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교회, 가난한 신도와 세상 사람들

예전의 천막교회로 돌아가라

검토 완료

곽윤호(khk1208)등록 2006.11.14 15:31
이 글은 교회에 시비를 걸고자 함이 아니다. 나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므로 어쩌면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하지만 나날이 껍데기만 커지는 교회를 보고 늘 언젠가는 한 번 말하고 싶었던 것이기 때문에 그냥 적는다.
요즘 웬만한 동네치고 웅장하게 큰 교회 하나 쯤 없는 곳이 없다. 대로변의 요지에 큰 평수를 자랑하며 서 있는 교회는 가히 위압적이다.
후배 중에 목회를 하는 사람이 있다. 그 후배는 일산인가에서 목회를 하는 목사인데, 그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어느  조그만 건물의 지하에서 목회를 하다 보니 신도가 모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도도 사람인지라 더 큰 교회를 찾고, 편안하고 쾌적한 곳에서 예배를 드리고자 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는 일이다. 바로 이런 점이 교회가 건물을 크게 짓고자 하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엊그제 어느 신문에서 조용기 목사가 머지 않아 순복음 교회 당회장에서 물러난다는 기사를 본 것 같다. 천막에서 시작해서 성도 70만 이상을 자랑하는 초대형 교회가 되기까지는 신고의 시간들이었을 것이다. 목회를 하는 분 중에서 혹시 이런 초대형 교회를 목표로 삼아 열심히 하는 분들은 없는지 모를 일이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도 그 '천막교회'라는 말이 너무 가슴에 와 닿았다. 못 살던 어린 시절이 생각나서였을까. 초등학교 시절에 내가 처음 다녔던 교회도 바로 그 천막교회였다. 군용 텐트를 씌우고 비가 오고나면 질척한 맨땅에 의자를 놓고 예배를 드렸던 생각이 난다. 모두 가난했고 어려웠지만 그래도 추수감사절이나 성탄절은 믿지 않는 사람들도 교회에 찾아가 한 끼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나름대로 풍요로웠고 어린 마음에도 성도들 간의 정이 너무 훈훈하게 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변변하게 먹을 것이 없어도 예배가 끝나면 근처의 성도 집에 가서 수제비 등속을 같이 끓여먹던 모습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한국 사회가 발달하고 소득이 높아지면서 어쩌면 교회가 대형화하는 것도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못 먹고 못 살던 시절에 산동네에 올라가 언덕 밑을 내려다 보면 빨간 십자가가 무슨 가로등처럼 부지기수로 밤을 밝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때 당시에도 혹자는 한국에 왜 이리 교회가 많이 필요하냐고 물었지만, 그때 교회는 절망적인 사람들, 없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의 안식처였고, 소외된자들을 위무해 주는 곳이었다. 교회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 빛이 되었던 셈이다.
그런데 요즘의 교회는 겉보기에 아주 위압적이다. 위압적이다 못해 자본적으로 보인다. 월세에서 전세로 혹은 건물을 사서 입주하는 교회를 보면 마음에서 힘이 든다. 그건 고도성장을 거치며 신도들이 풍요로워져 많은 헌금을 하고 교회가 건물로 혹은 해외선교로 나서던 때와 지금의 경제적 형편이 너무 달라서인지도 모른다.
요즘 서민들의 삶은 너무 퍽퍽하고, 나날이 황폐해져 가고 있는데도 교회의 양적인 성장추구는 과거와 별로 달라보이지 않는다. 모든 헌금과 교회가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은 물론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지만, 결국은 신도의 호주머니를 통해 나온다. 그런데 요즘 신도들의 삶은 퍽퍽하고, 교회 밖에서는 힘들게 하루하루를 버티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런 사람들은 이제 교회에서조차 위로를 받지 못 한다.
위로는 고사하고 심지어는 교회가 내부적으로 재정적인 문제로 분란을 일으키거나 법정다툼까지 가기도 한다. 교회가 자본화하고 세력화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는 부자의 편에 서서 정부를 힐난하기도 한다. 정부가 잘났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아프고 소외된 사람들을 대변하지 않고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의 기득권을 옹호하고 나선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교회가 성장할 때 의식있는 목회자들이 우려했던 것은, 교회의 양적성장이 서구에서처럼 세상에서 이반되어 신도가 줄고 교회가 세상에서 자기 구실을 하지 못할까 하는 점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교회가 먹고 살만한 믿는 사람들의 커뮤니티가 되어가고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소외되어 가고 있다.
교회가 낮은 곳으로 임하지 않고 높은 곳에서 군림하려는 것처럼 느낄 때가 있다. 건물의 외형이 커질수록 세상의 소외된 자와 아픈 자들에게서 멀어져 가는 것 같다.
모르긴 해도 지금의 교회들이 있는 재산을 다 팔아 구휼을 한다고 하면 굶어죽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전기세를 내지 못 하고, 연탄 살 돈이 없어 얼음장 같이 찬 방에서 겨울을 나는 노인은 없을 것이다.
건물이란 집과 같다. 13평 아파트에 살다 33평에 살면 전기세도 수도세도 관리비도 많이 든다. 그만큼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이다. 교회가 커지면 커질수록 외형을 유지하기 위하여 드는 경비도 더 든다. 교회가 크면 신도수가 많아져 그 비용을 충당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작은 교회에서 큰 교회로 신도수가 옮겨진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세상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은, 예수가 다 내게로 오라고 했던 사람들은 어디서 위로를 얻겠는가. 교회에서 위로를 얻을 수 있을까 아니면 더욱 큰 괴리를 느낄 것인가.

교회가 한국 사회의 발전을 통해 성장을 거듭했다면 이제는 천막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건물은 껍데기일 뿐 그곳이 하나님의 집은 아니다. 대형 성전에만 예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제까지 신도들이 '목사도 사람이니까...' 하며 이해해 주길 바라는가. 언제까지 신도가 아닌 사람들이 '기독교인도 사람이니까...'하며 이해해 주길 바라는가. 차이가 없다면 그건 실패한 것이다. 하나님이 뜻을 펴는 것도 '그의 나라를 이루는 것'도 인간을 통해서다. 그런데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차이가 없다면 어떻게 그 뜻이 펼쳐지겠는가. 눈을 돌려 아픈자와 소외된 자들을 바라보지 않고 건물을 쌓는 것에 집중하는 교회가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수 있는가.

교회 다니시는 어느 분이 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작은 교회는 자꾸 성전을 건축하려고 해서 힘이 들고, 큰 교회를 다니자니, 하고 다니는 입성이며 사는 게 차이가 나서 신경이 자꾸 쓰인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혹시 이것이 한국 교회의 현주소는 아닌가. 양적인 성장에 신도와 세상사람들이 소외되고 건물은 자꾸 커지는 그것은 아닌가. 교회가 부자가 될수록 사람들은 점점 교회에서 멀어져 간다는 걸 인식해야 할 때다.
ⓒ 2007 OhmyNews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