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여서 여자를 말한다.

금강 오길비의 오길비앤매더코리아의 김효선 부사장

검토 완료

김용민(14dark)등록 2006.12.04 20:09
여자여서 여자를 말한다. -전문-
작년 7월 여성경제인들에 대한 범위가 기존의 ‘여성CEO가 있는 기업의 여성임원’에서 ‘모든 기업의 여성임원’으로 확대 적용한다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 한바있다. 현재 대표적인 여성경제 단체로는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여성벤처협회, 21세기CEO연합, 한국IT여성기업인협회, 한국여성경영자총연합회, 한국여성발명협회 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 협회의 회원들은 대부분 여성CEO들이다. 일반 기업의 여성 임원이나 여성 직장인들은 배제돼있는 상태. 우리나라 10대 대기업기준으로 신입사원 증가 수치는 남성의 경우 4배, 여성의 경우 8배다. 지식정보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여성들의 특징들이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직장 여성들이 증가 하면서 여성정책에 대한 문제점들이 곳곳에서 현실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본 기획물은 과거 여성에 대한 배려가 전무했던 시절을 이겨내면서 기업의 별이 된 여성임원들의 이야기다. 여성임원들이 후배 여성직장인들에게 조언하는 내용으로 구성돼있다.
인터뷰에 참가 한 여성 임원들은 가나다순으로 김효선 부사장 금강 오길비/박미령이사 비자카드코리아/서지희 상무 삼정회계법인/송희경 이사 대우정보통신/이영남 지점장 SC제일은행/장계원 상무 한국복합물류의/장화식 상임고문 LIG손해보헙/황인자 연구위원 서울시청 등이다.

@BRI@
김효선 부사장은 누구인가?

졸업정원제의 첫 주자로서 이화여자대학교 심리학을 전공한 금강 오길비의 오길비앤매더코리아의 김효선 부사장. 캠퍼스의 추억 보다는 졸업해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경쟁 속에 졸업했다. 모 언론사에 시험을 봐 절반의 실패 후 한불종합금융에 도전해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이곳에서 직장생활 2년 만에, 바로 옆 동료와 결혼했고 동시에 퇴사했다. 결혼 2개월 후 한국 진출을 앞두고 있는 맥도날드의 전신인 맥안산업에 취업한다. 전화교환, 비서업무, 세관통관, 구매 등 전방위적인 비서역할을 했다고 그는 회상하고 있다. 3년 후 덴마크의 마케팅전문회사 EAC Korea로 직장을 옮겼다. 이곳에서 약3년 간 일하다 남편의 미국유학에 동반했다. 미국 생활 2년 만에 둘째아이를 임신했고 출산 한 달 전에 한국으로 귀국했다. 1993년 둘째를 낳은 지 한 달 만에 질렛트코리아에서 일을 다시 시작한다. 2001년 마케팅 전문회사인 월드골드카운셀에서 실장으로 일을 이어갔다. 이곳에서 8년간 근무한 후 2004년 현재 있는 금강 오길비의 오길비앤매더코리아의 상무로 입사해서 2006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e-mail : joyce.kim@ogilvy.com

부속품의 하나로 사라지느냐 보석 같은 존재가 되느냐가 문제

할 수 없는 것, 못하는 것에 시간낭비 말아야
남성 직장인들의 능력을 인정하고 배워야

여성임원들이 지속적으로 증가를 하고 있고 여성의 힘이 우리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인적 자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김효선 부사장은 과연 각 회사에서 여성 임원들이 어느 정도의 영향력이 있는지 의문을 던지고 있다. 아직까지는 남성 중심의 기업문화이고 이런 문화에서 여성들이 힘을 제대로 보여 주기는 힘든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여성에 대해 말한다. “업무 능력만 보아도 여성들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 들어오는 여성 인력들은 똑똑하고 깔끔하게 일처리와 마무리를 잘 하고 있어요. 그러나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적인 잣대를 가지고 남성과 여성을 비교해보면 남자들이 갖고 있는 장점, 즉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적극적인 면이 여성에게서는 조금은 부족한 것 같습니다. 이런 면을 억지로 갖으려 하거나 따라 하는 것은 흉내 내기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여성만이 갖고 있는 장점을 더욱 발전적으로 전개해 나가는 것이 바람 직 합니다. 여성만의 장점을 살려 업무에 적용한다면 어느 조직에서나 회사에서 신임 받는 인재로 평가 받을 것입니다. 남성들의 경우 앞에 놓인 어려움을 본인의 성격과 관계없이 사회에서 요구되는 남성역할을 이행하기 위해서라도 공격적 성향을 보입니다. 여성의 경우 간혹 성역할상 도망갈 여지가 있기 때문인지 수동적인 자세를 취하는 경향이 많아요. 그러다 보니 남성들은 공격적인 반면 여성은 수비적인 경향이 많은 것을 종종 봅니다. 현대사회에서 최고의 차별화 내지는 생존전략은 '선택과 집중'이라고 생각됩니다. 할 수 없는 것, 잘 하지 못하는 것에 시간낭비 에너지 낭비를 하면서 좌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에 자신의 최선을 다 해야 한다는 것이죠. 과감하게 못하는 것은 인정하고 잘하는 사람의 도움을 받고 협력해 최고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 이시대의 인재상이라 생각합니다.”
그는 또 남성들과 서로 보완 할 수 있는 면을 찾으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속성인 세심함, 다중적 능력, 어휘력, 대인관계 등등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야 합니다. 이를 투철한 직업정신으로 연결시켜 기업의 일원으로 공헌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냉정하게 생각해서 현대의 사회에서 살아남는 사람은 수비적인 사람 보다 공격적인 사람이 살아남아왔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런 공격적인 사람만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수비를 조화롭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살아남을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상대와 싸워 이기기 위해서 수비는 기본기에 해당하기 때문이죠. 또 이런 기본기 위에 뛰어나고 깔끔한 업무능력에 공격적인, 즉 도전적이고 피하지 않는 자세가 더해진다면 기업이 원하는 인재의 이상형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사회에서 일하는 남성과 여성은 서로 싸워야할 존재가 아니라 서로 보완하고 서로 밸런스를 맞추어가야 합니다. 남성과 여성은 분명 다른 존재들이며 남성이 여성적인 것을 또 여성이 남성적인 것을 바꾸어서 할 수은 없는 노릇이죠. 간 혹 여자 후배들 중에 당차고 남 다는 업무능력평가를 보여 자타가 인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성들은 이럴 때 일수록 특히나 잘난 척 하지 말고 겸손해져야 합니다. 간혹 잘난 척하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에만 남성에게 의지 하려는 성향과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나의 일에서는 남자는 필요 없어’라고 생각하는 직장이 있다면 크게 착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성 직장인들이 남성 직장인들의 능력을 인정하고 배우고자 할 때에야 비로써 여성의 경쟁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자여서 경쟁자를 여자로만 국한시키는 것도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 입니다. 일에 있어서만큼은 남녀를 떠나 순순한 능력으로 경쟁자를 찾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힘으로 씨름을 하지 말라.
유리천장은 여성의 능력 등과 관계없이 여성이 관리직에 오르는 것을 막고 있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뜻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제도상의 차별은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유리천장은 남성 중심적 기업문화에서 줄을 서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것이다. 보직을 줘도 변방 또는 지원업무를 하는 부서나, 줄을 잘 선 남자 관리직이 꺼려하는 분야에 여성관리자로 앉히는 것이 우리의 유리천장이다.
김 부사장 역시 회사에서 위로 올라 갈수록 여성의 숫자는 줄고 남성의 숫자는 많아지는 것을 절감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여성의 경우 회사의 임원이라 하더라도 얼마나 많은 권한과 결정권이 주어지는 지 비교해 보고 싶습니다. 아직까지는 우리 사회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너무 작은 것 같아요. 또 여성이 아닌 임원의 입장에서 말을 해도 여성의 의견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라든지 남성임원이 여성 임원의 존재 자체를 불편해 하는 경우를 가끔씩 느끼곤 합니다. 이것이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인 것 같아요. 지난 20년간 여자로써 직장생활을 해오면서 터득 한 것이 씨름전술입니다. 씨름은 절대 힘으로 승부를 내는 것이 아니고 기술로 승부를 낸다고들 합니다. 무대보로 남자들 세계에서 밀려나지 않으려고 있는 힘 다주고 두 다리로 버틴다면 그냥 한 번에 나가떨어지기 쉽습니다. 여자들만의 노하우가 있어요. 양보가 곧 그 비결입니다. 두 다리를 다 담구지 말고 한쪽 다리만 담구었다 뺏다 할 수 있는 요령이 필요해요. 조금 비열 하게 보일지는 모르지만 롱런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 합니다. 맞서서 싸우는 것 보다 살짝 피해 가는 것이 여성들에게는 현명한 처신이라고 판단해요. 또 남자직원들이 여성 임원인 나를 불편해 하는 경우를 가끔씩 느낍니다. 남자들만의 세계에 여성임원이이 나타남으로 분위기가 썰렁해지고 엉뚱하게 흘러가는 것을 경험 한 적이 있어요. 이럴 때는 살짝 피해 주는 것이 현명 할 때가 있더군요.”라고 말했다. 여성이 비겁하게 피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전략과 전술 차원에서 묘수를 부린다고 생각하라는 충고다. 남자친구, 남편, 아들 다 남자인데 여자들에게 꼼짝 못하는 면을 상기하라고 덧붙였다.

출산 육아로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
앞으로 우리나라는 남성 중심 또는 여성 중심의 사회가 아닌 양성 중심의 사회로 진화 할 것이고, 이를 대비해 각 남녀의 특징대로 맞는 업무를 개발하고 대비해야 한다고 김 부사장은 주장한다. 그에게 여자여서 여자를 차별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하는지 들어보자.
김 부사장은 겉으로 드러내기 보다는 마음속으로 차별을 많이 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솔직하게 말해서 주부가 한국사회에서 직장생활을 잘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프로페셔날 하자, 공사구분하자 하면서 이걸 명확하게 선을 그을 수 있는 한국의 주부직업인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 듭니다. 여성들의 힘들어하는 여러 가지 면은 안쓰럽기도 하지만 솔직히 윗사람으로 배려를 다 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같은 여자이기에 앞서 회사에서는 조직의 장이라는 입장에서 그렇습니다. 후배 여성 직장인들이 프로페셔널 하지 못하고 공사구분 못할 때의 모습을 자주 봅니다. 직장에서는 전문직장인으로 생활을 하고 사적인 것은 퇴근 후나 쉬는 날 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여성의 고충은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여성들의 경우 코낀 것이 너무도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성들 보다 넘고 극복해야 할 산이 너무 많다는 말이지요. 여성들의 이런 면은 안쓰럽기도 하지만 솔직히 윗사람으로 여성들의 이런 면이 한 조직을 이끄는데 있어서 많이 힘든 부분이기도 합니다. 여자라서 차별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한 팀을 이끄는 메니저로서 손익을 따져 봤을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여성이 넘어야 할 수많은 산에 대해 그는 “국가적 복지정책에 기대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억울하기는 하지만 여성이 감수해야만 할 부분입니다. 그리고 여성 직장인들의 가장 큰 걸림돌인 출산과 육아문제는 모성으로 감수 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앞으로 워킹맘의 시대가 열릴 것은 자명합니다. 그래서 출산 보육 등으로 회사에서 불이익을 받는 것은 앞으로 많이 개선 되겠죠. 그래도 만약 불이익을 받는 다면 불이익의 대가로 사랑스런 아이들을 얻었다고 생각하는 것도 하나의 위안이 되지 않을 까 생각해요. 아직까지는 출산 보육으로 불이익을 받을 수박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 현실을 뛰어 넘기 위해서는 모성으로 버티는 방법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직장생활을 하는 남성들의 경우 인내심이 강한 것 같아요. 한 집안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강한 책임감 때문에 버팁니다. 오늘을 살고 있는 40~50대의 중년 남성들을 보면 이런 책임감과 인내심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삶보다는 가정의 삶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을 볼 수 있어요. 또 20~30대의 남성들을 보면 결혼하기 위해서 최소한 집 한 체 정도는 마련해야 한다는 생각과 승진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 보여요. 그 때문인지 강한 정신력과 패기를 볼 수 있습니다. 여성 직장인들도 이런 면은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배우려 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라고 충고를 했다.

사무환경에 대한 적극적인관심과 장기전 대비해야
직장 여성들이 특히나 신경 써야 할 것이 직업의식과 책임감을 바탕으로한 주변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김효선 부사장. 그는 앞으로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이 공생 공존 하는 시대가 열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또 10년 후에는 관심과 이해의 리더십이 강한 여성들이 주목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보통 직장 생활 5년 정도 된 여성들에게 조언을 하고 싶습니다. 장기적 관점에서 주변에 대한 관심과 이해의 폭을 더 갖으라는 것입니다. 5년 정도 된 직장인들은 조직생활의 기쁨과 슬픔, 좌절 등을 나름대로 겪은 연차입니다. 또 이직과 퇴사가 많고 육아 문제가 걸려 있는 때죠. 수많은 부속품의 하나로 사라지느냐 아니면 보석 같은 존재로 자리매김 할 것인가가 결정되는 연차이기도 하죠. 보통 차장급에 해당하는데 사무실 주변 환경에 관심을 갖고 적응 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요즘 직원들을 보면 남녀를 떠나 개인적인 기본 지식은 대동소이하게 출발한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예외는 항상 있지만 그러나 연차를 거듭할수록 달라지고 능력의 차이가 나는 것은 장기적으로 생각 하느냐에 따라서 인 것 같습니다. 또 업무 능력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직무 환경을 얼마나 잘 파악하고 대응하느냐 입니다. 각자 맡은 업무에서 1인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여기에 주변의 이해가 더해 져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주어진 업무만 봐서는 안 됩니다. 상사의 스타일, 업무의 목표, 다른 직원들간의 관계성 업무의 진행상황 등등에 관심을 가져야 하죠.”
김 부사장은 이어 직장의 의미를 찾는 여성이 기업에서 인정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업계에서 존경받는 리더들에게서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각자 그들은 스타일과 성취는 달랐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각하고 주변에 대해 관심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비즈니스는 사람에 대한 이해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10년 뒤 이런 이해의 리더십이 각광을 받을 것은 자명할 것입니다. 요즘은 모든 후배 여성들이 회사를 그냥 결혼 전에 한때 다니는 곳으로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많이 고민하고 생각하고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아직도 쉽지 않은 과정인 것 같아요. 전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부 여성들의 경우 회사를 생각 없이 다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는 이러서 말한다. 직장에서 의미를 찾으라고. “회사를 단순히 월급받기 위해 억지로 다니는 것 같은 이런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 물어보고 싶어요. 단순히 월급봉투만 바라보고 다니는 것인지, 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지, 모든 직장 여성들은 한번쯤 생각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커리어우먼, 성공한 여성, 인정받는 여성, 등등 추상적인 대답은 누구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추상적인 것 말고 자신의 현실 속에 직장의 의미를 찾고 발견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 입니다. 이런 의미를 찾은 여성이 앞으로 10년 뒤를 이끌 리더의 제목이라 생각 합니다.”

워킹맘은 기업의 성장 동력원이 될 것.
한국은 지금 저출산과 고령화라는 병마 앞에 서있다. 아직까지는 그 병의 증상이 나타나고 있지는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몇 년 만 지나면 그 병의 증세로 몸살을 앓을 것이다. 첫 증상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 아마도 인재수급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확실한 천연 자원이 없는 대신 풍부한 인적자원으로 지금까지 성장해 왔다. 그러나 인구가 줄고 학교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메킨지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급격하게 인구가 감소하고 있으며 이는 인력 수급의 문제로 연결 될 것이라고 발표한바 있다. 인력난을 타계하기 위해 외국의 인력을 수혈하거나, 주부인재를 활용해야 할 것이라는 전망도 했다. 그러면서 외국의 인재를 활용할 경우 그들은 언제든지 자신의 본고장으로 빠져 나갈 수 있는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서 교육열, 치맛바람, 부동산 등을 주도하는 여성들을 기업의 인재상으로 물꼬를 터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이들의 경우 많이 배웠으면서도 집에서 전업주부로 있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아직 발굴되지 않은 인재 수급원이라는 말이다. 이를 위해 앞선 기업들은 벌써부터 주부사원에 대한 배려 정책들을 펴고 있는 실정이다. 김 부사장은 이에 대해 어떤 논지를 펴는지 잠시 들어 보자.
그는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여성에 대한 정책은 말 그대로 격세지감이 느껴집니다. 10 년 전에는 마케팅이나 영업부서에 여성 매니저급이 눈에 띌 정도로 적었어요. 여성의 모든 행동이나 능력이 단골 안줏감으로 남성들의 술자리에 오르곤 했었죠. 그런 것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눈감던 시절에서 지금은 젊고 능력 있는 여성 중간관리자급들이 마케팅이나 영업의 도처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또 부당한 평가에 대해서는 당당하게 자기 입장을 밝히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이는 곧 여성인력의 능력신장에서도 기인하겠지만 사회나 회사의 정책 변화도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앞으로의 10년은 물론 더 먼 미래를 볼 때 더욱 가속도가 붙을 것입니다. 능력 있고 회사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의 경우에는 성별을 구분하지 않고 능력에 맞는 대우를 받을 것입니다. 이것은 잠깐 불다 마는 바람이 아닐 것입니다. 기업은 경쟁에서 이겨야 합니다. 보다 발전 및 성장한 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성공엔진으로 능력 있는 인력에 대한 확보와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슈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선진기업의 경우 이미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의 일방적인 정책보다는 기업의 needs에 의해서 기업의 차별화 전략에 따라서 여성복지 정책은 발전 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라고 말했다.

아이들이 태어 날 때부터 엄마는 일하는 사람이었다.
평생직업은 있어도 평생직장은 없다는 말을 생각나게 하는 김효선 부사장은 비록 여러 회사를 옮겨 다니기는 했으나 늘 마케팅 업무만을 담당해왔다. 현재 큰 아들 현우(18)와 딸 성원(14)의 엄마와 오길비앤매더코리아의 부사장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출산·보육을 어떻게 해결 했을지 들어보자.
큰 아들을 임신하기 전 그는 맥안산업의 사장으로부터 ‘1호 지점을 오픈 할 때까지 임신을 연기해 달라는 부탁’을 자주 들었다고 한다. 1호점을 오픈하고 임신한 그는 출산임신 내내 몸이 많이 안 좋아 출산과 동시에 사직의사를 전달했다. 여자가 직장생활 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나름대로의 각오가 서 있었다고 한다. 그는 “당시 사장님은 아이 낳고 건강을 회복하면 다시 회사로 돌아오라는 말을 했었어요. 그러나 기약 없는 휴직을 할 수도 없었고 계속 사직을 고집했지만 결국 회사의 따뜻함에 마음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회사에 무한정 유급휴가를 받기는 것이 미안해서 건강이 회복될 때까지 무급휴가를 받는 것으로 회사와 의견을 절충했었죠. 출산에 관한 정책이 없는 때였고 회사의 사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무급 휴가를 3달 받고 출산했어요.”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큰 아이는 무급 휴가를 받아서 비교적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둘째는 일 때문에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했고 서로가 정을 주고받을 기회도 많이 없다 보니 서로 서먹서먹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이들의 육아는 어머니와 이모가 많이 도와주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둘째는 엄마보다도 할머니와 이모를 더 찾았다고 한다. 심지어는 퇴근 하고 집에 와 딸아이에게 팔을 벌렸을 때 자신에게 달려오지 않고 이모에게 달려가는 것을 보고 많이 섭섭했었다고. 그는 “딸아이와 시간을 많이 못 보냈고 모녀간의 정이 없었어요. 그래서 딸아이가 5살 되었을 때 2달간의 휴가를 얻어 딸아이와 단둘이 하와이로여행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서로가 많이 서먹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에 대한 정이 싹트기 시작했어요. 한국에 돌아 와서는 여느 모녀관계보다 더 절친한 사이로 지낼 수 있었죠.”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에게 아쉬움과 미안함은 남아 있다고 그는 안타까워하고 있다. 김 부사장은 “아이들을 위해 학원을 찾더라도 사전 지식이나 정보가 없어 최상이 아닌 차선의 이부리그의 학원을 선택했던 것 같았어요. 아이가 못하면 못하는 데로, 잘하면 잘하는 데로 그냥 내버려 두었던 것 같아 후회스러워요. 아이들에 대해 알면서도 못해 준 것 같고 못해주는 것에 대해 항상 핑계 거리를 찾았던 것 같습니다. 내가 잘 안 해줘도 스스로 잘 자라길 바라는. 즉 투자와 노력 없이 좋은 결과만 얻겠다는 도둑 심보를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엄마의 손길이 덜 가는 환경이었고 아이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그러다 보니 아이들의 독립심이 굉장히 강해 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독립심이 강한 것이 엄마로써 어떨 때는 섭섭하고 아쉬울 때가 있다고 한다. 아이들이 엄마에게 기대주었으면 하는 문제에서 예상 밖의 행동으로 아이들이 스스로 문제 해결 해 버리면 엄마로써의 존재감마저 흔들리기도 했다. 김 부사장은 엇박자 사랑인 것 같다고 말한다. “이럴 때면 아이들이 엄마에게 문제해결 할 수 있는 기회를 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죠. 아이들이 태어 날 때부터 엄마는 일하는 사람으로 각인 돼있었어요. 몸과 정신이 많이 자란 아이들은 이제 내가 집에 있으면서 간섭하면 자신들 삶에 끼어드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 같아 아쉽고 섭섭해요. 하지만 일하는 여성으로 감수해야 할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봐요.”


캠퍼스 추억보다 보이지 않는 경쟁만 기억나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생들의 반정부대모가 너무 심해 입시가 미뤄질 것이라는 철없는 생각을 했다고 말하는 김 부사장. 그의 대학 시절과 사회의 첫 시작은 어떠했을지 한번 들여다보자.
고등학교 시절부터 막연하게 심리학을 전공 하고 싶었다는 김 부사장은 대학진학을 할 때 남녀공학인 GK대학에 가고 싶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대학에 가면 ‘학생들이 막걸리만 마시고 공부는 뒷전이고 무분별한 음주문화와 남성위주 문화의 영향으로 남성화될 것’이라 말하던 주변 사람들의 걱정과 우려 때문에 이화여자대학교 심리학을 선택했다. 그는 “대학교 시절의 기억은 공부보다는 아무 생각 없이 학교만 오고갔던 기억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양가집 부잣집 딸들이 다니는 대학교라는 인식이 있었죠. 졸업정원제의 첫 주자로서 여자대학은 학기 중 결혼금지 내지는 군대 등을 통한 자연감소가 없어요. 엄격한 룰을 적용받다 보니 4년 내내 친구들 사이의 낭만이나 우정보다는 보이지 않는 경쟁의식이 깔려있을 수밖에 없었죠. 40명만 졸업 시키다보니 친구들의 우정보다는 경쟁한 기억만 남아 있었어요. 4학년이 되어서야 겨우 취업해야 한다는 생각에 동아일보에 시험을 보았어요. 즉흥적인 시험이라 준비가 안 된 상황이어서 당연히 실패를 하였죠. 입사시험을 보아서 1차는 합격했지만 2차 면접에서 떨어 졌어요. 언론사에 대해 전혀 아는 것이 없었으니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겠죠. 동아일보 시험에 떨어지고 당시 최고 선망 직종중의 하나인 종합금융사인 한불종합금융에 도전해 첫 직장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라고 회상했다.
당시 한불종합금융은 나이와 학력이 같은 남자와, 여자라 하더라도 호봉체계가 달랐다고 한다. 이런 차별이 당연한 사회적 룰로 받아들여지던 시대이었으며 김 부사장 역시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고. 회사에서 여직원들은 남자 직원들보다 먼저 출근해 책상 정리라든지 보리차 준비 등과 같은 업무준비를 해야만 했다. 남자직원들이 출근하면 개개인의 기호에 맞춰 차를 준비한다든지, 손님이 오면 차심부름을 하는 등 보조업무들이 여직원의 몫이었다. 김 부 사장의 첫 직장 역시 사회전반적인 풍토인 결혼 각서제와 같은 안묵적 불문율이 있었다. 그래서 가정경제상 직장을 다녀야 하는 여직원들 중 몇몇은 마치 영화에서처럼 비밀리에 결혼을 감행하는 여직원도 있었다고 한다.

전방위적 비서였다.
한불종합금융사에서 6급 일반 여사원으로 지내던 김 부사장은 직장생활 2년 만에 결혼을 하게 된다. 그것도 같은 회사 같은 부서, 바로 옆자리에서 일하던 직장 동료였다. 사내결혼이란 특수성과 사회통념에 바탕을 둔 회사 정책으로 결혼과 동시에 직장을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당시 사회 전반적으로 전업주부는 가사에만 전념해야 하는 것이 상식인 시대였다. 외국계 회사나 전문직을 빼고는 주부가 취업할 길은 거의 없었다. 신혼 2개월 정도를 전업주부로 보낸 김 부사장이 주변의 권유로 직장생활을 다시해볼 것을 생각을 한다. 생각 끝에 신문의 구인광고를 보고 한국 진출을 앞두고 있는 맥도날드(당시 맥안산업)에 취업하게 된다. 지금의 맥도날드 코리아의 전신이다. 그는 “이 회사에서는 결혼한 사람은 안정적으로 업무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결혼한 여직원을 선호하고 있었어요. 또 한편으론 무조건 들어가야 한다는 절실함에 매우 저렴한 연봉을 제시했고 싼 맛에 취업이 된 것 같았어요. 한국 비즈니스를 준비하는 단계여서 모든 창업멤버들이 본인의 부서라든지 주어진 업무의 범위를 넘어서 많은 일들을 했었죠. 나 역시 전화교환, 비서업무, 세관통관, 구매 등등 다양하게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회사의 구색을 갖추기 시작했죠. 지금은 마케팅 교과서에도 나오는 맥도날드의 마케팅을 배울 수 있는 기회였어요. 마케팅 포지션을 뽑는 것을 알고 사장에게 면담을 신청했어요. 마케팅 경험은 없으나 맥도날드가 가야하는 방향과 목적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고 설득했죠. 또 조금의 시간적 기회를 허락한다면 누구보다 마케팅 담당으로서 한 몫을 해낼 수 있다고 말이죠. 사장은 물론 맥도날드 본사의 마케팅 디렉터들을 설득했어요. 마케팅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첫 단추였습니다.”라고 회상했다.
이때부터 마케팅을 알고 인생의 방향을 잡아 가게 되었으나 실질적으로 하는 일은 마케팅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거의 모든 부서의 남자들 일을 서포터즈 해야만 했었다. 압구정동에 1호점을 오픈하고 종로의 2호점을 오픈하면서 첫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마케팅의 이론적 무장을 위해 대학원을 직장생활과 함께 병행하기도 했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약 3년여의 시간을 맥도날드에 보낸 후 여러 가지 이유로 사직을 한다. 이 후 덴마크의 마케팅전문회사 EAC Korea로 직장을 옮기게 된다. 맥도날드에서 마케팅을 담당하면서 프로모션 파트너로 인연을 맺은 회사였다. 맥도날드에 있을 때 EAC Korea의 한 직원을 알게 되었는데 그 사람에게서 제의가 들어온 것이라고. 사회생활 하면서 인적 네트워크의 필요성과 유용함을 손수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다. 이곳에서 약3년 간 일하다 남편의 미국유학길에 동반하게 된다. 미국에서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도너츠 가계에서 일하려는 생각까지 했다고. 그는 불법 체류이기는 했지만 다행히 현지 법인 여행사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었다. 미국 생활 2년 만에 둘째아이를 임신했고 원정출산이 유행이었는데도, 출산 한 달 전에 한국으로 귀국을 한다. 지금 생각해 보니 바보 같은 결정이었기도 했지만 후회는 없다고 한다. 그때 상황에서는 귀국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기 때문이라고. 둘째를 출산한 뒤 지인으로부터 질렛트코리아에서 사람을 구하는데 이력서라도 한번 내보라는 제의가 들어와 이력서를 제출했다. 그는 “딱히 미국에서 마케팅과 직접 관련 있는 일을 한 것도 아니었고 공부를 한 것도 아니어서 누가 날 써줄까 하는 의구심을 갖으면서 낸 이력서였어요. 일할 팔자여서인지 잠재력을 높게 평가 받아 둘째를 낳은 지 한 달 밖에 안 된 산모가 출근을 다시 하게 되었죠. 1993년이었으며 아줌마가 일하는 시대가 아니어서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인터뷰를 하자는 연락이 왔죠. 많이 모자란 나를 뽑아준 회사에 대한 고마움과 마음속 한켠에 자리 잡고 있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지고 일을 하게 되었어요.”라고 회상했다.
그는 이때부터 전문가라는 마음가짐으로 일을 시작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전에는 일 못한다는 소리 듣기 싫어서 일을 열심히 했었던 것 같아요. 그러나 질렛트코리아에 들어가면서 내가 마케팅 전문가로서의 마음가짐과 나 자신에 대한 책임감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나 이 회사 역시 남성위주 문화의 회사였던 것으로 기억해요. 여자직원을 직원으로 보기 보다는 업무 보조해주는 존재로 밖에 인식 하지 않았었죠. 여자의 이야기를 아주 우습게 보는 남성위주의 회사였었죠. 그러나 지금은 여자직원에 대한 평가가 많이 달라졌고 능력 있는 여자들이 근무하는 직장문화가 생겼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잠시나마 그런 변화를 이끌었던데 일조한 것 같아 기쁩니다.”라고 말했다. 김 부사장은 이 회사를 그만 두고 마케팅 전문회사인 월드골드카운셀실에서 실장으로 8년간 근무한 후 2004년 현재 있는 금강 오길비에 오길비앤매더코리아의 상무로 입사했다. 2006년 부사장으로 승진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2007 OhmyNews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