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을 밟아도 노무현 탓

온나라가 대통령 탓 증후군에 전염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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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석(풀벌레)등록 2006.08.23 15:34
재미난 유행어가 있다. 재수 없는 일을 겪고 난 뒤 하는 말, "이게 다 노무현 탓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자가 왜 이런 불명예스러운 유행어에 등장해야 하는 것일까?


조롱당하는 대통령

나는 대한민국의 시스템이 매우 빠른 속도로 혁신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심층적으로 진행되는 이 변화의 속도는 다른 나라가 흉내내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리고 나는 "이게 다 노무현 탓이다"라고 결론 내리곤 한다. 나의 이 생각은 저 유행어에 담긴 조롱을 완전히 거스르고 있다. 내 생각이 노 대통령을 너무 높게 평과한 결과인지 모른다. 잠시 반성...

그러나 보다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 현 대통령이 지금처럼 조롱당하고 있는 현상이 결코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정말 그것은 말 그대로 비정상이다. 그 조롱은 합리적인 근거가 없다.

최근 경향신문의 한 기사는 여당의 한 의원의 최근 경험담을 소개하고 있다.

[[버스중앙차로 옆을 지나던 택시기사가 “중앙차로 때문에 수입이 훨씬 줄었다”며 한탄을 하더니, 갑자기 노무현 대통령을 입에 담으며 듣기 거북한 욕을 했다. 그러나 버스중앙차로는 전직 서울시장이 도입한 것이고 서울시 관할 사안인데, 무작정 대통령 욕을 하는 것이다.]]


치유불가능한 대통령 탓 증후군

또 다른 예가 있다. 불법주차 단속은 해당 지자체장의 업무인데도, 사람들이 차량에 붙은 ‘딱지’를 보면 대통령 욕을 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을 "대통령 탓 증후군"이라 한다.

이 기사는 명지대 정치학과 신율 교수의 분석을 요약해 놓고 있다.

[["참여정부 집권 초기에는 정책이나 사안별로 대통령에 대한 호오와 찬반이 나뉘었지만 지금은 ‘그냥’ 싫어하게 됐다. 남편이 미우면 남편 하는 일은 다 밉고, 이유없이 시댁 식구까지 미운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매우 놀라운 정치공학을 제시해 놓고 있다. 신율 교수의 발언을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지만 경향신문 기사는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이 같은 불만은 감정적인 것인 만큼 정책이나 이성, 논리로 설득하는 접근법이 어렵게 됐다. 여당으로서는 대통령과의 차별화가 관건일 것이다."]]



기가 막힌 정치공학: 괴물이 된 노무현

이 정치공학을 정리해 보자.

(1) 대통령 탓 증후군은 감정적인 것이다.
(2) 정책이나 이성, 논리로 국민을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3) 여당이 지지를 얻기 위해서는 대통령과 거리를 두는 것이다.

이 정치공학의 논리 전개는 비교적 단순하다. (1)로부터 (2)를 이끌어 내었다. 이 과정에서 숨은 전제가 사용되었다.

(1') 감정은 이성과 논리로 뒤바뀔 수 없다.

나는 이 전제가 다소 의심스럽지만, 일단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 다음 (2)로부터 (3)으로 나아갔다. 많은 공백이 있지만 충분히 가능한 추론이다.

문제는 (3)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가이다. 대통령과 차별화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책에서 차이를 의미하는가? 그러나 (2)에 따르면 정책이 핵심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읽을 수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과 다르다"는 것을 입증하기만 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처럼 마녀나 괴물이 되었다.

내가 경악을 금치 못하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개인간의 감정싸움도 아니고 국가적 통치의 문제인데, 정책도 아니고, 노선도 아니고, 그것이 무엇인지든지 차이가 난다면 국민으로부터 지지를 얻게 될 것이라는 분석. 이 정치공학은 우리 정치를 다시 막걸리 정치로 돌려 놓을 것이다.


지식인의 사명

국민과 시민은 잠재적으로나마 이성적이다. 그들이 이성에 충분히 눈을 뜬다면, 자신의 감정적인 "대통령 탓 증후군"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병원에 갈 필요도 없이 그것을 극복할 힘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이성과 논리, 정책과 비전으로 국민의 지지를 얻는 것은 가능하다.

사실 국가적 차원에서 (1')을 받아들여야 하는 국가는 매우 불행한 국가이다. 간단히 말해 그 나라는 야만국이자 미개국이다. 국민 스스로가 자문해 보자. 우리는 그런 국가를 원하는가? 최소한 나는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지식인의 사명은 무엇인가? 그것은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이 이성에 눈을 뜨게 하고, 그들이 밝은 이성을 지녔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하는 것이다.

대통령과 정치적 노선을 달리하는 정치인, 언론, 지식인들은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이 맹목적이고 감정적인 반응을 보일 때 여론몰이를 통해 그것을 즐기고 확대하고 있다. 온나라가 미쳐 버리기를 바라는 것일까? 아니면 그들이 미친 것일까?

대통령 탓 증후군은 행정의 정상적인 수행을 위해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바른 지식인은 그것을 개그콘서트 보듯 즐기는 대신 그 원인을 분석해야 한다. 만일 대통령 탓 증후군이 감정적인 것이라면, 그 감정은 왜 생긴 것일까? 그 감정의 배후에는 모종의 합리적 이유가 있을지 모른다.


노빠들 잠재우기

나를 포함한 소위 노빠들은 대통령 탓 증후군이 노무현 대통령 자신에게 그 원인이 있다기보다 악의적이고 권력화된 언론의 창조물일 뿐이라고 확신한다. 대한민국의 주류 지식인과 언론과 여론이 대통령 탓 증후군을 창출하고 양산하고 유포하고 확대하고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노빠들의 추정에 반론을 제기할 지식인은 매우 많을 것이다. 그가 진정한 비판적 지식인이라면, 감정적 증오와 힐란 대신에 대통령이 정책적으로 무엇을 잘못했는지 논리적으로 지적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 비판은 대통령과 행정부의 정책을 개선하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이다. 대통령과 정부는 언론과 지식인의 이러한 기여를 오히려 학수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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