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폐지로 가는 다른 접근

'안보론', '사문화론', '민생론'의 고지를 탈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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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민(lolla)등록 2005.10.21 08:26
흔쾌히 동의할 수 없는 주장들도 섞여 있지만, 강정구 교수와 장시기 교수는 국가보안법의 논리적 기반을 뒤흔들어 놓았다. 철들자 망령든 채로 어느덧 환갑을 넘어버린 매카시즘의 눈에는 강정구가 더 없는 친북분자로 보였을 것이다. 기형적이고 굴절된 ‘근대화’를 신주단지처럼 모셔온 박통진리교도들에게 김일성을 ‘근대적 지도자’로 일컬은 장시기의 언행은 불경죄에 해당할 것이다. 하지만 강정구는 후속 인터뷰를 통해 이북 체제에 대한 거리감을 솔직하게 밝혔고, 장시기는 평소 견지한 ‘탈근대’의 신념을 준거로 김일성을 비판적으로 고찰하였으니, 수구세력은 과녁을 골라도 단단히 잘못 골랐다.


보안법의 고갱이는 ‘찬양·고무죄’로, 엿장수 맘대로 걸면 걸리는 그런 법이다. 자, 한번 걸려 들어보자. 나는 분단 직후에는 이남보다 이북에 더 큰 정통성과 정당성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찬양·고무다! 날 구속하라. -이 부분을 읽고 말고는 각각의 자유에 맡기겠다: 또한 나는 민주화운동과 산업화의 결실로 체제정통성은 이남에게 넘어 왔다고 확신한다.-



유엔과 미국이 폐지를 권고한 마당에도 존치를 고집하는 자들은 반국제적 사범인데, 더 큰 문제는 개정이나 대체입법, 형법보완을 운운하는 공범들에게 있다. 찬양·고무죄를 비롯한 이른바 독소조항을 삭제하지 않는 한, 소폭 개정은 존치보다 더 기만적이다. 독소조항을 제하고 나면 기존 법률과 거의 포개어지므로 전면개정이나 대체입법도 쓸데없는 사기극이다. 국가보안법 폐지 후에 안보공백이 발생한다는 근거가 없으므로, 형법보완도 불필요하다.



존치 아니면 폐지다. 역풍을 맞으면서도 결론은 더 뚜렷해진다. 허나 폐지론자들은 다른 접근을 시도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폐지논리들은 당위성을 온전히 설파하지는 못했다. 한국사회의 후진성을 감안한다면, 인권보호의 명분으로는 폐지론이 민주주의의 장벽, 마의 50%를 돌파하기는 힘들다.



남북화해론은 더 큰 문제가 있다. 보안법의 운명을 한반도 정세와 조선의 변동에 내맡겨 버리는 꼴이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은 탈냉전시대에 살아남은 시대착오적 법률이 아니다. 이승만 정부 시절의 의원들이 “악법 아니냐”, “그러니까 한시적으로만 유지하자”고 대화할 정도로, 애초부터 착오적인 악법이었다.



보안법 폐지를 위한 좀 더 공세적인 논리는 적들의 고지에 꽂힌 깃발에 써 있다. ‘국가안보’. 헌법과 형법이야말로 이 대의를 지키는 제일의 수단일 테지만, 국가보안법은 형법은 물론 헌법까지도 지배하고, 군 형법이나 국가기밀누설방지법 등의 여타 안보법률을 무시한다. 국가보안법 없이도 내란·외환·간첩죄는 얼마든 처벌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하면, 존치론자들은 쓸모도 없는 법으로 정상국가의 안보체계를 위협하고 반인권적이고 냉전적인 악법으로 국제망신을 시킨 불한당에 해당한다. 폐지론자들은 이것을 알리는 데 주력해야 한다.



‘사문화론’이나 ‘민생론’에게 주도권을 내어줘서도 안 된다. 악용의 소지가 사라졌고 아예 없애기는 뭣하니 놔두자는 주장에는, “그럼 악용의 소지를 다시 만들어낼 정치세력을 뿌리 뽑아야겠네”라고 되받아쳐야 한다. “먹고 살기 힘든데 허튼 수작부리지 말라”고 따지면, “폐지되어도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을 뿐더러 보안법의 존치 때문에 국제사회에서의 신인도가 낮아진다”는 식으로 ‘민생론’을 역으로 활용하고, 가능하다면 존치가 초래할 경제적 손실까지 입증하면 더 좋다. 신자유주의자까지 끼어들어 보안법이 자본주의에 끼칠 해악을 설파한다면 더더욱 좋다.



폐지론자들의 무능이 국가보안법의 수명을 늘려서는 안 될 일이다. 개인의 인권 대 국가안보, 통일 대 분단, 개혁 대 실용 등은 허깨비들의 싸움이다. 보안법폐지의 명분은 인권과 통일 말고도 수두룩하다.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북한에나 어울리는 법을 감싸는 자들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위협하는 이적행위자들이다.” 새로운 각오를 다지자. 박정희, 전두환과 그 이하 어떤 반란자들도 처벌하지 못한 국가보안법은 한시라도 빨리 지옥으로 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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