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모 사건과 시민사회 원로들의 침묵 카르텔

[주장] 시민방송 이사장 백낙청 선생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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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태(dchjt)등록 2007.04.02 10:03
백낙청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최근 선생님의 실명비판과 논쟁에 활발히 참여하시려는 시도와 계간 <창작과비평>뿐만 아니라 창비 주간논평 등의 시대감각에 부응하는 기획을 만들며 노력하시는 모습에서, 그 당시 세대는 아니지만 중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지난 10여 년 동안 계간 <창비>의 애독자로서 70, 80년대 '젊은 창비'의 활약을 보는 듯하여 미소가 감돌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미소를 찌푸리는 의문이 생겨서 공개편지를 쓰게 됐습니다. 사실 여전히 침묵하고 있는 시민사회 내부와 무심한 언론을 보면 이 글을 쓰는 자체가 부담이 됩니다. 바로 <시민의신문> 이형모 전 대표 사건과 관련된 질문입니다.

선생님께서도 잘 아시겠지만 지난해 이형모씨는 성추행 사건으로 <시민의신문> 대표직은 물론이고 시민단체 직위에서도 물러난다고 스스로 확언했습니다. 그러나 이를 번복하고 <시민의신문> 대주주임을 내세워 <시민의신문>의 신임 사장체제로의 전환을 방해하고 자신의 부실경영으로 <시민의신문>이 떠안게 된 막대한 부채로도 모자라 <시민의신문> 기자들을 상대로 1억8천만원 상당의 역고소까지 했습니다.

세상에는 두 개의 '시사모'가 있는데 하나는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고, 나머지 하나는 '시민의 신문을 외면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시민의신문> 이준희 기자의 말이 문득 떠오릅니다. <시사저널> 사태에 대해서는 발 벗고 지지를 보내던 시민사회 원로들이 <시민의신문> 사태에 대해서만큼은 이형모씨와 친분을 이유로 끈끈한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선생님께 <시민의신문> 사태 해결에 대해서 책임을 묻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선생님께서 이사장으로 계시는 시민방송 RTV에 이형모씨가 부이사장으로 있는 것에 대해서 어떠한 생각과 차후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가 궁금할 따름입니다.

선생님은 얼마 전 월간 <인물과 사상>과의 인터뷰(07년 1월호)에서 시민방송 운영으로 "그동안 많은 시간을 빼앗기고 문필가로서 손해를 보았지만 나름대로의 보람은 느꼈다"면서 시민방송에 대한 애착을 보이셨습니다. 또한 시민방송의 의의를 "시민방송의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고 '분단체제의 극복'에 값하는 통일을 하는 데 상당한 몫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셨습니다.

선생님께서 90년대부터 끊임없이 주창하셨던 화두인 분단체제 극복의 전제조건은 인터뷰에서 언급했듯이 "남쪽의 사회를 바꾸고 시민사회 스스로도 바뀌면서 한반도에 훌륭한 통합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말씀처럼 분단체제라는 거대담론이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미시담론에 대한 고려가 필요한 것은 재론의 여지가 필요 없습니다.

한국사회에서도 80년대 운동권 내부의 가부장적인 체제하에 억눌린 여성에 대한 성차별 쟁점이 90년대에 들어와서야 반성이 시작되고 담론화가 진행중에 있습니다. 그동안 거대담론에 눌려있었던 다양한 계층과 사회적 문제에 대한 당연한 시대적 흐름의 발로이죠.

그런데 다름 아닌 시민사회 원로들께서는 아직까지도 80년대 운동권의 시각처럼 거대담론에 매몰된 건지 성추행 문제 '따위'라는 안이한 생각을 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현재의 침묵 카르텔을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렇게 남쪽이 분열된 상황에서 분단체제 극복은 요원하지 않을까요.

<시민의신문> 기자뿐만 아니라 얼마 전에는 시민방송 RTV 제작진에서도 이형모 부이사장 퇴임촉구 성명서를 냈습니다. 과거 군부독재정권 치하에서 창비는 명확한 적이 설정되어서 폐간을 각오하는 용기를 낼 수 있었던 반면에 친분으로 강고히 결합된 시민사회 진영 내부 동료에 대한 문제제기는 어쩌면 더 힘든 결단과 큰 용기를 필요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민의신문>이나 시민방송 RTV의 설립목적이 본디 시민을 위한 공론장 역할임을 상기한다면 이들 매체가 시민사회 공론장으로서의 책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이번 이형모씨 사건과 관련하여 마땅히 발언하고, 사태를 해결해야 하는 자정능력을 주도적으로 보여주어야 할 것입니다.

인터뷰에서 밝히셨던 선생님의 시민방송에 쏟아 부었던 보람이 깎이지 않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 보람이 무실해지지 않으려면 실명비판 언급 등 최근 선생님의 부쩍 강화된 사회적 발언이 그 어느 때보다 이번 사건에서 절실히 필요합니다. 원로 중의 원로이신 선생님의 발언이라면 현재의 침묵 카르텔을 깨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내 건필과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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