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도 힘듭니다"라는 말은 못하나요

현대하이스코 크레인 농성 6일째 "살기만을 바랄뿐입니다"

검토 완료

박지영(loverjy33)등록 2005.10.30 12:17
오늘아침 걱정이 되어 눈뜨자마자 여수 형님댁에 전화를 했습니다. 전화기 너머로는 신호음만 들릴 뿐 기다리던 형님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아침 먹고 다시 한번 점심때가 되자 다시 한번. 저녁때가 되어서도 통화가 되지 않자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전화기를 붙잡고 다이얼의 숫자가 지워질 만큼 형님댁 번호를 누르고 또 눌렀습니다. 저녁 8시 30분이 넘어서야 형님과 어렵게 통화가 이루어졌습니다.

"형님. 어디 갔다 오신거예요? 왜 이렇게 통화가 안돼요"나의 다그치는 목소리에 형님은 "동서 이거 어디다가 좀 알려줘. 너무 분통하고 억울해서… 저러고 있는 내 남편이 너무나 불쌍하고 측은해서… 세상 사람들한테 이 사람들 상황 좀 알려줘…"라며 울분에 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목 놓아 우는 형님 앞에서 저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는 목소리로 알려주는 형님의 말씀은 정말 자기네들도 사람인데 어떻게 저렇게까지 할 수 있나 싶을 정도였습니다.

"형님 아주버님 회사에 갔다 오신 거예요? 무슨 일이예요? 말씀 좀 해보세요."
"동서. 자기네들도 사람들인데. 위에 내 남편들은 며칠째 굶으면서 식구들이랑 먹고 살아보겠다고 저렇게 힘들게 농성중인데, 전경들은 점심때가 되자 우리 앞에 보란 듯이 밥이랑 김치 펼쳐놓고 점심을 먹더라.굶어죽일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고 사온 김밥이라도 좀 넣어주자고 그렇게 애원하는 우리들 앞에서 말이야. 너무 기가 막혀 한 엄마가 그 전경들 중 한명한테 가서 밥이 맛있게 넘어가냐고 물어봤더니 씩~웃으면서 예 맛있어요 하더라. 그게 지금 우리들 앞에서 할소리야?"

어이가 없었습니다. 크레인위에서 농성 중이신 분들은 지금 며칠 째 굶주려있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는 가족들 앞에서 웃으면서 맛있어요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건가요. 아니 굳이 다른 장소를 놔두고 애태우는 가족들 앞에서 그렇게 식사를 하셨어야만 하는 건가요?

전경들이 무슨 죄냐? 위에서 시켜서 하는 것을 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예.압니다. 힘없는 군인들이야 명령에 죽고 명령에 사는 것을요. 하지만, 명령에 의해서 그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가족들 앞에서 식사를 하시더라도 말 한마디라도 '저희도 힘듭니다'라는 말을 해주실 수는 없으셨나요. 아니, 맛있게 넘어 가냐고 물어보는 힘없는 한남자의 아내 앞에 그냥 묵묵히 아무말없이 대응해 주실 수는 없으셨나요.

오늘 농성장에 나가셨던 형님은 뜻밖의 말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며칠 전 물대포 사건을 기억하시나요? 그저 우리는 진압대원들이 쏴대었다고 생각했던 그 물대포를 몇 달 전까지 같이 한 현장에서 얼굴 맞대고 일해 왔던 현장 동료들이 쏴댄 거라고 합니다. 그 모습을 본 아주버님 외 크레인 위 농성하시는 분들은 얼마나 어이가 없으셨던지 이 추운날씨에 팬티 한장만 걸친 채 나와 그 물대포를 맞으며 몸에 비누칠을 하셨다고 합니다. 두꺼운 잠바를 껴입어도 온몸이 떨리는 이 날씨에 말입니다.

그 모습을 본 만삭의 한 임산부는 졸도하는 사건까지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주위사람들이 놀라 119에 신고를 했지만, 달려온 119대원들은 회사 측에 물어봐야 한다며 졸도한 임산부를 그대로 두고 회사를 한바퀴 돌고 온 뒤 싣고 갔다고 합니다. 졸도한 임산부와 그 임산부에게 인공호흡을 하는 사람 그걸 지켜보는 많은 가족들은 그게 무슨 소리냐고 외쳤지만, 구급차는 황급히 그자리를 떠났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불법농성이고 불법점거 이지만 이래서는 않되는거 아닙니까? 그들이 아무리 비정규직이고 해고된 사람이라지만 굶주림과 추위 속에서 살아보고자 애쓰는 남편들을 바라보는 가족들에게 예전에 한 직장에서 출퇴근 같이하며 같이 식사를 하던 동료들에게 물대포 맞는 남편을 보고 졸도한 만삭의 한 아내에게 같은 인간으로써 적어도 이러면 안되는 거 아닙니까?

나이가 7,80드신 나이 드신 어르신네들이 자기네 아들들이 저렇게 굶고 있는데, 이손으로 물한 병 전해줄 수 없는데, 자기들이 어떻게 밥을 먹을 수 있느냐며 오늘도 그렇게 농성장을 지키셨다고 합니다. 나이 드신 분들도 이렇게 고생하시는데, 아직 젊은 내가 손놓고 있을 수만 있느냐며 형님은 내일 또다시 농성장으로 향하신다고 하십니다.

"동서. 버스비가 아까워 몇 정거장씩 걸어 다니던 내가 남편 얼굴 한번 보려고 집에서부터 그 먼 회사까지 택시를 타고 갔었어. 거기서 얼마나 울었던지 이젠 더 이상 눈물도 않나온다."

더 이상 형님이 그 먼 곳까지 아직 어린 조카들의 손을 잡고 아주버님을 만나러 가시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 2007 OhmyNews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