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지겹다, 지겨워.

사는 게 지겨운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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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애(go0330go)등록 2005.11.28 18:43
사는 게 지겨운 아이




초등학교 2학년인 진희는 분식집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나, 돈까스 줘.” 또는 “나 라면 좀 줘봐.”라고 식당 안에 있는

아무에게나 반말을 툭툭 던진다.

“진이 왔구나? 돈까스 먹고 싶니?라고 물으면

아이의 대답은 항상 “응.”이다.




초겨울 바람이 제법 매서운데도 반팔 원피스와 슬리퍼를 끌고 와서

의자에 앉자마자 나 어렸을 적 우리 할머니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부르던 넋두리처럼 늘 했던 말을 하고 또 하곤 한다.

“우리 엄마랑 아빠랑 이혼했다.

그래서 아빠는 서울에서 새엄마랑 살고 나랑 오빠는

엄마랑 같이 산다? 아, 사는 게 지겨워. 나, 돈까스 좀 빨리 달라니까??




저 어린 것은 뭐가 그리 지겨운 것일까.

아이는 좀체 참을성이 없고 분식집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얌전히 앉아 있으라고 말이라도 할라치면

“손님은 왕이야, 그러니까 나 좀 냅둬!”

만 원짜리 지폐를 식탁 위에 던져 놓고 진이는 뭐가 그리 답답한지

한시도 가만있질 못하고 손과 몸을 분주히 움직인다.

“나, 돈까스 다 먹으면 라면도 줘.”

두 개를 다 먹으면 배 아파서 안 된다고 달래 봐도 진희의 고집은

식당 안에 있는 그 어느 누구도 꺾을 수가 없다.

오히려 “손님은 왕이니까 내가 먹다 남기면 아줌마가 다 먹어.”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하며 생글생글 웃는다.




이혼을 하고 아이 둘을 데리고 사는 아이의 엄마는

아침에 일을 나가면 밤 10시가 넘어야 집에 들어오니

늘 아이에게 돈을 주고 분식집에서 저녁을 사먹으라고 한다.

위로 오빠 하나가 있지만 늘 진희 혼자 오는 이유를 물으니

오빠는 항상 게임을 하면 배가 고프지 않다고 말한다고 했다.

아마도 컴퓨터 게임에 푹 빠져 있나보다.




밥을 먹으면서도 아이는 전봇대에 죽 앉은 여러 마리의 참새가 지저귀듯

혼자서 여러 마리의 참새 역할을 다한다.

진희의 재잘거림이 재미있어 옆 테이블에 앉은 손님들이 말을 한마디 시키면

아이는 열 마디의 대답으로 웃음바다를 만들곤 한다.




그런 진희를 보며 내 눈시울이 붉어지는 이유는

초등학교 3학년인 내 아들의 일기장에

엄마가 일을 나가면 동생을 돌봐야하니 귀찮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지도 못하고 동생을 챙겨야하니

지루한 하루가 되었다는 내용이 자주 올라오기 때문이기도 하고

엄마 퇴근시간만 기다리며 어두워진 집 근처에 쪼그리고 앉아서

엄마 오는 길목만 눈이 붉어지도록 쳐다보는,

보고 또 봐도 보고 싶은 내 새끼들의 외로움이 진희의 모습 속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진희는 돈까스와 라면을 다 먹고도 배고 고프다고 떼를 쓴다.

사는 게 지겹다는 아이는 정말 배만 고픈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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