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살 어린 나이에 북한에 납치당한 요코타 메구미 상을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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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actor1115)등록 2006.04.17 19:29

요코타 메구미씨의 납치전 소녀시절의 사진과 성인이 된후 북한으로 부터 제공받은 사진(맨 왼쪽) ⓒ 김재영

요코타 메구미씨의 아버지 –요코다 시게루

북한에 납치 당해 북한으로부터 자신의 딸이 사망했다는 통고를 받은 요코다 시게루씨는 현재 북한에서의 요코타 메구미씨의 남편 김용남씨와 북에서 낳은 딸 김혜경씨와의 디엔엔이 감정결과 일치하였다는 것을 북으로 부터 통고 받고 현재 한국 메스컴에 등장하는 김용남씨의 가족들과 힘을 합쳐 자신의 딸의 무사귀환은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면서 북한이 일방적으로 말하는 사망설에 대해서는 일체 인정하지를 않았다. 또한 북한에 일본정부의 단호한 경제 제제를 요구하였다.

요코타 메구미씨의 부모님 (아버지- 요코타 시게루,어머니- 요코타 사키에씨) ⓒ 김재영



가토 히로시 –북조선 난민 구원기금 소속


북한에 대한 경제제제를 일본정부에 강력히 요구한다. 북한에 의한 무력 도발이 있을 수도 있으나 무력도발을 하여도 철저하게 대처할 각오로 북한에 끌려가는 정책을 펴서는 안된다. 라는 주장을 하였다.

북한에 대한 강력한 경제 제제를

현재 탈북자들의 많은 증언에 의한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현실과 탈북자들의 중국에서의 반인권적인 문제-인신매매 ,성매매 등이 사회 문제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 문제와 더북에 지금 제가 속해 있는 NGO 에서는 탈북자들의 인권 문제와 탈북자들의 한국과 일본에 탈출할 수 있는 루트개발에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특정실종자회에서 조사한 결과 북조선에 의한 일본인 사백육십명이 납치 가능성이 있다고 파악 되었고 그중에서 삼십사명이 북한에서 이미 목격된바가 있다고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해 확인 된바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북한에 납치 당한 것으로 일본 정부에 의해 인정받은 사람은 불과 열여섯명에 불가하며 인정받은 사람들조차 그들에 대해 북한에 생사 여부,와 송환 문제에 대해 북한으로 부터 구체적인 답변을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북한이 인정한 납치 피해자수는 단지 여섯명이고 그중 요코다 메구미씨는 사망하였다고 말하였습니다. 이런 북한의 거짓 증언을 일본정부는 더욱 강력하게 항의 하여 그들의 조속한 송환 을 요구해야 합니다.

또한 이것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북한에 대한 경제제제를 가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으로 충분히 고려 되어야 합니다. 경제제제를 함으로 북한의 자체 경제몰락을 일으켜 북한의 고위층들의 조직붕괴를 일으키게 만들어야 합니다.

북한 내부로부터 자멸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한 예를 들면 북한의 위조 지폐생산을 중지시키기위해 북한이 돈세탁을 위해 주로 사용하던 은행을 미국의 제제에 의해 원천봉쇄 하였고 그로인해 북한에서는 외화 획득에 큰 타격을 입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례로 매년 김정일의 생일에 김정일이 고급 간부들에게 나누어주었던 외국의 값비싼 선물을 올해는 김정일이 주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김정일이 그들에게 줄 선물을 살 외화 획득 마져도 힘든 지경에 빠져 있다는 실례입니다. 이것이 말하는 것은 북한의 고위 정치 특정 계급들의 불협화음을 야기 시킬 도화선이 될 가능성이 충분이 있고 이것이 더욱 커져 북한 고위 정부의 내부붕괴로 이어질수 있게 만들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북한에서 수출 되어 오는 조개를 사먹지 말기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것도 그런 경제제제의 일환으로 북한에 현재 큰 타격을 주고 있다는 것이 북한 내부인들의 정보에 의해 입수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까지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경제제제에 대한 입장은 하지 않겠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게 만드는 것이 앞으로의 우리의 활동의 주요 목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국 납치피해자가족 협의회장
최우영씨

납치피해자가족협의회 (오른쪽 박연옥씨, 왼쪽-최우영 회장) ⓒ 김재영

저의 아버지는 제가 고등학교1학년때 납치되었습니다. 동진호라는 배를 타고 백령도근처에서 조업도중 납치를 당했습니다. 당시 정부에서는 적절한 조치를 취해 곧 돌아온다고 말하였으나 그후 북한과의 미묘한 외교 마찰로 인해 정부로 부터 바로 귀한 하긴 힘들것이라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당시 저는 어렸기에 아버지가 계시다고 하는 정치범수용소가 어떤곳인지 알지 못했고 당시 한국의 납북자들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이런 피해를 당한 채 남아 있는 한국의 납북피해자 가족들은 한국 공안 정부의 감시와 북에 알려지면 아버지가 고문을 당한다는 소문에 의해 어디에도 우리들의 현실을 알릴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일본의 납치 피해자 가족이신 요코다메구미씨의 가족들을 만나면서 다시 한번 납치 피해자들의 어려움을 가슴깊이 느꼈습니다. 요코타 메구미씨의 사진전을 호텔 테레비젼을 통해 보면서 저는 아버지의 추억이 떠올라 잠을 잘수가 없었습니다. 다정하고 부지런하신 아버지는 항상 어머니와 저희에게 배를 타기 전에 편지를 주었습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 날도 편지를 주셨지만 아버지는 그대로 북으로 가셨습니다. 아버지는 납북되기전 정원의 작은 연못에 잉어를 넣자고 약속하였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북으로 가시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어디 계세요. 북한 어디 계세요. 아버지 아버지라고 마음속으로 항상 부르고 있지만 아직까지 공식적으로는 아버지의 생사 확인조차 되지않고 있는 형편입니다. 저는 지금도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기다릴 것입니다. 아버지의 딸의 일상은 이십년 전 삼십년전의 그날로 멈춰져 버려 있습니다. 다행히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습니다. 하루 빨리 납치 피해자들이 가족과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한국과 일본은 여러가지 면에서 복잡하게 얽혀있습니다. 하지만 이것 만큼은 서로 협력하기를 바랍니다. 한국에서도 지금은 납북자 문제가 알려져 통일부장관 이종석씨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납북자가 하루 빨리 돌아오게 만들고 납북자 문제에 대한 법제정도 조속히 처리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제가 여기까지 오기에는 일본 단체의 초대에 의해 실현되게 되었습니다.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거의 지원단체가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일본에서의 단체들이 도와주어 힘을 얻고 다시 일어서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납북자 문제 뿐만아니라 한국의 납북자 문제에도 관심과 애정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에 돌아가면 더욱더 한일연대에 힘을 기울여 납북자 송환문제가 조속히 해결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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