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을 박물관에 걸어도 꽤 괜찮네?

이화여대박물관 특별전 "여성.일.미술"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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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교신(iiidaum)등록 2006.06.17 14:49

이순자의집 -제사풍경 2004 . 이선민 사진. 고단한 제수 준비(좌), 소외된 경건함(중)에 이은 남자들이 먹고 난 후의 식사(우)는 여전히 아름다게 여겨야 할 풍습인가? '그들만의 경건함'인 제사는 남성들에겐 경건할지 모르겠으나 여성에겐 고된 노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 곽교신

'조선시대부터 근현대까지의 한국 미술에 나타난 여성의 노동'이라는 발칙한 기획 주제 때문에 오픈 전부터 기대를 모으던 이화여대박물관의 특별전 <여성·일·미술>을 둘러본 느낌은 예상만큼 발칙하거나 도전적이지는 않았다. 전시는 페미니즘을 다루고 있는데도 전시된 결과물들은 페미니즘을 외면하는 듯하다.

'한국 미술에 나타난 여성의 노동'이라는 부제가 달렸으면서도 이 특별전 각 전시실은 페미니즘을 애써 외면하는 것 같다. '이 땅의 반'이면서 반 만큼의 대접을 받지 못하고 살았던 '여성 문제'에 대한 의외의 소극적 전시가 관람객으로 하여금 또 다시 '여성 문제'를 걱정하게 한다. 소극적 전시로 관람객 스스로 걱정을 유발하게 하는 반전의 역발상 기법이라도 숨어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 전시는 대성공이지만.

전시를 보며 떠오르는 이런 걱정은, 모여 있을 때는 양성평등을 주장하면서도 혼자가 되면 다시 이 땅 전래의 차별적 여성상으로 돌아가곤 하는 많은 페미니스트를 생각하는 일종의 안스러움이기도하다. 그러나 페미니스트의 한계는 페미니스트 개인의 능력 한계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긍정적 한계인지도 모른다.

이번 전시 곳곳에서 보이는 그 한계가 절망이 아니라 아름다움으로 느껴짐은 필자가 남성이기에 가지는 또 하나의 관념적 여성 차별인가. 그래도 이 전시는 이대박물관 특유의 기획력이 곳곳에서 보이며 '차가운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김장 담그기는 여성이 담담하는 연례 행사로 고된 중노동의 하나였다. 방안에 들어앉아서 약자(여)의 중노동을 바라보는 강자(남)의 눈매가 매섭다. ⓒ 곽교신

전시가 던지는 메세지는 전시 제목을 보고 찾아가는 관람객의 기대보다는 약할지 모르겠으나, 이 전시의 주체가 미술관이나 여성회관이 아니라 박물관이라는 점을 관람내내 잊으면 안 될 것이다.

무거울 수도 있는 주제를 산뜻하게 처리했다. 박물관은 나이 먹은 유물의 집합소라는 일반상식도 고의적으로 예리하게 도려내려는 듯하다. 박물관의 복합 문화공간화 당위성을 효과적으로 외치고 있는 것이다.

전시 작업의 진두 지휘는 이대박물관 학예실의 박미연, 송희경 두 젊은 연구원이 맡았다. 젊은 큐레이터들에게 박물관은 더 이상 나이 먹은 유물들의 창고가 아니라 무엇이든 올려도 좋은 신나는 무대일 뿐이다.


또 다른 권위 의식이 아닌지...

지난 6월 9일에는 특별전과 같은 주제의 발제문들로 박물관 강당에서 학술 심포지움이 열렸다.
발표자의 한 사람인 정병모 경주대 교수는 <김홍도의 '매해파행'과 여성 풍속>이란 발제문에서 그림에 나타난 여성의 일(사회 풍속)을 통해 그림 자체를 분석하고 그림이 그려진 시대에 인식되던 여성의 사회적 존재 가치도 유추했다.

그 외의 발제자들도 그림에 나타난 여성 노동을 통해 미술사적 또는 여성학적 분석을 하는 독특한 시각을 제시했다.

특별전 행사의 하나로 열린 학술 심포지움의 종합토론 시간. 질문자까지 단상에 앉아 플로어와 단상 착석 인원이 비슷하자 좌장 윤난지 교수는 머쓱하게 웃었다. ⓒ 곽교신

이 심포지움은 시종 진지하게 조선 및 근현대 미술에서 여성 노동이 어떤 시각으로 다루어졌는지를 논의한 좋은 학술발표회였다. 그러나 청중이 듬섬듬성 빠져나간 발표회 끝 순서인 종합토론 시간에, 질문자와 주제 발표자가 모두 단상에 올라가 객석보다 무대 위 사람이 더 많은 것을 보며 좌장 윤난지 교수는 머쓱하게 웃었다.

이 모습은 남성의 성적 우월 의식을 타파하겠다는 여성운동가들의 또 다른 권위 의식을 상징적으로 보인 듯 했다. 넓은 객석을 놔두고 질문자들을 굳이 좁은 무대에 앉힌 것도 일종의 권위의식이라 볼 수 있다. 윤 교수의 머쓱한 웃음이 아니라 양성평등이란 말을 꺼내는 것 조차 머쓱한 사회가 될 때 이런 특별전의 목적과 사회적 공로는 뜻이 깊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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