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치 코드> 영화평에 대한 반응들에 대한 다소 긴 답변

네가지 주요반응과 그밖의 반응들에 대해서.

검토 완료

노광우(nkw88)등록 2006.06.05 15:47
우선 제 글에 관심을 가져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어차피 영화평이라는
것도 일종의 커뮤니케이션이고 대화이니 전에 썼던 글에서 미진했던 부분들과
답글을 남겨주신 분들의 지적 및 궁금한 사항에 대해 제 대답을 드리는 것도
괜찮을 것같아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아울러 제 글을 읽으신 분들과 이 자리든
다른 자리든 더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 제 글이 수준이 낮다는 반응들이 있었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그저 죄송
할 따름입니다. 여러분의 눈높이에 맞는 글을 쓰지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
지금으로서는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없는 것같고 단지 앞으로는 더 좋은 글
을 쓰고자 노력하겠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을 것같습니다. 어떤 분은 모 신문
의 유명한 영화평론가분을 거론하시기도 했는데, 저도 그 분 영화평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분의 해박한 지식과 유려한 문체는 그분이 어느 매체에 종사
하시건 간에 우리사회의 소중한 문화적, 지적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과
같은 해박한 지식과 유려한 문체를 선보이기 위해서는 더욱 분발해야할 것
같습니다. 아울러 많이 부족한 데도 불구하고 제 글을 실어주신 오마이뉴스와
제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둘째,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사이온의 그랜드 마스터였다는 대사가 나온 것을
제가 파악하지못한 것은 제가 잘못한 것입니다. 더 신경을 써서 대사를 들었어
야하는데 제가 못들었군요. 단지 좀 이 점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제목이
'다빈치 코드'인데 다빈치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 로버트 랭던(톰 행크스)
와 리 티빙(이안 맥컬런)의 '대사'로 처리된다는 점입니다. 랭던과 티빙이 코드와
성배의 향방을 찾는 과정에 대해 토론할 때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임신한
마리아 막달레나가 아이를 낳는 장면, 니케아 종교회의를 통해 교리의 정통을
세우는 장면, 성당기사단이 교황의 인준을 받는 장면 등등 영화 속에서 주요한
역사적 사건들이 '장면'으로 삽입되고 있는데 비해, 정작 다빈치가 비밀결사회원
들과 모의하는 장면이라든지, 다빈치가 코드를 만들어 그림을 그리는 장면같은
것은 나오지 않습니다. 이 영화와 관련된 정보를 찾아보시면 등장인물들중에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없고, 따라서 그 역을 맡은 배우 이름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실 겁니다.

셋째, 원작소설을 읽어보라고 글을 써주신 분들이 계십니다. 원작소설을 읽고
난 후에 영화를 보고 쓴 영화평과 원작을 읽지않고 영화를 보고 쓴 영화평이
다른 것이지 결코 반드시 영화평을 제대로 쓰기 위해 원작을 읽어야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김광림씨의 희곡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연극 <날 보러와요>를
보지않고도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에 대한 영화평을 쓸 수 있고, 필립
케이 딕의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자양의 꿈을 꾸는가>를 읽지않고도 리들리
스코트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에 대한 영화평을 쓸 수 있는 법입니다.
김호식씨나 귀여니씨의 원작을 안읽었다면 영화 <엽기적인 그녀>와 <늑대의 유혹>
에 대한 영화평은 원작을 안읽은 대로 나오게 마련이라고 봅니다. 수많은 영화들
이 원작소설이나 연극을 바탕으로 만들어집니다. 그렇다고해서 영화평을 하는
사람들이나 영화감상을 쓰는 사람들이 그 모든 소설을 읽거나 연극을 미리 본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그저 자기가 본대로 느낀대로 적을 뿐입니다.

넷째, 서구에서 나온 거니 서구주의적인 것은 당연하지않은가라는 반응이 있었습
니다. <다빈치 코드>이외에 다른 할리우드 액션어드벤쳐 영화들을 예를 들어
설명해보겠습니다. <인디애나 존스>시리즈나, <툼 레이더>시리즈, 상당수의 <007
시리즈>, 그리고 최근에 개봉된 <미션 임파서블 3>을 보면 비서구사회를 배경
으로 모험활극이 펼쳐지는데요, 대체로 그 활극의 발단은 취득, 수집, 소유의
대상이 지구상 어딘가에 있고 나머지 얘기는 그것을 악당이 차지하는 것을 막기
위해 결국은 내가 가지거나 아니면 그 곳에 그대로 숨겨두고 다른 사람들이 접근
못하게 하자 이런 식으로 결말을 짓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취득의 대상이 되는
것은 보물일 수도 있고, 핵폭탄일 수도 있고, 토끼발일 수도 있고, 여하튼
어마어마한 금전적인 가치를 지닌 물건이며 그것을 찾으려하는 등장인물들의
주요동인은 '탐욕'인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인디애나 존스 2편>을 보면 인디애나 존스가 인도의 한 마을에서 잃어
버린 신비의 돌을 찾으러 가기 전에 그 돌을 차지하게 되면 '부와 영예'를 얻을 수
있게 되리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즉, 비서구사회에는 서구인들이 부와
영예 그리고 권세를 얻게 해줄 수 있는 어떤 물건이 있는 곳으로 제시되지
뭔가 서구인들이 숭배하거나 경외하거나 존경할 만한 대상이 있는 곳으로 제시
되는 경우는 드뭅니다. 예외가 있다면 장 끌로드 반담이나 스티븐 시걸이 나오는
무술액션영화에서는 개중 동양인 사부한테 뭔가 배우는 장면이 나오긴 합니다만
이들이 나오는 영화들이 여름철의 블록버스터였던 적은 별로 없는 것같군요.

이렇게 서구에는 경배의 대상이 있고, 비서구에는 소유, 또는 약탈의 대상이
있는 거라면 그것을 보호하고있는 사람 또는 쥐고있는 사람을 대하는 태도
역시 달라집니다. <인디애나 존스 3편>을 보면 마지막에 인디애나 존스가 성배
를 지키는 기사를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인디애나 존스는 그 기사와 대화를
나눕니다. 그렇지만 그 성배를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세계를 재패하기위해
가져야할 무기라고 보기에 나치들은 기사와 대화를 나누지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대체로 비서구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액션 어드벤쳐 영화들을 보면 물건을 찾기
위해 주인공이 도와주는 조력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는 많지만 그 주변인물
들을 대화의 대상으로 여기는 장면들은 극히 드뭅니다. 이럴 경우 비서구인은
주변화되거나 아니면 제거의 대상으로 제시됩니다.

영화 <다빈치 코드>는 결국 예수의 혈통을 이어준 마리아 막달레나의 시체
내지는 유골이 서유럽, 영국 아니면 프랑스 어디에 있다라는 가정을 푸는 과정
입니다. 즉, 자기들의 문화적 정체성과 정신문화를 대표하는 신성한 유물이
비서구사회가 아닌 서구사회, 그것도 동유럽이 아닌 서유럽에 있다고 보는 겁
니다. 그리고 약간의 여지를 남겨놓긴 했지만 영화 속에서 성배인 마리아
막달레나의 유골 또는 유체가 영국의 어느 한적한 시골의 교회에 있으며 그곳을
찾은 여자 주인공이 그곳에 자기 할머니를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여자
주인공은 프랑스 국적의 소유자이며 프랑스인으로 살아왔지만 그녀의 혈통의
영국에 있는 것이며 그녀의 할머니는 '영국인'이고 그 할머니가 이 프랑스인
손녀를 마치 고향에 돌아온 손녀로 대하는 것은 기독교-유럽문명이 어디로
귀착되는가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 여자 주인공이 정말 예수의 후손이라면
그녀의 뿌리는 이스라엘 어디인가에 있는 것일텐데 왜 이스라엘이 아니고 영국
으로 귀환하는가 그것은 곰곰히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 성당기사단은
성배를 프랑스도 아니고, 독일도 아닌 하필이면 영국에 가져다놓았을까. 왜
저자는 또는 영화는 그렇게 설정을 한 것일까요.

이것을 정치적으로 해석해봅시다. 영국이라는 나라는 산업혁명 이전에는 유럽의
변방국가였습니다.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프랑스나 스페인을 따라잡은 것
은 16세기를 거쳐 17세기 정도입니다. 헨리 8세가 카톨릭교도인 매리와 이혼하고
앤 볼린과 결혼하기위해 로마 카톨릭과 결별하기 이전에는 영국의 기독교도
카톨릭이었습니다. 같은 유럽이긴 하지만 영국의 사고나 문화는 프랑스나 독일
과는 약간 다르게 전개되어온 것으로 압니다. 그래서 영미철학과 대륙철학이
갈리기도 하고, 아울러 유럽통합과정에서도 영국이 미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그런지 다소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그것을 보고
홍세화씨가 앤소니 기든스류의 제3의 길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라고 일갈한 적이
있지않습니까. 제가 전에 쓴 글에서 기자동래설을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기자가
은주왕의 횡포를 피해 동쪽으로 와서 건국한 나라가 조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예전 일부 조선 유학자들의 견해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조선도 중국에 못지않은
유장한 역사를 지닌 유교문명국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던 거지요. 마찬가지로 이
영화도 그런 의식이 담겨있다고 봅니다. 예수의 혈통이 영국에 있다는 것, 예수
의 후손이 오랫동안 살아온 고향은 유럽의 다른 나라가 아니라 영국이라는 것.
유럽문명의 정통은 바로 영국이라는 것 또는 비록 오랫동안 변방에 있었지만
프랑스나 이탈리아같은 유럽 문명의 중심부에 못지않은 오랜 전통을 지녔다는 것.
제가 얘기하고자했던 서구주의는 이런 내용들을 담고있습니다.

한편, 이 영화와 기독교에 대해서 한마디하자면,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중에서
기독교를 별로 안좋아하시는 분들이 계실 줄 압니다. 그런데 대체로 기독교를
안좋아하시는 분들은 몇몇 기독교도나 한국의 몇몇 교회가 보여주는 부정적인
행태 때문에 기독교를 싫어하시게 되셨을테지만 그렇더라도 인류의 역사에서 예수
의 성인으로서의 지위에 대해서는 문제를 삼는 것같지는 않습니다. 위대한 종교
의 가르침이 기본적으로 같다면 예수의 가르침이나 희생은 기독교도들만의 것도
아니고,부처의 가르침이 불교도들만의 것만도 아니고, 우리 모두가 공유할 만한
것이라고 봅니다. 기독교가 유럽을 기반으로 성장을 했고 불교가 아시아에서
유래되어 세계적인 종교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봅니다. 즉, 기독교 문화는 유럽
문화의 바탕이 되긴 했지만 그 가르침이 이제 더이상 서구인들만의 것이라고
생각하지않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예수의 혈통이 유럽에 있다라는 가정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혈통이 이스라엘에 있었을 수도
있고, 동쪽으로 가서 다른 중동지역에 갔을 수도 있고 그 후손이 자기 조상이
예수인지 누군지도 모르고 다른 종교를 가지고 살았을 수도 있다는 시비 정도는
걸어볼 수 있다고 봅니다. 예수의 후손이 다른 종교를 가지고 비서구 사회에
산다고 가정했을 때 과연 이야기는 이 후손을 위의 액션어드벤쳐물들처럼 주변화
또는 제거의 대상이 되는 타자로 여기는 시선을 고수할 것인가, 아니면 자각과
개종이라는 과정을 거쳐 이 후손이 유럽인으로 되돌아오는 과정으로 그릴 것인가,
아니면 이 후손이 가진 다른 종교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것을 공경하고
배우는 과정이 될 것인가.

그밖에 오푸스 데이의 조직, 정교회의 조직이나 십자군과 관련된 반론이나 질문
도 있으셨는데요, 뭐 제가 서양사학이나 교회사 전공자가 아니라서 그에 대해
뭐라고 더 드릴 말씀은 없습니다. 단지, 이 작품이 상상력이 자아낸 '허구'
라면 그리이스 정교회도 카톨릭이나 개신교만큼이나 커다란 영향력을 지닌 기독교
의 한 전통이니까 정교회에 어떤 가상적인 조직이 있다고 가정하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봅니다. 이건 이'허구'를 가능케한 상상력
과 문화적 배경에 대해 시비를 걸어본 겁니다. 그러면 안되나요?

움베르토 에코의 원작소설의 영화화가 가능하냐는 질문도 있었습니다. 저도
원작의 방대한 분량과 시대적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서는 2-3시간 길이의 영화로
만들기보다는 20부작이 넘어가는 미니시리즈로 만드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미니시리즈가 아니라 한편의 영화로 만들었을 때 에코의 소설
이 어떤 영화로 나오게 되는가는 바로 장 자크 아노의 영화 <장미의 이름>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조정래씨의 소설 <태백산맥>과 임권택 감독의 <태백산맥>
이 다르듯이, 원작소설과 영화는 다릅니다. 즉, 원작소설의 영화화가 가능하냐
는 질문은 질문 자체를 재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각색과정을 거쳐 최종적으로
나온 영화는 원작소설과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밖에 제가 명시적으로 대답하지않은 반응들이 좀 있습니다만, 위에 쓴 글에
그 답변이 담겨있다고 봅니다. 쓰고나서 보니 좀 길긴 기네요. 이 밖에도 더
얘기할 것들이 있으면 이 자리나 아니면 다른 자리에서 더 대화를 나누었으면
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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