17%는 정당성이 없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인접 자치단체와의 협조하에 주민투표 구역의 범위를 확대함으로써 인접 자치단체 주민에 대하여 투표권 부여를 적극적으로 고려하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다.

4. 주민투표에 의한 행정결정과 권리구제

정당형량원칙의 일환으로 주민투표에 의한 입지선정방법의 성격과 효과가 문제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민투표에 의한 입지선정결정은 행정주체에 의한 주민간의 원만한 대화를 통한 협의가 이루어지지 못함에 따른 대체적인 법정 결정이기 때문에 그 결정이 곧 모든 법적 쟁점을 해소시켜주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주민투표의 효과는 주민에 관련된 특정한 제도 내지 정책에 대한 찬반 내지 가부를 뜻하는 것에 그치므로 이는 주민투표법상의 법정 절차를 통해 이루어지는 일종의 행정상의 결정에 해당하며, 또한 법률상의 절차의 시행에 결론이 좌우되는 특수한 유형의 행정처분의 성격을 갖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주민투표를 통한 입지선정으로 인하여 재산권의 침해를 받은 경우에는 정당형량원칙의 침해를 이유로 그 권리구제를 주장할 수 있을 것이나(사실상 결론을 뒤집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로 인한 권리침해의 여부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국가배상 및 손실보상의 문제와 관련되기 때문에 논의의 실익이 있다고 본다. 이 경우 법원은 공·사익간의 정당형량원칙을 적용·판단함에 있어 토지소유자의 私益에 비하여 주민투표를 통한 입지선정결정이라는 公益에 그 비중을 보다 크게 부여하여 판단하게 될 것으로 보이며, 그것은 형량명령에 반하는 판단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5. 정보공개의 문제

방폐장 부지선정은 사고발생시 회복할 수 없는 엄청난 희생을 담보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중대한 생존권적 사안에 대한 주민투표에 있어서 정부와 주민은 대등하게 그 찬반에 대한 홍보를 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야 할 것임에도 실제에서는 재원과 정보를 독점한 정부측에 모든 것이 유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재원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신설할 방폐장 관련 정보를 충분히 공개함으로써 반대측에서도 그들의 주장을 알릴 기회가 동등하게 보장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Ⅳ. 국가정책 주민투표, 한번으로 그칠 것인가?

국가정책에 대한 주민투표 규정인 주민투표법 제8조는 본래적 의미의 주민투표의 실질에 부합하지 않는 우리나라 고유의 특별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주민투표는 본래 지방자치단체의 고유사무와 단체위임사무에 있어 주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주요 결정사항에 대하여 주민에게 의견을 묻고자 하는 제도인 점에서 특히 국가정책과 관련하여 과도한 인센티브를 부여하면서 시행하는 것은 당장의 사업에 대한 해결이라는 목표는 달성할 수 있겠지만, 향후 비슷한 사업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방폐장 부지선정에 있어 과도한 인센티브 요구는 앞으로 자치사무에 대한 주민투표에서도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회성으로 그칠 일이 아니라면 특히 정부정책에 대한 주민투표의 시행은 대단히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방폐장 추진주체와 주민간의 갈등은 신뢰의 상실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정부 등 사업추진주체의 신뢰 확보가 시급하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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