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고 오병헌군의 전교조 비판에 답하며 -- 전교조가 나아갈 길을 생각해 봄

검토 완료

이재익(copyleft)등록 2006.07.31 15:30
얼마 전 서울 동성고등학교 3학년 오병헌군이 청소년 인권을 돌려달라면서 일인시위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믿었던 전교조 교사들에게 배신당했다고 생각하며, '전교조에게 외침!'이라는 글에서 전교조를 공개적으로 비판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멀리 경북 안동에 있는 한 전교조 교사가 교육과 학교, 전교조에 대해 말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오병헌군은 1. 교사들의 체벌과 폭언반대, 2. 강제 야자, 강제 보충 반대, 3. 우열반 반대, 4. 말할 자유 보장, 5. 집회 결사 자유 보장, 6. 한겨레21·한겨레신문 구독금지 같은 사상검열 반대, 7. 군사적 학교문화 반대, 8. 일방적 징계 반대, 9. 두발제한 반대, 10. 국가주의 반대(애국가, 국민의례, 차렷 경례)를 주장하였습니다.

오군은 '학교가 이 지경인데, 전교조는 지금까지 뭐했냐? 참다 못해 학생이 일인시위까지 하게 되었으면, 전교조가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닌가?'하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전교조 동성고 조합원 가운데 몇몇 교사들이 자신을 모욕했고, 정신이 이상한 놈으로 대했으며,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키지 말고 참으라고 했으며, 지금까지 전교조에서 노력해서 많이 좋아졌으니까 너무 극단적으로 가지 말라고 했다면서, 학생을 도와주지 못한다면 방해는 하지 말아 달라고 합니다. 또한, 현재 학교체제에서 학생회는 어용이며, 전교조도 결과적으로는 학교 편이었다면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위에서 말한 학교에 대한 10가지 주장 전부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말로만, 마음속으로만 해왔던 이런 생각들을 오군의 문제제기를 계기로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생활지도하면서, 직원회의 시간에 실천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또한 동성고 전교조 조합원 몇 분이 오군에게 했다는 발언들에 대해서도,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앞뒤에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말이 오고갔는지는 모르지만 그러한 발언이 있었다면, 교육자로서도 전교조 조합원으로서도 매우 잘못된 말과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동성고 전교조분회를 포함하여 전교조와 교직사회에 말씀드립니다. 청소년 인권을 주장하는 이런 정의로운 학생을 자랑스러워하고 환영해야지, 부담스러워 해서야 되겠습니까?

청소년 인권을 주장하는 한 학생이 일인시위라는 평화적인 방식으로 자신과 동료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를 주장했습니다. 간단하지요. 그런데 전교조 동성고 분회는 침묵했습니다. 일부 조합원은 해서는 안 될 말도 했습니다. 학교측은 퇴학 전 단계의 징계인 특수교육이수처분을 했습니다. 오병헌군이 느꼈을 충격과 배신감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오군의 주장중에서 요즘 학생들이 많이 요구하는 학생들의 두발자유 문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 12조 1항에서도 보장하는 신체의 자유는 학생도 예외는 아닙니다. 당연히 학생의 머리카락은 자유여야 합니다. 논란의 여지가 전혀 없는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에 있는 거의 모든 학교는 학생들의 머리카락을 비롯해서 복장과 자세까지 제한합니다. 이것은 논리 이전의 문제입니다.

두발규제가 정당하려면 학교를 벗어난 곳에서 교사가 길가는 청소년의 머리를 단속하는 것이 정당해야 합니다. 어디에서든 폭력을 휘두르는 청소년들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정당합니다. 그러므로 교내에서 청소년들의 폭행과 금품갈취 등을 규제하는 것은 정당한 학교교칙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사가 퇴근 후에 자기 동네에서 지나가는 청소년의 머리가 길어서 보기 싫고, 공부에 방해된다면서 구레나룻을 잡아당기고, 가위로 자르고, 얼차려를 주고, 바리캉으로 민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경찰에 신고되고, 대번 정신감정 들어가겠지요?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드러납니다. 현재 대한민국 학교는 일반사회와 너무나 다른 감옥이라는 것. 인권의 사각지대이며, 이런 상황이 대다수 반인권적인 노예 사고에 물든 학생과 학부모, 교사에 의해 유지된다는 사실이….

강제 자율학습과 보충수업, 두발규제, 복장통제, 애국조회, 차렷 경례 이 모든 것들은 학생을 통제하는 수단입니다. 이런 통제 없는 자유로운 인간들의 자연스러운 질서를 만들어나갈 능력이 지금의 교사들과 학교에는 없습니다. 이런 '통제'는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 너무나 마땅합니다. 그러나 이런 통제장치들을 대한민국 교육부와 시도 교육청, 학교, 교사들(전교조도 포함)이 자발적으로 포기했을 때, 억눌려왔던 학생들이 발산해낼 엄청난 에너지와 목소리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 전교조 교사들을 포함한, 전체 교사들과 학부모, 교육계 전체가 무의식적으로 '통제'를 원하고 있다고 봅니다. 자발적이고, 자연스러운 '질서'를 만들어 나갈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통제와 금기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창의와 개성존중, 인간교육, 참교육은 너무나 멀리 달아나 버릴 것은 분명합니다.

오군의 글을 읽어본 다른 교사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무 독선적이고 예의가 없다.” 글에서 나타난 반말 투와 선택과 결정을 강요하는 주장에 대한 반응입니다.

결론으로 저는 오병헌군을 포함한 요즘 학생들이 예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 또한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고요? 기성세대 전체가 먼저 학생들에게 예의를 지키지 않고, 폭력적이고 지독하게 대하기 때문입니다. 하루 18시간이나 강요하는 살인적 학습노동, 시도 때도 없는 폭언과 체벌, 덥고 춥고 더럽고 좁아터진 어두운 학교에 가두기 등등….

우리 교사들은, 부모는, 사회는 과연 학생들에게 예의를 지키고 있는가? 아침 8시 이전에 아침밥도 안 먹이고 학교 보내서는 하루 종일 수업 받게 하고, 오후에는 보충수업, 특기적성교육, 그리고 잠시 집에 들리면 저녁밥 입에 퍼넣고 학원으로 몰고 가서 9시, 10시까지 수업시키고, 더욱이 시험기간에는 중학생들까지 새벽 1시가 넘도록 자습시키고…. 이것만 하면 다행.

학교 과목별 숙제에, 수행평가에, 학원 숙제에, 학원 빽빽이에, 부모의 잔소리와 교사의 체벌, 상담을 빙자한 일방적 훈계들…. 이 모든 상황에 대해 우리는 학생들에게 무조건 ‘예의’를 지키도록 강요하고 있습니다. 전국의 교사 여러분, 우리가 먼저 학생들에게 예의를 지킵시다. 부모들도 자신의 자녀에게 예의를 지키고 또 아이들도 지키도록 가르쳐주고 이끌어 줍시다.

현재 우리 교육계와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노예의 예의입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고, 대들지 않고 고분고분하기만을 바랍니다. 노예는 예의가 없습니다. 그래서 현재 노예 상태인 학생들은 정말 비열하고 난폭한 행동을 서슴치 않는 것입니다. 아프고 힘없는 학생을 괴롭히고, 돈을 빼앗고, 집단폭행하고, 여학생을 집단 성폭행합니다.

물론 이런 학생들은 질이 나쁜, 통제가 되지 않는 노예들이지요. 성적이 좋은(질이 좋은), 말 잘 듣는(통제가 되는) 노예들은 교사와 부모, 기성세대에 예의를 잘 지키며 자기 자신만 잘 먹고 잘 살 궁리를 합니다. 결론적으로, 노예가 할 수 있는 진실로 인간다운 행동은 노예문서를 불태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오병헌군이 그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병헌군의 문제제기는 전교조에 대한 것이기보다는 현재 대한민국 학교체제에 대한 비판입니다. 오군의 '학교와 싸워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사립학교민주화투쟁을 했던 교사 한 분은 학교제도 자체보다는 인권을 탄압하는 소수 교사와 싸워야 한다고 대답합니다. 또 동성고 전교조 분회의 한 조합원 교사는 전교조 소속 일부 교사의 문제를 전체 전교조의 문제로 호도하지 말라고 주문합니다.

전교조 교사들은 오군의 문제제기를 전교조 교사인 '나'를 포함한 교사와 교직사회, 교육청, 교육부, 대한민국 사회에 대한 문제제기로 올바르게 받아들여서, 대답하고 시정해야 합니다. 물론 오병헌군의 도발적인 표현을 접하면 전교조를 포함하여 '공교육 정상화'운동을 하는 분들은 기분이 나쁠 수도 있습니다. '그럼, 지금까지 내가 한 일은 헛짓이었나?' 하지만 문구에만 매달려서 기분나빠할 일이 아닙니다.

제도교육을 하는 학교에서 교사로 일한다는 것은 오병헌군이 제시하는 모든 문제의식에 둔감해지는 과정을 매일 반복하는 것입니다. 참교육을 하려면, 학교제도 자체에 대한 이러한 문제제기에 대해 늘 정면으로 마주서야 합니다. 그래야 '헛짓'이 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일을 계기로 일개 조합원이지만 앞으로 전교조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안팎으로 전교조와 교사, 학교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한 지금이 호기라고 생각합니다. 위기는 기회입니다. 지금 전교조는 교장선출보직제를 통한 학교자치(교사회, 학부모회, 학생회 법제화)운동을 하자는 쪽과 교원평가반대, 성과급 반납 등을 통한 교원구조조정 반대, 결국 신자유주의 분쇄운동을 해야 한다는 쪽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저도 이 사이에서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저는 분명히 깨닫습니다. 전교조가 살려면, 정말 교권을 살리고자 한다면 먼저 체벌 반대, 두발자유, 폭언금지 같은 청소년 인권운동부터 해야 합니다. 강제적이고 과중한 학습노동을 금지하는 학습노동기준법 같은 법이라도 만들어야 합니다.(근로기준법도 있으니까요.) 건강한 급식, 교실의 적정온도를 위한 청소년 건강권 운동을 해야 합니다. 정말 자기 스스로 앞가림하고 남을 도울 줄 아는 사람을 만드는, 가르칠 만하고 배울 가치가 있는 것을 가르치자고 하는 참교육운동을 해야 합니다.

물론 범위가 너무 크고, 학교체제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사안들이어서 과연 전교조가 이것을 해결할 수 있을지, 혹은 전교조가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참교육학부모회나 청소년인권단체, 중고등학교 학생회 연합이나, 민주노동당 같은 곳에서도 제기할 수 있겠지만요, 그래도 교육계 내부에서는 전교조가 가장 직접적이고 대표적인 단체입니다. 이 말은 곧 이런 운동을 전교조가 하지 않았을 때는 전교조가 비판받아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오병헌군, 님의 일을 계기로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고맙고 자랑스럽습니다. 더운 날씨에 열 너무 많이 받지 마시고, 대한민국에서 공인된 노예 신분을 벗어나면 함께 술 한 잔 했으면 좋겠네요.
ⓒ 2007 OhmyNews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