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서 하늘로 날아 보기

[가자가자 대학박물관 4] 한국항공대학교 '항공우주박물관'

검토 완료

곽교신(iiidaum)등록 2006.04.20 12:10

엔진을 제외하고 국내 기술로 제작된 국산항공기 KT-1의 정밀 모델. 우리나라 항공기 역사를 고려하면 KT-1 의 성능은 놀랍다. 약간의 변경으로 정보통제기 또는 경전투기로 사용이 가능하다. 나라 안에 두 대뿐인 정밀 모델로 국방과학연구원 기증품. ⓒ 항공우주박물관

박물관계 중진 인사의 정중한 권유에 항공우주박물관으로 향하면서도 내내 고개를 갸우뚱거린 것은, 박물관이 아니라 초중학교 학생들을 위한 '과학관'이라 부르는 것이 맞는 것으로 보여 기사 취지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국항공대학교 항공우주박물관은 그런 염려를 단번에 깼다.

인류의 신개척지인 항공우주분야가 광범위하고 난해할 것은 능히 짐작이 가는데, 관람자의 감각을 파고드는 전시 구성은 어려운 주제를 쉽게 이해시키고 있었다. 또 왜 과학관이 아닌 박물관이라 이름짓고 있는지 관람객 스스로 깨닫게 하고 있었다. 관람객들은 사용물이자 동시에 유물이 된 전시품들을 보면서 오래된 물건의 집합소라는 박물관의 고정 관념을 고치게 될 것이다.

국내엔 항공관련 소규모 전시관 외에 이런 박물관의 개관 예가 없었다. 전시물도 전통적인 박물관을 떠올리면 마냥 생소하기만하다. 경남 사천과 제주에 유사한 성격의 전시관은 있으나 격을 갖춘 항공우주박물관은 항공대학교가 유일하다.

자연히 개관준비도 힘들었고 개관 후의 운영도 고난의 연속이란다. 학교의 지원엔 한계가 있는 빠듯한 예산, 정부와 지자체의 이해 부족, 과학 놀이터로 오해하는 관람객의 선입견 등 박물관 운영 여건은 하나도 만만한 것이 없다.

이렇듯 2004년 8월 개관한 항공우주박물관은 아직 생소한 박물관이요 연약한 새싹이다. 그러나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 내의 항공우주박물관이 왜 세계 유수의 박물관으로 불리게 되었는지 그 해답을 항공대학교의 항공우주박물관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과학관이 아니라 박물관

부준홍 관장. ⓒ 곽교신

개관을 진두 지휘한 창립 요원으로서 과학관이라 하지 않고 박물관이라 이름 붙인 이유를 부준홍 관장에게 묻자, "동등한 비교 대상은 아니지만"이란 단서를 달면서도 거침없이 미국의 스미소니언 박물관을 예로 든다.

"많이 늦긴 했지만 우리 나라도 이런 박물관 하나쯤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이 부 관장의 소신이다. 그래서 부 관장은 모든 어려움을 개척자가 겪는 시행착오로 알고 하나하나 해결한다는 각오를 한다고. 공무원이나 관람객들의 이해 부족도 이런 박물관을 본 경험이 없어 생기는 당연한 결과로 이해한단다.

"여건은 힘들지만 우리에겐 우수한 두뇌가 있다."는 부준홍 관장은 제대로 된 항공우주박물관을 만들어 가겠다는 의지로 가득하다. 부 관장은 항공우주공학 분야에 젊음을 바친 학자로 경영학과는 전혀 거리가 멀지만 "혹시 부전공이 경영학 아니냐"는 조크를 던져야했을만큼 박물관 경영은 의외로 야무지고 치밀했다. 보직을 맡기 전에는 어딘지도 모르던 경기도청과 고양시 관계 부처를 업무 협조를 위해 부지런히 드나든다는 그의 눈빛은 벤처 기업 사장 같았다.

대학 지원 예산이 전부이니 "항공우주박물관"이라는 거창한 이름이 무색하게 박물관의 예산은 빠듯하다. 이 사회를 위해 꼭 필요한 박물관이라는 사명감하나로 부준홍 관장이 관련 연구기관과 지자체를 찾아다니며 박물관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재정 및 행정 지원을 요청하는 이유는, 자신이 교수로 재직하는 학교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를 위해서라고.

하긴 라이트 형제에서 비롯된 일천한 항공기 역사이니 외국의 항공 관련 박물관들도 노하우가 있으면 얼마나 있으랴.


감각적이고 역동적인 전시물들

항공기 조종석 모양의 비행 시뮬레이터. ⓒ 곽교신

항공우주박물관 전시 구성의 특징은 관람객이 직접 만지고 보고 듣는 현장감에 있다. 최대 인기 전시품인 비행 시뮬레이션이 좋은 예다. 주말에는 조종간을 잡아보려고 대기하는 줄이 두 대의 시뮬레이션에 앞에 길게 늘어선다고.

'가상항공체험관'은 관람객이 화면 속의 공항에서 비행할 기종을 직접 선택하고 이륙시킨 후 자유자재로 비행자세를 바꾸는 시스템이다. 입체 안경을 끼고 대형화면에 몰입하다 보면 관람객이 항공기를 조종 중인 착각에 빠진다.

'우주여행실'도 인기 만점이다. 역시 관람객이 직접 동작 시켜 턔양계의 각 위성을 원하는대로 돌아볼 수 있다. 도중에 만나는 우주정거장은 거의 완벽한 현장감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이 가상 체험 시스템은 약간의 보완으로 실제 비행훈련에서 쓰이는 것들인데 기본 프로그램을 모두 항공대에서 개발한 것들이라고 한다.

항공기 사고 때마다 관심의 촛점이 되는 블랙박스 실물. 오른쪽이 비행기록장치, 왼쪽이 조종실 음성기록장치. ⓒ 곽교신

이런 역동적인 전시 콘텐츠가 흥미 부분만 강조되면서 항공우주박물관이 학생들의 과학 놀이터라는 인식이 되었음은 아쉬운 점이다.
결코 어린 학생들을 위한 과학놀이터가 아님에도 단체 방문객은 어린 연령층이 많은 편이다. 유치원 어린이들의 방문이 교육적으로 해로울 것은 없지만, 전시물의 내용은 초등학교 고학년은 되어야 최소한의 이해가 되고 깊은 이해는 고등학생 이상은 되어야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관람 연령층을 제한 할 수는 없을테니 '과학 놀이터'라는 인식을 씻어내는 것은 박물관측의 아이디어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관람자 입장에선 좀 더 다양한 전시물이 아쉽다. 새로운 전시물의 확보는 예산과 맞물려 모든 박물관의 기본적인 고민이지만, 항공우주박물관의 특성상 거의가 고가의 완제품 또는 부품이고 보안상 이유도 있어 기증을 꺼리기도 하는데 대학만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단다. 때문에 박물관 기획전 따위는 아직 꿈도 못꾼다는 부 관장의 말이다.

최근 기증되어 3월 말에 전시가 시작된 터보 팬 제트 엔진. 보잉 747 여객기에도 장착된 엔진으로 이 상태로도 가격이 만만치 않다고. ⓒ 항공우주박물관



정부와 지자체의 관심이 아쉽다.

어쨌던 국내 최초의 항공우주박물관 개관이라는 항공대의 시도는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관람객 수가 모든 성과를 대변하진 않지만 개관 1년 5개월만에 관람객 8만명 돌파는 의미가 크다. 외국의 유수한 관련 박물관을 벤치 마킹하며 개관했던 항공우주박물관은 이젠 자신이 벤치 마킹의 대상이 되고 있다.
연간관람객 중 항공대 학생은 6% 정도에 불과한 수치로만 봐도 대학박물관이라는 학내 울타리를 벗어나 지역 사회 및 국가의 문화 자산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도와 고양시등 박물관 소재지 지자체와 상호 유기적인 협조를 이루는 것은 항공우주박물관의 과제란다. 박물관의 중요성과 희소성을 관련 부처에 이해시키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도 작년엔 고양시에서 적으나마 예산 지원이 있었던 것은 희망이 보이는 일이다.

아리랑 1호 위성 축소 모델이 박물관 천정에 실감나게 걸려있다. 관람객 수 백명 중에 한 학생이라도 위성 모델을 보며 각오를 다진다면 항공우주박물관의 존재 이유는 충분하다. ⓒ 곽교신

어려운 현실을 학자다운 자신감으로 이겨나가는 부준홍 관장을 보면서, 대기업에 떠넘기기 전까지는 국립대학이었던 항공대학을 떠올리며 항공우주박물관은 나라에서 깊은 관심을 가져야 마땅한 국책박물관이라는 생각을 한다. 기부금으로 세우긴 했지만 미국의 스미소니언도 물론 국립박물관이다. 국가가 정책적으로 운영해야 할 박물관을 대학이 운영하고 있으니 나라가 할 일을 대학이 대신 짊어진 셈이다.

어려운 운영 여건에도 불구하고 입장료를 받는 것을 부 관장은 마치 자신의 죄인 듯 미안해한다. 올 봄에 500원을 올린 것은 더 미안해했다. 그러나 그 입장료(2500원)를 받지 않으면 이 훌륭한 사회교육 인프라는 몇 개월내에 문을 닫을 것이고 우리는 값싸고 좋은 문화 공간 하나를 잃게 될 것이다.

학교 특성을 살린 전문화된 전시 콘텐츠, 외부 관람객의 꾸준한 관심, 박물관 존재의 국가적 자존심 등 여러가지 면에서 항공우주박물관은 대학박물관이 학교 뿐 아니라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표본이 아닐까.
ⓒ 2007 OhmyNews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