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하러 나온 사람이 할아버지 할머니 밖에 없어요?"

우발적 마주침을 통해 비형식적으로 일어나는 배움 속에 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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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정(lifenamoo)등록 2006.12.21 16:55
1990년대 중반 이후 시작된 ‘대안교육’ 혹은 ‘대안학교’라는 운동의 흐름은 기존 교육개혁운동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차원의 교육운동이다. 공교육의 공공성 쟁취를 필두로 한 제도개선운동의 흐름에서는 담지하기 어려운, 스스로 ‘탈’ 학교를 선언하고, 새로운 배움의 장을 찾아 떠난 이들의 이질적 접합의 장이었다. 대안교육 10년의 역사는, 끊임없이 줄서기를 강요하는 지배적 담론에서 벗어나 탈영토화한 이들이 자기의 삶과 배움과 만남을 새롭게 배치해 나가는 유쾌한 여정이기도 했고, 험난한 질주이기도 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는 유명한 아포리즘을 빌지 않더라도 일제의 식민 교육으로 시작했던 한국의 근대 교육을 한 세기를 보낸 지금, 새롭게 구성해 보려는 모든 시도는 정당하지 않을까? 주당 40시간의 노동이 정당하다고 강요받고 있지만 전세계의 인구가 하루 3시간씩만 일하면 먹고 살 수 있는 시대라고 한다. 우리가 모색해야 할 새로운 삶의 양식 혹은 문화는 어떤 것인지 문명사적 전환을 사유하는 힘으로 ‘교육’을 재구성해 보려는 시도 또한 필요하지 않을까? 생명, 평화, 공동체, 영성…. 거개의 대안학교들이 교육 이념으로 내세우는 반복되는 키워드들이다. 교육은 가치중립적일 수 없다. 가치 지향적이다. 가치 있다고 믿는 것을 삶으로 실현해내려고 끊임없이 배워가는 구도의 길이다.

마을공동체교육을 이루려는 노력
@BRI@
아름다운마을학교는 ‘마을 공동체 교육’에서 하나의 답을 찾았다. 한 마을에 살면서 물리적 근거를 같이 하고 서로에 대한 애정으로 친구이면서 선생되는 관계를 이루어갈 때 공동체를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런 마을 공동체의 기반 위에서 배우고 가르치는 일상이 ‘마을 공동체 교육’으로 자리 잡아,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가, 학교와 학교 외부가, 일상적인 삶과 공부하는 삶이 갈리지 않는 통전적인 삶과 배움을 이루는 것이다.

아름다운마을학교를 시작한 지 4년이 되었다. 그동안 마을학교를 일구어 왔던 원칙을 꼽아 보았더니 네 가지 정도 되었다. 먼저, 나눔이 아닌 공유를 통한 공동체성의 회복이다. 물질뿐 아니라 시간을 공유하기 위해서 일반학교 교사들이 방학 때 마을학교로 출근을 한다. 또 최저생계비 수준의 급여를 받으면서 감사하며 즐겁게 일을 해왔다. 둘째, 대안적인 생활양식과 몸됨의 회복이다. 촉진제나 외과적 수술의 도움 없이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고, 몸의 자연 치유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공부를 한다. 결혼식, 돌잔치 같은 인생의 중요한 통과 의례를 우리 방식으로 새롭게 만들었다. 셋째, 관계를 통한 성장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친구로 책임 있게 살려는 이들의 모임이다. 주류 시스템에서 소외된 이들로 우리를 호명할지 모르나 그로인해 우리는 새로운 관계와 삶의 양식을 창출할 수 있었다. 넷째, 자율적인 참여와 자기 수련이다. 자율적으로 참여하다보니 자기 수련이 필요하고, 수련을 하다보니 함께 성장해 가는 것이 가능해진다. 마을학교가 터전을 마련하는 과정은 여유 있는 자들의 나눔이 아니라 여유 없는 자들의 십시일반이었고, 이해관계와 무관한 자율적인 참여였다.

아름다운마을학교의 교육 원리

사실 위의 네 가지는 하나다. 어느 것 하나가 빠지면 하나가 되기 어려운, 삶의 중요한 테제들이다. 이것에서 어느 것 하나가 비껴가면 쉽게 이런 삶을 외면하고 떠날 수 있다. 누구도 자신할 수 없고, 그래서 감사로 누리며 살고 있다. 어찌보면 위태한 질주이나 그래서 유쾌한 모험이다. 이런 기반 위에서 아름다운마을학교의 교육 원리들이 나왔다.

첫째, 삶의 실제적인 문제와 삶의 터전에서 분리되지 않은 살아 있는 교육을 지향한다. 얼마 전 영어교육 워크숍에 참석했을 때, 모든 수업을 영어로 하는 이머젼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영어 교육 이론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수학, 과학 같은 수업도 영어로 한다는 발상이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 이면을 보면서 발칙한 상상했다. 198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던 문제, 즉 삶의 문제와 유리되고 파편화된 교육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을학교 아이들이 아침마다 산책을 하면서 온갖 자연 세계와 만나고, 그 만남을 지도에 표현하면서 내가 살고 있는 마을에 대한 애정과 꿈을 키워가는 것이 왜 의미 있는 학습이 되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지난 여름 홍성의 문당리 생태마을로 들살이를 갔다. 이른 아침, 트럭 두 대에 아이들이 나누어 타고 시골길을 달렸다. 아침부터 일하러 나오신 분들께 반갑게 인사를 드렸다. 그러던 중 6살 꼬마 친구가 “왜 일하러 나오신 분이 할아버지, 할머니 밖에 없어요?” 하고 묻는다. 되풀이하는 말이지만, 진정한 배움은 이런 우발적 마주침을 통해서 비형식적으로 이루어진다.

둘째, 마을과 교사, 부모와 이웃, 친구들과 함께 살며 배우며 자라는 관계적 존재로의 성장을 지향한다. 초등학교 사회과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아이들이 학습해 가는 공간 영역을 1학년 가정과 학교, 2학년 마을, 3학년 자치구, 4학년 광역 자치구, 5학년 전국 단위 이런 식으로 계열화해 놓았다. 그럴 듯 해 보이지만, 아이들의 경험은 이렇게 순차적으로 계열화되지 않는다. 또 그 과정에는 인간적인 ‘관계’가 없다. 우리는 우리의 삶과 학교에서 배운 교과서의 지식을 이원화시키는데 너무나 익숙해져버렸다. 마을학교 아이들은 이름 지어 주기 선수들이다. 산책길에 만나는 동네 강아지들은 다 이름이 있다. 사람뿐 아니라 온갖 자연물과 관계를 맺을 줄 아는 것이다. 마을학교와 한 동네에 등대학교라는 청각 장애인 대안학교가 있는데 그 학교 친구들과 매주 수요일 함께 등산을 하고 놀이를 하면서 관계를 맺어간다. 온몸으로 만나기 때문에 장애인에 대한 선입견이 자랄 틈이 없다. 또, 아기천사방의 어린 아기들부터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까지 다양한 연령의 아이들이 따로 또는 같이 만나면서 형님 된 마음과 동생 된 마음을 생활로 배워가고 있다. 마을 골목길과 산책길에 만나는 할머니들과 인사를 나누고, 간식을 함께 나누어 먹을 줄 안다. 관계는 지식으로 배울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살면서 체득되는 것이다.

셋째, 어린이를 대상화하는 교육이 아니라 배움을 통해 부모와 교사, 아이들과 지역사회가 함께 성장하는 주체적인 교육을 지향한다. 마을 산책을 함께 해주시는 할머니, 요리 시간 아이들과 함께 간식을 만들어 주시는 할머니, 요가와 영어 놀이를 진행해주는 학부모, 글쓰기나 운동을 이끌어주는 총각 삼촌. 이런 다양한 만남은 함께 하는 학부모, 지역 주민, 아이들의 꿈을 풍성하게 한다. 5살 꼬마 남자아이의 꿈이 ‘마을학교 운동 선생님’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다른 어린이집하고는 달라 보인다”, “애들이 참 좋아 보인다”. 마을학교에 참가 문의를 하시는 분들의 전해 주시는 의견이다. 마을학교가 마을에 자리 잡고 이런저런 교육 활동을 해나가는 것이 어떻게 지역을 바꾸어 나가는 힘이 될지 기대 반, 긴장 반이다.

넷째, 육아와 교육에서 사회적 공공성과 공동체적 책임의 의미를 묻고 정직하게 실현해내려고 한다. 교육은 사회적인 것이고 공공의 것이다. 우리 사회의 미래를 밝히는 것이기도 하고, 서로의 밥통을 챙겨줄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대안학교가 대부분의 교육비를 학부모의 재정적 지원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은 시기적인 설정이기는 하겠지만 위험한 것이다. 그것은 여타의 사교육과, 내 아이에게 양질의 교육을 시키겠다는, 동일한 암묵적 합의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 아이 때문이 아닌, 우리 지역과 우리 공동체를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을학교가 터전을 마련할 때 부모 된 자리에서 내 자식 교육을 위해 기부를 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아름다운마을학교가 만들어가고 있는 교육과정을 요약해본다면 공동체 교육과정, 가치 중심 교육과정, 생활 교육과정 정도가 될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되고 있는지 다음 호부터 마을학교 날적이를 통해 들여다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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