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철 찾아온 불청객, 우울증 극복하기

감정의 ‘감기’처럼 가볍게 생각, 대화가 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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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thssla08)등록 2006.07.28 11:51
비가 내리는 날은 냄새까지도 기억에 오래 남는다. 느닷없이 비오는 날의 추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난 때는 비슷한 비의 냄새를 맡았을 때나 서늘한 공기의 스침을 느꼈을 때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비가 오는 날은 추억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처럼 비가 오면 이상하게 평소와는 조금 다른 감정으로 사물을 자세히 바라보거나 본의 아니게 한 곳에 집중하는 일이 잦다. 그만큼 쉽게 우울한 감정에 휩싸이기도 한다.

위기, 자살예방 상담 전화인 한국 생명의 전화 하상훈 원장은 “비오는 날의 우울감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감기와도 같다”고 말한다. 누구나 우울한 감정의 샘에 빠질 수 있고 극복하는데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자신의 노력으로 쉽게 헤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긍정적인 모습과 부정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가 오는 날은 야외활동이 줄어들고 날씨에 자신을 일치해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평소보다 더욱 쉽게 자기혐오나 비하 등의 부정적인 감정이 전면에 드러나게 되죠” 비가 내릴 때 괜스레 심각해지는 이유는 단순히 날씨 탓이라기보다 비가 내림으로써 갖게 되는 일종의 고립감이 감정의 전면에 드러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또 “우울감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을 가능성을 가진 존재가 아닌 왜곡된 존재로 바라보고 깊은 감정의 늪에 빠뜨린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우울할 땐 무릎을 ‘탁’ 쳐보세요

그렇다면 우울한 감정이나 고독감을 달랠 수 있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까?
첫째, 자신에게 정지 표시(stop sign)를 외친다. ‘나는 왜 이정도 밖에 되지 않을까?’, ‘왜 내게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까?’하며 자기 비하에 빠져들기 전에 스스로에게 황색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방법으로는 무릎을 치며 ‘그만’이라고 외치거나 주변 환경을 변화시키며 생각을 전환해 보는 것 등이 있다.

둘째, 가벼운 상담을 요청한다. 가족이나 친구가 상담자가 될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혼자만 할 수 있는 고민이 있다면 무료 상담전화나 문자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도 좋다. 전문교육을 받은 상담원들로 꾸려진 생명의전화(1588-9191)는 24시간 전화 상담을 실시하고 있으며 극단적인 자살 외에도 가정불화, 진로, 이성문제로 인한 고민부터 법률, 의료상담이나 새터민(탈북자)과 재외동포를 위한 전문상담도 운영하고 있다. 이밖에도 ‘문자세대’인 청소년을 위해 문자상담을 실시하는 곳도 있다. 모두 익명성이 보장되고 상담성공률도 높다.

생명의 전화에서 상담원으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이우상(65)씨는 “경청하고 공감만 해도 상담의 반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 사회에 대화가 얼마나 부족한지 매번 깨닫게 된다”며 주변 친구나 가족에 대한 관심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살로 이어지는 우울증, 사회는 무관심

자살을 두고 ‘사회적 타살’이라고 하는 말은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식상한 표현이 됐다. 그러나 정작 자살이 왜 사회적 타살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오히려 타살에 대해서는 경악하고 안타까워하면서 자살에 대해서는 냉소적이고 무신경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 2005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의 자살 인구는 1만1523명으로 나타났다. OECD국가 중 1위이다. 숫자로 감이 잡히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하루에 36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고 생각하면 조금 이해하기 쉽다. 작은 면단위의 인구가 하루하루 줄어드는 것이다.

하상훈 원장은 “정부는 자살방지를 위한 사회적 프로그램에 대해 전혀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담뱃값을 올려 생긴 예산으로 자살예방협회에 홍보비를 조금 떼어준 것 외에 정책적인 대안이나 지원은 전혀 없는 끔찍한 실정이다”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실제 외국에서는 서바이버케어 프로그램(survivor care, 자살한 사람의 주변인을 재교육, 보살피는 프로그램)이 활성화 돼 있어 자살한 가족에 의해 생길 수 있는 주변인의 수치감, 혹은 죄책감을 삶의 원동력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자살은 혼자만의 죽음이 아니라는 인식 때문이다.

내면을 향한 여정, 함께 떠나실래요?

이러한 인식의 변화를 위해 한국생명의전화는 오는 9월 9일 저녁부터 세계자살예방의 날인 10일 새벽까지 ‘생명사랑 밤길 걷기’ 행사를 열기로 했다. 한강변에서 진행되는 이번 행사는 자살의 상징으로까지 여겨졌던 한강을 생명의 장소로 변화시키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코스는 한강시민공원 뚝섬지구(서울숲)~반포지구~서울숲의 코스로 약 20km이다. 어둠 속에서 소중한 목숨을 내던졌던 이들은 그 곳에서 마지막에 무슨 생각을 했을지 떠올리며 자기를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누군가는 우울할 때는 이성이 최대로 발휘되는 때라고 말한다. 우울감을 느낄 때는 대부분 자신의 현실에 대한 직시가 가능하고 희망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생기기 때문에 이성이 극대화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장마철도 이제 끝나가고 있다. 우울이라는 부정적인 단어도 긍정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것처럼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있는 시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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