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징금을 털어라 (9)

전직 대통령의 집을 터는 간 큰 도둑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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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룡(ufoi)등록 2005.10.27 09:57
경비를 서고 있던 병력들이 보이지 않자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전만희 부부와 전현칠은 곧바로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불안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폈다.




‘예. 서장님. 전현칠입니다.’




전현칠이 핸드폰으로 관할 경찰서장에게 전화를 건 모양이었다.




‘예? 아.. 예. 알겠습니다. 예.’




관할 경찰서의 서장으로부터 들은 자초지종을 전현칠이 이야기 하자 전만희 부부도 안심이 되는지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




지요한에겐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지금쯤이면 필드에서 골프채나 휘두르고 있어야 할 전만희가 아들 현칠과 함께 나타난 것이다. 아마도 전현칠이 자신의 사업체를 지요한이 뒷조사 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챘거나 그래서 그 일을 상의하려고 아버지를 찾아온 것이거나 아니면 사업자금을 더 빌리려고 찾아온 것이 아닐까 하고 지요한은 추측했다.




전자일 확률이 높았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윗선에도 보고 하지 않고 극비리에 전현칠과 전만희에 대한 자금 추적을 하고 있었지만 또한 누구보다도 추징금 회수반 요원들을 믿고 있지만 그래도 누군가의 입에서 비밀이 새어나갔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었다. 그렇지 않다면 약속까지 깨가며 전만희가 전현칠과 함께 집으로 돌아올 것까지야 없을 테니까 말이다.




전만희가 돌아온 이유야 어떻든 지금은 이 사태를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가 지요한에겐 더 큰 과제였다. 오리발을 내밀까? 아니면 지금이라도 당장 뛰어 들어가 주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처럼 꾸며 석철과 범식을 데리고 나올까? 하지만 처음부터 그건 불가능한 일임을 지요한은 알고 있었다.




전직 대통령의 집에 도둑이 들었다는 사실이 그냥 아무 일 없이 스쳐지나갈 그런 사안은 결코 아니지 않는가? 그건 단지 석철과 범식을 자신의 계획에 끌어들이기 위한 지요한의 거짓말이었다. 석철이 전만희의 집에서 추징금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결국 석철과 범식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교도소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석철도 그런 상황을 짐작하고 있었다. 지요한의 눈물도 한몫 했지만 미친 짓인 줄 알면서도 도전해보고 싶었다. 자신의 능력을 한번 시험해 보고 싶었다. 일생일대 두 번 다시 이런 기회는 없을 것이다. 공식적이든 비공식적이든 국가의 후원을 받으며 그것도 전직 대통령의 집을 터는 일이란 흔하지 않을 뿐 아니라 생각만 해도 석철의 가슴을 흥분시켰다.




금지된 것을 더 갈구하고 오르지 못할 나무에 더 오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겐 왜 그런 반작용 같은 것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마침내 그 일을 직접 경험했을 때의 쾌감이란...




일반 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든 大盜(대도)만이 경험할 수 있는 쾌감을 석철은 즐기고 있었다. 단순한 도둑질의 차원을 넘어 석철에게 이 작업은 예술의 경지, 도의 경지였다. 모든 잡념을 집어던지고 오감과 육감을 총동원하여 목표물을 찾기 위해 몰입해 있는 이 순간.. 석철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터질듯 한 긴장감과 스릴, 때로는 목숨이 위태로운 아찔한 순간들을 석철은 사랑했다. 그런 위험들이 석철의 두뇌를 자극하여 엔돌핀을 생산해 내는 게 틀림없었다.




정신없이 보물찾기에 몰두해 있는 사이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석철은 본능적으로 뭔가 일이 틀어졌음을 직감했다. 창문으로 전만희와 이숙자, 전현칠이 대문으로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이런 X발!'




이대로 36계를 칠 것인가? 아니면 숨바꼭질을 할 것인가? 평소 같으면 칼로 몇 번 위협하고 그대로 도망치면 되겠지만 상대는 전직 대통령에 밖에는 삼엄한 전경들이 지키고 서 있으니 석철도 쉽게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석철과 범식은 전만희의 집 밖 상황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잠시 후 전만희와 이숙자, 전현칠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평소 의심이 많은 전만희는 아무래도 앞서의 일이 걸리는 듯 집안을 휘휘 둘러본 후에 안심을 했다. 안방으로 들어온 전만희가 겉옷을 벗었다. 이숙자가 전만희의 옷을 받으려 하자 전만희가 자신이 하겠다며 옷장 문을 열고 행거에 옷을 걸었다.




그 순간이었다. 전만희가 옷장 속에서 무언가를 잡아채어 어깨 너머로 집어 던졌다. 검은 물체가 방바닥에 쿵하고 떨어졌다. 범식이었다. 나이답지 않은 힘과 스피드였다. 범식은 바닥에 굴러 떨어지며 이숙자의 화장대에 부딪혔다. 와장창 소리를 내며 화장대 위의 화장품들이 방바닥에 떨어져 깨졌다. 어느 새 전만희는 장식장 서랍 속에서 권총을 꺼내들고 범식의 이마를 겨누었다.




석철은 다용도실 세탁기 속에 숨어 그 소리를 들었다. 석철이 들키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석철은 다른 숨을 곳을 찾아 재빨리 세탁기에서 나왔다. 그러나 전만희가 한발 앞서 석철의 가슴에 총구를 겨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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