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운하, 개발에 대한 유우익 교수의 입장 변화?

대선을 향한 스펙터클 정치에 동원된 지식인

검토 완료

황진태(dchjt)등록 2007.05.03 17:32
지난 4월 27일에 방영된 MBC <100분 토론>에서는 유력 대선주자로 손꼽히는 이명박 전(前)서울시장이 내놓은 경부 운하 계획을 주제로 찬반 공방이 오갔다. 당일 방송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운하 건설 찬성 측 패널로 나왔던 정동양 한국교원대 기술교육학과 교수가 2004년에 개최한 한 토론회에서는 운하 건설에 반대했었던 사실이 한 시민논객에 의해서 밝혀졌다는 점이다. 본고는 그러한 시민논객이 지적한 지식인의 일관성에 대해서 검토하는 목적으로 작성됐다. 이번에 짚고자 하는 이는 정동양 교수와 함께 찬성측 패널로 출연했었던 유우익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다.

=막대한 물동량을 운하로 흡수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유우익 교수는 경부 운하의 건설로 “도로에서는 컨테이너 80%, 철도 10%, 연안 10%의 물동량이 운하로 흡수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한 근거로 경부 운하 건설로 인한 경제적 효과를 연구한 고려대 곽승준 교수의 보고서를 인용했다.(곽 교수의 주장에 대한 반론은 홍종호 교수가 <오마이뉴스> 2007.4.13 기고한 기사를 참고하라.)

유 교수는 지난 1997년 서울대 21세기문화연구회라는 모임에서 발간한 <국토와 산업의 미래상>(집문당 펴냄)에 ‘21세기 한반도의 발전축’이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그 글에서 유 교수는 통일을 대비한 한반도 발전축을 제안했는데 크게 국토축, 연계축(광역축, 해안축, 보조축)으로 나누었다. 내륙에 위치한 “폐쇄형의 자급적 도시를 세계무대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항구와 연결시켜야 한다”(31쪽)면서 “대전-아산항 ; 전주-이리-군산항 ; 광주-목포항/광양·여천항 ; 진주/창원-마산항 ; 대구-경주-포항항”(32쪽)이 연결되는 광역축을 제안했다.

이 광역축은 “인천-서산-군산-목포를 잇는 서해안축과 목포-광양-마산-부산을 잇는 남해안축, 그리고 부산-울산-포항-울진-강릉-속초를 잇는 동해안 축”(32쪽)이라는 해안축과의 연결을 통한 불균형 발전의 폐해를 막는 방안이다.

인류 역사에서 운하라는 발명이 상당히 오래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왜 하필 10년 전에는 운하를 생각하지 못했을 가라는 의문도 들지만 그 점은 차치하더라도 최소한 50년은 내다보아야 하는 남북통일을 가정하여 쓴 글치고는 10년 만에 해안축의 발전을 역설하다가 내륙 운하로 너무도 쉽게 바꾼 입장에 대한 해명은 했어야 하지 않을까?

=지역개발에 있어서 환경윤리에 대한 시각이 변했는가?

이번에는 좀 더 과거로 가보자. 유 교수는 1992년에 발간된 <지리학>제 27권 제 1호에 기고한 ‘지역개발에 있어 환경윤리의 문제’라는 제목의 논문을 기고했다. 1992년이라면 상당히 오래된 논문이지만 다루고 있는 주제가 철학적 고찰인 만큼 인간의 철학관이 쉽게 바뀌지 않는 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후에 별다른 입장 선회가 없었다면 지금 시점에서도 같은 입장으로 파악하더라도 별 무리는 없을 것이다.

본 논문은 지역개발에 있어서 판단의 잣대로 삼는 환경윤리 중에서 자기중심적 환경윤리와 인간중심적 환경윤리 그리고 생태중심적 환경윤리를 검토하면서 유 교수는 생태지향적 지역개발을 주창했다. 생태지향적 지역개발은 “지역개발의 기본 윤리는 이러한 개인-집단, 집단-집단간의 사회적 관계보다 인간-자연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관계에 기초”(31쪽)한다. 논문만을 읽는다면 국내 생태담론 지형에서 유 교수를 상당히 급진적인 위치에 자리한 학자로 오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본 논문은 지역개발에 어떻게 ‘생태’를 현실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 학자라면 반드시 읽어볼만한 주옥같은 논문이다. 그러나 주옥같은 문구는 직접 읽어보길 바라고, 여기서는 유 교수의 말을 빌리면 “국토의 미래상이나 목표의 우선 순위를 생각하는 논리가 벗어나서는 안 될 윤리적인 전제의 몇가지 측면”(37쪽)을 경부 운하와 포개어 검토하겠다. 계속해서 유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인간이 만들지 않았으며 인간의 능력으로 만들어 낼 수 없는 것들에 대한 현저한 파괴를 수반하는 개발은 정당화 될 수 없다.”(37쪽)

여기서 경부운하 총 550km를 뚫기 위해서 파괴되는 국토가 어디인지를 세세하게 밝히는 것 자체가 우스울 것이다. 다만 아주 작은 한 부분만 언급한다면 운하를 놓기 위해서 문경새재에는 25km의 터널을 뚫어야 한다. 확실하게 검증이 되지 않은 경제수치만을 믿고서 자연파괴를 정당화 하는 것은 평소 유 교수의 생태지향적 개발관에 대조된다.

그렇다면 문경새재를 포함하여 경부 운하 건설로 수장되거나 파괴되는 ‘장소’는 유 교수가 주장하던 ‘장소’와 다른 곳일까? 유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복구가 불가능한 문화경관이 개발 사업에 의해 훼손, 파괴되는 것은 최소화 되어야 한다. 그것은 보존 가치가 있는 개별 문화재뿐만 아니라 장소와 지역 전체가 갖는 가시적 경관 및 그 이미지의 개성까지 포함하여 포괄적인 의미에서 적용되는 말이다.”(38쪽)

이명박 전(前)서울시장이 직접 답사를 갔을 정도로 경부 운하의 모범 사례로 삼고 있는 독일 마인-도나우 운하의 환경오염에 대해서 유 교수가 독일 유학을 다녀왔으니 독일을 안 가본 필자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추악한 초대형 시멘트 건조물로 남을 확률이 농후한 경부운하를 후손에게 남겨주는 것이 유 교수가 생각하는 생태지향 개발인가? 그는 이어서 환경파괴를 담보로 한 개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썼다.

“그 빚이 후손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갚을 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면, 그 개발은 무엇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정당화되기 어려운 것이다.”(37쪽)

현재 경부운하 찬성 측의 주장은 생태측면은 침묵하고 경제적 효과만을 뻥튀기하는 수준이다. 이는 지극히 자기중심, 인간중심적인 환경윤리다. 유 교수는 이러한 윤리를 “개발을 통해 이윤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과 회사의 지배윤리”(32쪽)라며 비판적으로 보았다. 그런데 작금의 경부운하 계획이 경제적 성과에만 집착하는 것을 볼 때 이는 도리어 유 교수 스스로 비판한 자기중심적, 인간중심적인 환경윤리로 돌아가는 것 혹은 투항한 것이 아닌가?

=청계천 이후의 시각은?

유 교수가 최근에 펴낸 저서 <장소의 의미>(삶과 꿈 펴냄)에는 청계천 고가도로 철거를 앞두고 2003년에 쓴 글이 있다. 그는 직접 청계천을 답사하면서 청계천상권수호대책위원회 관계자를 인터뷰하고 전태일이 분신한 곳임을 가리키는 동판 등을 언급하면서 얼핏 청계천을 바라보는 균형적인 관점을 취한 듯 보이지만 글의 말미에 다음과 같은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에게 전하는 말을 읽어보면 그 균형에 의구심이 든다.

“이명박 시장님, 누가 시냇물 흐르는 전원도시를 마다하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아직도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도시의 역사를 뒤돌아가서 미래로 가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개발시대를 상징했던 건설CEO가 그 개발시대를 주도했던 도시의 시장이 되어 개천을 살려내는 일은 하나의 역설적 상징입니다. 기왕 맘먹고 착수하셨으니 불과 5.8km지만, 도시의 역사를 다시 쓰게 할 전기를 만드십시오. (중략) 생태 생각만 마시고 문화도 함께 복원하십시오.”(155쪽)

이후 청계천 노점 상인들은 동대문운동장으로 쫓겨났는데 동대문운동장조차도 철거계획으로 갈 곳이 막막하게 됐다. 또한 유 교수는 “생태 생각만 마시고 문화도 함께 복원하십시오.”라고 말했지만 여러 연구논문에서 밝혀졌듯이 생태 생각은커녕 (가령 복원된 청계천을 조명래 교수는 “시멘트 연못”이라 칭했다.) 문화 복원조차도 제대로 안되어 복원사업 초창기에는 시민단체의 의견을 수렴하려는 듯이 보였던 이명박 서울시장은 결국 시민단체와의 관계는 결렬되었고 시장 임기 안에 완공하려는 무리수를 둔 공사일정은 대권 생각만 한 대표적인 스펙터클의 정치로 기록됐다.

유 교수는 윗글을 쓰기 위한 청계천 답사의 목적을 “달라지기 전의 ‘청계천변’의 경관과 그 논리를 기록하려는 것은 전공자로서의 책임감이다.”(148쪽)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점이 밝혀진 청계천의 ‘달라진 후’에 대한 논리를 기록하는 것도 전공자로서의 당연한 책임감이 아닐까. 아쉽게도 이에 대한 비판은 유우익 교수의 논문과 저서를 탐독했었던 어줍잖은 지리학도인 필자보다도 쓴 글이 없다는 점에서 그 ‘책임감’에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자세한 시기는 모르겠지만 이후에 이명박 전(前)서울시장의 싱크탱크로 불리는 국제전략연구원의 원장이 된 유우익 교수에게 이러한 ‘책임감’을 묻는 것은 인정상 무리한 요구일지 모르겠다.

유 교수가 말하듯이 청계천 복원은 “불과 5.8km”였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기존의 유 교수가 주장하던 생태환경 개발과는 전혀 상반된 자기중심적, 인간중심적 환경윤리에 근거한 550km에 달하는 경부운하 계획에서 제발이지 ‘생태 생각만’이라도 하길 바란다.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는 겸손함이 아쉽다

“우리는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의 상대성과 우리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중략) 확실한 것은 다만 우리가 오늘을 살고 있다는 것과 그 삶을 영위하기에 족한 만큼의 개발이 불가피하다는 것뿐이다. 나머지는 다 불확실한 것뿐이다. 불확실한 것을 우리가 모두 결정지으려 한다면, 그것은 만용을 넘어 죄악이다.”(앞의 논문 37쪽)

그는 적어도 논문에서는 이처럼 최소한 지식인의 한계를 언급하면서 겸손함을 나타냈다. 그러나 <100분 토론>에서 유 교수는 같은 국제전략연구원 소속인 곽승준 교수의 ‘불확실한’ 보고서만을 인용했다. 같은 정치성향의 지향체에 몸담고 있는 사람의 논리를 다시 자기인용에 가까운 재인용을 한다면 누가 신뢰하겠는가? 그것도 정치적인 의도가 짙은 경부 운하와 관련해서 말이다. 생태는 내팽개치고 최소한 경제적 효과만이라도 설득하고자 한다면 다른 통계자료를 근거하길 바란다.

“환경윤리는 자연보전의 변호인으로서 지역개발과 경쟁, 또는 갈등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역개발의 패러다임을 지시하는 철학적 전제로 받아들여져야 한다.”(43쪽)

과연 경부운하 프로젝트에서 환경윤리는 철학적 전제로 받아들였는가?

이미 경부운하는 대선과 맞물린 정치적 프로젝트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유우익 교수는 자신이 했던 이 말에 아직 동의하는가?

“정권적 차원에서 졸속한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도 했으며, 지역이기주의와 무책임한 여론에 무력하게 끌려 다니기도 했다. 현시점에서 우리가 새삼스럽게 국토구조 개편을 위한 정책과제를 생각한다면, 이를 냉철히 반성하는 것으로 그 출발점을 삼을 수 있을 것이다.”(유우익, <국토와 산업의 미래상>,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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