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먹여 살리는 건 거리의 시민들

대학로에서 만난 알바생, 예술가 그리고 전도사의 삶.

검토 완료

최훈길(kill1021)등록 2006.07.02 14:28

대학로에서 한 알바생이 연극 티켓을 판매하고 있다. ⓒ 최훈길

소극장 옆을 지나가는 내게 말을 건넨다. 팔이 훤히 드러난 새하얀 티셔츠와는 대조적으로 피부는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대학로에서 연극을 홍보하는 알바생 최수진(20)씨. 연극 티켓을 판매하는 일은 대학교 방학을 맞아 막 시작한 아르바이트라고 한다.

인터뷰 중에도 김씨는 바빴다. 사람들이 지나가면 어느새 달려가 연극 티켓을 들이댔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김씨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안 사겠다고 말이라도 하면 그나마 낫죠. 친구들끼리 서로 수다 떨면서 오다가도 제가 가면 돌연 아무 말도 안 해요. 아주 정색을 하죠. 그런 사람들이 제일 밥맛이에요.” 어떤 사람들이 제일 마음에 안 드냐는 질문에 속으로 삭힌 불만을 토로한다.

그래도 돈 버는 재미는 쏠쏠하다고 한다. “2만원짜리 티켓을 10장 판매하면 5만원 정도의 돈을 받아요. 한달 동안 60~150만원 정도까지 벌 수 있어요. 매일 점심, 저녁밥까지 주니까 많이 팔기만 하면 돈벌이는 되죠.”

마로니에 공원을 걷다가 갑작스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공원 한쪽에 마련된 야외 공연장으로 부랴부랴 뛰었다. 비 맞은 애인을 꼭 껴안고 있는 커플도 있고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누운 노숙자 아저씨도 있었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클래식 기타 반주가 들리기 시작했다. 노래는 김광석의 ‘비처럼 음악처럼’이다. 조명도 없었고 무대로 없었다. 단지, 비를 피해 모인 스무 명 남짓 정도의 사람들만이 있었을 뿐이다.

"좀 뜬다 싶으면 돈벌이 되는 방송으로만 가려고 하죠."

마로니에 공원에서 만난 거리 음악가 장동규씨 ⓒ 최훈길



마로니에 공원에서 기타를 치는 거리 음악가 장동규(37)씨. “대학로에는 두 부류의 예술인이 있죠. 한 부류는 거리에서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즐기는 부류. 이들은 언론에 나오는 것을 극히 꺼려하죠. 다른 한 부류는 적극적으로 언론에 나오려는 무리가 있어요. 그런데 이들은 대부분이 장사치죠.” 장씨는 거리에서 사람을 만나려고 하는 음악인들도 서로의 꿍꿍이는 다르다고 한다.

예술가도 먹고 사는 것에 예전보다는 더 얽매여 있다고 말하는 정씨. “예전에는 거리에서 사람들에게 노래 부르고 어느 정도의 돈을 받아 생활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그런데 요즘은 좀 뜬다 싶으면 돈벌이 되는 방송으로만 가려고 하죠.”

“마로니에 공원은 참 다양한 것들이 공존하는 곳이어야 해요. 인형극, 마당놀이와 같은 전통 놀이와 힙합, 댄스 등의 현대적인 놀이까지 함께 어울리는 그런 모습이죠.” 정씨는 현실을 따라가기보다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다양한 문화를 꿈꿨다.

비를 피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서 갑작스레 예쁜 여자분이 말을 걸었다. “바쁘시지 않으면 저랑 저기 조용한데 가서 얘기 좀 해요. 얼굴상을 보니까 착하신 것 같아요.” 왠 횡재다 싶었는데, 그녀는 “도를 아냐”고 묻는다. 아차! 그러면 그렇지. 그냥 가려는 기자에게 “도를 알기 위해서는 여기와는 다른 흐름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해요.”라고 덧붙인다. 왠지 호기심이 발동한다.

도를 아십니까?

거리에서 도를 전하는 황아람(25)씨. 그녀는 걷는 도중에도 바쁘시지 않느냐고 계속 물었다.
황씨와 함께 간 건물은 회색 페인트로 칠해진 건물 2층이었다. 비가 막 그쳐서 그런지 건물의 더 회색 빛을 발했다.

방으로 들어가자 한쪽 벽은 출입문이 두 개 달린 누런색 벽으로 되어 있고, 그 반대 편에도 역시 누런 색 문이 두 개 있었다. 나머지 벽엔 책 몇 권이 꽂힌 책장만이 있었을 뿐이다. 꽉 닫혀진 출입문 안에 날 가두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에 기자는 제대로 앉지를 못했다.

“저기 안에서는 따로 상담을 하고 있어요. 하루에 3-4명은 왔다 가시는 걸요. 더 오실 때도 있고요. 하루 한 두 시간 동안 나가서 이 정도면 많이 오시는 것 아닌가요.” 분위기가 썰렁하니까 사람들이 많이 안 올 것 같았는데 오히려 의외였다.

황씨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아는 법을 알려주려고 이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도(道)라는 말은 천지대도(天地大道)의 줄임말이예요. 사람마다 삶이 있고 풀 한 포기도 아무런 이유 없이 태어나는 것은 아니죠. 자기가 이세상에 태어난 천명을 알고 자기를 알아가는 과정이 도를 아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가려져 있는 기운이 있기 때문에 자신을 100% 알지 못하고 있어요. 전 사람들이 사심을 버리고 본연의 양심을 찾게 도울 뿐이죠.”

집에 들어오니 벌써 12시다. 목이 말랐다. 이상하게도 난 오늘 친구를 한 명도 만나지 않았는데, 대학로에서 참 많은 사람과 수다를 떨었다. 내가 매일 만나면서 한번도 대화하지 않았던 사람들과 말이다.


ⓒ 2007 OhmyNews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