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운동하면 안 돼나?”

언론운동을 부정하는 좌파 운동권 선배에 대한 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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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길(kill1021)등록 2006.07.10 09:24
지난 금요일, 서울의 한 삼겹살 집에서 “난 좌파다”라고 주장하는 선배와 술자리를 가졌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FTA) 2차 협상을 며칠 앞둔 시점에서, 선배는 언론과 운동 사이에서 고민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맑은 소주를 기울이며 오랜만에 나눌 수 있었던 고민은 가게가 일찍 정리를 하는 바람에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대학생들의 술자리가 게임, 토익으로 도배되는 요즘, 운동을 고민하는 선배와 미처 나누지 못했던 고민을 지면으로나마 대신하려 한다.

선배는 언론 운동이란 말이 안 되고, 언론으로 사회운동을 한다는 것도 맞지 않는다고 했다. “운동은 교조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다. 현실에 따라 적절히 응용되어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 집단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선전하는 것이다. 그런데, 중립적이고 객관적이어야 할 언론이 한쪽의 일방적인 의견을 실어줄 수 있을까? 언론은 양쪽의 의견을 다 실어 줄 수밖에 없는 조직이다. 언론과 운동. 그건 서로 별개이다.”라는 것이 선배의 요지.

우선, 대학교에서 전국적인 학보사 조직에서도 활동했던 선배가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가 궁금했다. 사실, 학보사를 하다가 사회운동에 뛰어든 선배들도 많이 봤기 때문이다.

선배가 이런 생각을 가진 이유는 제도 언론의 운동성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고 생각한다. 이해가 간다.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으로 배우지 않았더라도, 그동안 우린 신문이나 뉴스를 보면서 언론은 공정하고 객관적이고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은연중에 배워왔을 것이다. 특히, 매번 노동자의 파업, 집회 때 언론의 태도는 얼마나 냉정한가.

이것은 이번 시민•사회단체들의 FTA 집회에 대해 보도하는 언론의 모습에서도 역력히 드러난다.

매일경제는 지난 8일 사설에서 “한•미 FTA의 타당성 여부를 따지기에 앞서 지금이 이럴 때인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의 미사일 위협으로 한반도 주변이 온통 벌집 쑤신 듯 시끄럽고 경제도 걱정스러운 방향으로 흘러가는 비상시국이다.”라며 FTA 집회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또한 같은 날 한국경제 사설은 “당장 2차 협상을 코앞에 두고 국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힘을 모으기는커녕 내부 분열과 혼란만 빚어지고 있는 양상이어서 참으로 한심스럽기까지 하다.”라고 말했고, 조선일보는 ‘서울서 대규모 反FTA 집회 잇따라 강북 도심 교통 정체 극심’이란 기사가 FTA 집회에 대한 전부이다.

이런 보도행태를 보면 선배가 언론을 불신하는 것도 이상한 것은 아니다. 사회를 보는 창들이 대부분 이런 내용으로 도배되어 있으니 얼마나 언론이 노동자의 정당한 운동을 폄하하는 것처럼 보이겠는가. 또한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은 FTA로 인한 사회의 공공성 침몰 앞에 지금의 언론인들은 침묵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한국의 경제 시스템을 송두리째 바꿔 다음 세대에까지 큰 영향을 미칠 한미FTA에 대해 언론이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보도하고 있다”며 “조중동은 지상파에 진출하려는 목적으로 찬성하고, 한겨레는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지만 역량 부족이고, 방송은 아예 침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런데 과연 언론과 운동은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가? 사전적 정의로 사회운동은 ‘사회의 변혁이나 개량, 또는 사회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지속적으로 행하는 집단 운동’인데 언론은 사회 변혁과 개량 또는 사회 문제의 해결을 위한 일을 하지 않는 조직인가?

이점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신학림)이 지난 7일 결정한 총파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한미FTA 저지를 위한 전국 언론노동자 총파업 찬반투표 결과 74%의 찬성으로 총파업이 가결돼 오는 11일 129개 언론사가 총파업에 들어간다고 한다. 신위원장은 “노동법을 좁게 해석하면 이번 총파업을 불법파업으로 볼 수 있지만 사안이 언론노동자 뿐 아니라 국민의 삶 자체를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파업을 결의했다”고 한다.

중립적이어야 할 언론 또는 노동자 파업을 비판하던 언론이 스스로 파업을 한다? 뭔가 말이 안 되지 않은가? 그럼 다시 묻겠다. 언론이 운동하면 안 돼나?

바로 이점이다. 언론은 사회를 보는 창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비춰주기만 하는 거울이 아니다. 스스로의 철학을 가지고 시민들의 가려운 데를 긁어줄 수 있고, 공공의 적이 있다면 발 벗고 나서서 그것을 잡는 것이 더 공정한 것이 아닐까.

선배는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것’을 꿈꾸고 있다고 한다. 단지, 선배는 현재 사회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무엇보다 노동자의 운동성을 믿을 뿐이다. 언론인으로서 바라보는 세계 역시 다르지 않다. 철학을 가지고 있는 언론인이라면, 그리고 사회 전체의 민중의 삶을 고민하는 언론인이라면, 분명 오늘 침묵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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