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가 뭔지

딸아이 출국하던 날

검토 완료

송호정(bukak1)등록 2007.01.08 16:37

뉴욕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 입니다. ⓒ 미국사진

저녁 8시 45분. 드디어 출국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항공사 직원이 나와서 딸아이의 이름을 부릅니다. 목에다 비 동반소아 여행이라 표시된 목걸이를 걸었습니다. 이 순간에 함께 배웅을 나갔던 동생이 큰소리로 엉엉 울기 시작합니다. 주변 사람들이 이 안타까운 장면을 쳐다봅니다. 아내는 딸아이에게 동생을 마지막으로 한번 안아주라고 했습니다. 동생을 위로해 주라는 뜻입니다. 제게도 힘든 순간입니다. 이제 딸아이는 항공사 직원에게 인계되고 출국장을 빠져나갔습니다. 만세를 불러 손을 흔들며 딸아이에게 열심히 잘하라고 말했습니다.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들었습니다.

딸아이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우리는 공항을 빠져나왔습니다. 운전대를 잡았지만 인천공항의 밤하늘을 자꾸 쳐다보게 됐습니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차를 도로 한 켠에 세우고 마음을 정리한 후에야 다시 운전대를 잡았습니다.

할로인 데이때 동네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랍니다. ⓒ 미국사진

딸아이는 14시간 후인 한국시간으로 다음날 오전 10시 30분쯤이면 뉴욕 케네디 공항에 도착 할 것입니다. 집에 도착해서도 잠을 못 이루었습니다. 아침에 출근해서부터 안절부절 입니다. 비행기는 잘 도착했을까? 낮선 환경에 불안해 하지는 않을까? 정말로 안전하게 입국심사를 통과할 수 있을까? 만약 통과 하지 못하면? 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괜히 혼자 보냈나? 이 순간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왔습니다. 오전 11시 30분이 넘었는데도 도착했다는 연락이 없습니다. 미국의 처남에게 계속 전화를 했습니다. 드디어 11시 40분이 지나자 무사히 잘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비로소 안심이 되었습니다.

아내와 저는 비행기 속에서 지루함을 달래라고 딸아이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그 내용을 여기에 소개합니다.

사랑하는 나의 딸 예윤에게

사랑하는 나의 딸 예윤에게

너를 혼자서 먼 이국땅으로 보내는 아빠의 마음은 우선 걱정이 앞선다. 처음에는 걱정을 많이 했지만 너의 안전에 관해서 여기저기 알아보고 했기 때문에 안심하고 너를 혼자서 보내기로 결정했다.

오늘 아침에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더구나! 일어나자마자 네가 울었다고..... 그 전화를 받고 나서 아빠도 너의 마음하고 똑같았다.

네가 말했지! 우리 집을 못 보는 게 마음 아프고 엄마, 아빠도 보고 싶고......... 이런게 바로 가족의 사랑이고 가족의 소중 함 이란 거다. 너는 아마도 이번 미국 유학을 통해서 이런 것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고 돌아 올 거다.

막상 미국으로 출국하는 날짜가 오늘이라고 생각하니, 걱정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 혼자서 가겠다고 결정한 네가 대견스럽기도 하구나.

예윤아! 집 떠나면 고생이란 말이 있지 않니? 고생하는 것만큼 열심히 해야 한다. 너도 위인전기집을 읽어 보아서 잘 알겠지만, 우리의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많은 일을 해 낸 사람들의 대부분은 뼈를 깎는 듯한 고통을 스스로 참아내고 어떠한 환경에서도 굴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서 마침내 자신의 목표를 성취해 냈던 것이다. 모든 것은 쉽게 얻어지는 법이 없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예윤아! 아빠가 누누이 강조했듯이 앞으로 미국에 있는 동안은 모든 것을 네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해야 한다. 넌 아마도 어려서부터 엄마, 아빠와 떨어져서 많이 살아서 잘 할 거다.

그리고 학교에 가면 너하고 같은 생김새가 아니고 전혀 다른 모습의 친구들이 너를 기다리고 있을 거다. 주눅 들지 말고 그 친구들하고 친하게 지내기 바란다. 소극적인 자세를 버리고 적극적인 자세로 친구들을 사귀기 바란다. 그리고 마음을 넓게 갖고 많은 것을 배워오길 바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넌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고 미국의 좋은 것만 배우고, 또한 우리의 좋은 것은 그 친구들에게 가르쳐주는 용기도 갖기를 바란다.

아빠가 너를 보내면서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구나! 아무튼 즐겁게 생활하고 열심히 해라. 그리고 숙모, 삼촌 말씀 잘 듣고, 특히 동생들 지원이 오빠하고 잘 지내 거라.

먹는 것은 네 스스로 잘 챙겨먹고, 항상 네 주변을 정리 정돈하는 습관을 갖기를 바란다. 비행기 안에서는 승무원 언니들이 너를 잘 돌봐 줄거다. 공항입국심사까지 항공사 직원들이 다 도와 줄 거다. 입국장에서 묻는 말 또박또박 대답하고, 여권, 입학허가서는 입국심사 때 꼭 필요하니까 잘 챙겨라.

불편한 것은 승무원 언니들에게 말하고, 잠자고 나서 심심하면 책읽고 즐거운 생각하면서 가거라. 공항에는 삼촌이 지원이 오빠랑 마중을 나올거다. 너의 가방에는 미국 삼촌의 전화번호, 주소가 적힌 쪽지가 들어 있으니까 참고 하거라.

아무튼 넌 잘 할 거다. 즐거운 여행이라고 생각해라.

2006. 10. 26. 아빠가
그리고 그 다음 날 아침에 이런 일기가 쓰여 있습니다.

다음 날 일기


가장 지루한 시간이다. 미국 현지시간으로 저녁 10시 02분! 한국시간 아침 11시 02분! 현지시간으로 저녁9시 20분 도착 예정이니까 40분이 흘렀다. 예윤이는 아마 지금 항공사 직원을 따라 가고 있을 것이다. 생전 처음 보는 미국 뉴욕 공항! 입국심사는 무사히 통과했을까? 혹 낯선 환경 때문에 불안 해 하지는 않을까! 이게 부모의 심정인가 보다.

약소국, 언어식민지에 대한 서러움. 그리고 혼자 보내는 부모로서의 무책임함. 이런 복합적인 감정 때문에 이 순간 무지 괴롭다.
지금 이 순간에도 딸아이가 무척 보고 싶습니다. 가족은 이렇게 소중한 것입니다. 그리고 딸아이는 미국생활의 모든 것이 재미있다고 말합니다. 학교생활을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놓입니다. 다행입니다. 완전한 의사소통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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