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을 바꿔가며 끊임 없이 싸움을 거는 보수 신문

-싸움보다 상대방을 인정하는 언론이 되라

검토 완료

곽윤호(khk1208)등록 2006.12.15 16:23
아침에 출근하면 보수 신문 한 가지를 본다. 내가 구독하는 것은 아니고 사무실 근처의 다른 영업장에서 구독하는 것을 보는 것이다. 이 신문, 구독할 때의 일을 안다. 영업장이 새로 들어서자마자 득달 같이 달려와 무료 구독기간과 무료로 스포츠 신문 끼워주기를 제의해 구독확장에 성공한 케이스다.

아침 지하철 입구 등에서 배포하는 무가지(無價紙) 때문에 몇 군데 스포츠 신문들이 문을 닫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회사의 스포츠 신문이 나름대로 잘 나가는 것은 이렇게 끼워넣기가 성공한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스포츠를 구석구석 송두리째 알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나는 연재만화를 보고 보수 신문으로 눈길을 돌려 대충 훑어본다.

보수 신문을 보는 친구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신문을 몇 가지 보는데, 보수 신문도 그 중에 끼워넣는 것은 “균형 감각을 잃지 않고 싶어서”란다. 한 쪽의 일방적인 이야기만 듣고 싶지 않다는 그 의견에 나도 동감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보수 신문은 보는 사람이 많다. 때론 보고 싶지 않아도 오늘은 도대체 무슨 억측의 이야기를 하는가 궁금해 하는 사람들도 있고, 어떤 식으로 구독확장을 했건 많은 사람들이 보는 신문이니 사업에 도움이 되고자 보는 사람들도 있다. 보수 신문들 여러 가지로 득을 보는 셈이다.

@BRI@균형감각은 어디 갔는가
그런데 이렇게 균형감각을 위해 여러 가지 신문을 본다는 내 친구와는 달리 정작 보수 신문은 균형감각을 잃은 지 오래된 것 같다. 처음에 노무현 대통령이 먼저 싸움을 걸은 건지 아니면 보수 신문에서 싸움을 건 게 먼저인지 지금은 기억조차 희미하지만, 그 동안 참 피튀기게 많이도 싸운 것 같다. 보수 신문 사설에 대통령이 그렇게 많이 언급된 것도 군사독재 시설 빼고 언제 있었나 싶기도 하다.
‘손바닥이 마주쳐야 박수 소리가 난다’고, 그 동안 양쪽에서 어떨 때는 별 것도 아닌 문제를 가지고 죽기살기로 싸웠다. 대통령이라도 가만히 있어야 하는데 좀처럼 그러지를 못하는 성격인 것 같아 싸움의 상대로는 그만인 거 같았고, 시비를 거는 족족 응해주니 보수 신문들로서는 아주 훌륭한 싸움의 상대를 만난 셈이다. 보수 신문은 치열한 싸움 덕분에 상당한 반사이익을 얻었고, 요즘은 승자의 기쁨을 누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들의 표현처럼 레임 덕(lame duck)을 떠나 이제 아주 데드 덕(dead duck)이 되지 말라는 표현을 하기도 하니 말이다.
지지율이 10%도 안 되게 떨어진 대통령과 여당에게 드디어 승리를 했다는 확신이 선 때문인지 요즘은 그나마 자제하는 분위기가 잡힌다. 이젠 도저히 회복될 가망성이 보이지 않으니 더 이상 피튀기는 싸움의 필요는 느끼지 않는 모양이다.
양쪽 이야기를 다 들어주는 균형감각은 간 데 없고, 자신들이 마치 수구의 전사(戰士)인 것처럼 착각해 죽음 힘을 대해 밀어 부치는 모습을 보면 어떨 때는 소름까지 끼친다. 시인인 내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보수 신문의 조직력은 상상보다 강한 것 같다고 한다.

싸움의 상대가 바뀌고 있다
정확히 파악한 것인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확실한 승리감으로 이제 한 고비(?)를 넘어선 보수 신문들의 싸움의 상대가 이제는 바뀌고 있는 것 같다. 한 상대를 눌렀으니 다음 상대가 필요한데, 그것이 해묵은 이념논쟁과 노조와 시위대다. 노조 때문에 회사가 망할 것 같은 느낌을 준다든가, 부동산으로 엄청난 이익을 보는 사람에게 이익 본 것의 손톱 만큼 밖에 되지 않는 세금 매기는 것을 “핵폭탄”으로 이야기한다든가, FTA가 주는 상대적 불이익은 외면한 채 시위대 때문에 못 살겠다는 등의 기사가 단골 메뉴로 등장하고 있다. 저변 훑기로 마지막 정지작업을 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한 쪽으로는 빈민들을 위하는 척하면서 한 쪽으로는 노동자가 비판의 타깃이 되고 있으며, 그렇지 않아도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노조의 활동이 위축되는 터에 노조의 포지티브한 면은 아예 무시되고 노조를 회사를 망치는 주범으로 낙인 찍고 있는 것이다.
보수 신문의 이러한 싸움 상대의 변화는, 한나라당의 차선 대선 승리를 거의 기정사실화하면서 수구 보수세력에 반대적인 집단에 대한 타격을 주어 내년 대선에서의 승리를 ‘굳히기’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들 신문은 이외에도 한나라당의 대선 경선 주자들의 분열을 경계하며, 분열이야말로 대선의 승리를 막는 요인으로 보는 것 같다.

상대방을 인정하는 언론이 되라
보수 언론에 대하여 보도에서 특별히 균형감각 등을 요구하는 건 아니다. 신문 자체도 이념을 띨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보수 신문이 스스로 나서 수구세력의 ‘기관보’나 ‘선전지’ 역할을 하며 싸움의 상대를 끊임없이 찾아 나서고 거기에서 반사이득을 보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이념을 가장한 쓰러지지 않는 ‘언론 권력’을 가지고자 함에 따름 아니다.
진실은 여러 개가 아니고 오직 하나지만, 진실을 알려고 접근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주의나 주장은 세상 사람수 만큼이나 다를 수 있지만, 그것은 수용되거나 도태되거나 혹은 알려지기도 전에 소멸하기도 한다. 싸움의 상대를 찾아서 끊임없이 싸움을 걸고, 이겨야 한다고 말하며, 이렇게 되지 않으면 기업이나 나라가 망한다고 독자들을 향해 협박하는 것은 옳은 언론이 아니다. 여론을 만드는 것이 언론의 역할 중 하나이기는 하지만, 그 여론이 형성되고 공감대를 이루는 것은 순전히 국민과 독자의 몫이다.
나 같은 사람은 보수 신문과는 거리를 두고 사는 사람이지만, 현실은 보수 신문의 구독자가 더 많은 것이 사실 아닌가.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 저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고 캐캐묵은 이념논쟁과 사회적 약자들을 향해서 싸움을 또다시 벌여 이득을 보겠다는 것인가. 위기감을 조장해서 ‘언론 권력’을 유지하겠다는 것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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