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희 부모는 뭘 했느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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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영(azurefall)등록 2007.05.15 10:17

미국에 이민 간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일하는 세탁소. ⓒ 한나영

"그 정도 받았다면 아마 모르긴 해도 하루에 바지를 250벌 내지 300벌 다렸을 겁니다. 하루에 300벌이라…. 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 일이 얼마나 고단한지 모를 거예요."

이곳 버지니아주 해리슨버그에서 세탁소를 경영하고 있는 조아무개씨는 '업계'에서 흘러나오는 조승희씨 아버지의 보수를 가지고 그의 힘들었을 삶을 추측했다.(조씨는 이름과 얼굴을 밝히지 않으려 했다)

조씨의 딸은 이번 사건이 터진 직후 취재차 엄마를 따라 버지니아텍에 가 있던 기자의 딸에게 문자를 보내왔다. "너 지금 어디에 있냐(학교 안 오고)?"

학교에서 자기를 보는 시선이 따갑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어떤 아이들은 대놓고 범인 조씨와 같은 집안이냐고 묻기도 했다고 한다. 사실 그럴듯한 이유가 있긴 했다.

왜나하면 같은 한국인에, 같은 조씨에, 부모 역시 같은 세탁업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조씨네 역시 조승희씨 가족이 살았던 노던버지니아에 오래 살다가 2년 전에 이곳으로 이사를 왔다.

이번 사건은 이곳 미국사람들 뿐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충격이었다. 하지만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에게는 더 충격적인 뉴스였다. 왜냐하면 이민 생활의 신산한 삶을 살고 있는 동포들에게는 이번 일이 결코 남의 일로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네요."

기자가 만난 조씨 역시 처음에는 그냥 입을 다물고 싶어했다. "할 말이 없다"고도 했다. 하지만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사실은 할 말이 없는 것이었다.

"저도 이곳에 온 지 벌써 11년이 되었는데요. 자식에 대한 건 누구라도 장담할 수 없을 거에요. 승희 역시 그렇게 큰 사고를 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기자가 아는 조씨의 2녀 1남(대학생 큰딸과 이번 가을에 대학입학 예정인 둘째딸, 고등학교 9학년 아들) 3남매는 아주 반듯한 자녀들이다. 하지만 고단한 이민 생활을 하는 부모로서는 부모도 모를 어떤 상처를 자녀들이 갖고 있는지 알 수 없어서 걱정된다고 했다. 마치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갖는 것일까.

"대화가 중요하다는 거 저도 압니다, 그러나..."

세탁소 내부 ⓒ 한나영

"이번 사건에 대해 조승희씨 부모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많던데요. 아이가 그렇게까지 되도록 부모는 뭘 했느냐고요. 하지만 그 점에서는 저 역시 할 말이 없습니다. 사실 먹고 살기 힘든 이민자 부모에게는 그런 말도 상처가 됩니다.

저 역시 자녀와의 대화가 중요하다는 거 잘 압니다. 운동도 함께 하면서 학교 얘기, 친구 얘기도 나누고 싶어요. 고민도 들어줘야 한다는 거 잘 압니다.

하지만 꼭두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이민 생활에서는 그런 건 어쩌면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머리로는 알지만 집에 오면 그냥 '쓰러지고' 마니까 자식 얼굴 못 볼 때도 많아요.

조승희씨 부모도 아마 그랬을 겁니다. 영어가 짧으니까 몸으로 때워야 하는 노동을 해야 했을 거고요. 특히 그런 곳에서는 시간당 보수로 돈을 주기보다는 '주급 얼마' 이런 식으로 일을 시키면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루에 거의 10시간 넘게 일을 해야 했을 겁니다."

지금은 어엿한 사장으로 자기 명의의 세탁소를 두 개나 경영하고 있지만 그 역시 2년 전에는 조승희씨 아버지처럼 세탁소에 고용된 일꾼이었다. 그랬던 만큼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심정이 남다르다.

"저는 충분히 이해가 돼요. 승희 역시 우리 둘째딸처럼 8살에 미국에 왔다고 들었는데요, 피부색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환경이 전혀 다른 이곳에서 적응하는 일이 쉽지 않았을 거예요. 그렇다고 부모가 늘 곁에 있어서 함께 해줄 수도 없었을 것이고요. 그가 가졌을 외로움이나 소외감이 정말 이해가 됩니다."

일어나서는 안 될 끔찍한 불행을 겪고 나서야 우리는 비로소 외롭고 소외된 자들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새삼 들먹인다. 이번에도 역시 우리는 그렇게 어리석었다.

"미국 사람들요? 저를 위로해줘요"

"이번 일 역시 무관심과 사랑의 부재가 빚어낸 끔찍한 사건이라고 생각해요. 가정에서도, 그리고 학교나 사회에서도 좀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이렇게까지는 안 되었을 텐데요."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가 경영하는 세탁소의 손님들은 이번 사건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궁금했다.

"먼저 저를 위로해 주지요. 마음이 아프겠다고. 그리고 문단속 잘 하라고 해요. 현금도 잘 보관하라고 하고요. (혹시나 분별없는 행동을 할 미국사람이 있을지 몰라서).

아무 일도 없었어요. 지금은 그냥 일상으로 돌아갔고요. 그래도 미국은 선진국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번 일로 제게 손가락질을 하거나 이곳을 떠나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우리나라 국민 정서상 괜히 제가 쥐구멍이 있으면 찾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일 뿐이지 미국 사람들은 이번 일에 대해 국적이나 인종 따위는 전혀 문제 삼지 않는 것 같아요."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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