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징금을 털어라 (7)

전직 대통령의 집을 터는 간 큰 도둑 이야기

검토 완료

김성룡(ufoi)등록 2005.10.12 19:54
‘파렴치한 전만희는 모든 추징금을 국가에 즉시 반납하라’




‘반납하라. 반납하라.’




전만희의 집 앞에서 피켓을 든 대 50여명의 여자들이 구호를 외치며 기습시위를 하고 있었다. 모 여성 단체의 회원들이었다. 신문사 기자들도 여럿 같이 왔는지 연신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댔다.




‘살인마 전만희는 5.19 광주 희생자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라.’




‘사죄하라. 사죄하라.’




잠시 후 구호소리가 멈추더니 여성단체 회원들 사이에서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여자 한명이 걸어 나왔다. 여자는 라운드 걸처럼 피켓을 머리위로 치켜들고 전만희의 집 앞을 무대 삼아 워킹을 하기 시작했다. 피켓에는 ‘추징금을 회수하라.’ 는 문구가 빨간색 매직으로 선명하게 적혀있었다.




기자들이 여자를 향해 또 셔터를 눌러댔다. 쭉쭉 빵빵 모델 뺨치는 체형에 얼굴도 연예인 못지않게 예뻤다. 하이힐을 신어 안 그래도 큰 키가 더 커보였다. 여자가 야릇한 미소를 흘리며 뇌쇄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자 전만희의 집을 지키던 전경들이 꼴딱 꼴딱 군침을 삼켰다.




‘저런 X발. 저건 또 뭐야?’




한전 직원과 전화 통화를 하다말고 사복 경찰이 여자에게 달려갔다. 순간 땅이 꺼져라 지요한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새끼들이 어디다 한 눈 팔아? 앞에 똑바로 안 봐?’




사복경찰이 소리쳤다.




‘이봐. 아가씨! 달랑 브라자랑 빤스만 입고 뭐하는 거야? 어?’




‘보면 모르세요?’




여자가 한 발짝 다가서며 되물었다.




‘뭐? 뭐하는 건데? 패. 패션쇼야?’




‘우리 경찰 아저씨 진짜 무식하시다. 1인 시위도 몰라요?’




‘시위? 안 돼. 1인 시위든 패션쇼든 여기선 안 돼.’


‘왜 안돼요? 1인 시위는 법으로도 보장되어 있는 거 모르세요?’




여자가 사복경찰에게 쏘아붙이며 바짝 다가섰다. 여자의 가슴이 키 작은 사복경찰의 코끝에 닿을 듯 말듯 했다. 사복 경찰의 시선이 온통 여자의 젖가슴에 집중되더니 횡설수설 거렸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그 뭐랄까.. 일체의 시위가 금지되어 있는데.. 그래서 수영은 수영장에서 해야 하고.. 그리고 이렇게 빤스만 입고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참.. 뭐랄까..’




‘좋아하겠죠?’




‘그렇지 좋아하지. 특히 남자들이 헤헤..’




헤헤거리며 실없이 웃던 사복경찰이 어느 순간 자신의 신분을 자각하더니 여자에게 핏대를 올리며 고함을 질러댔다.




‘아니 이 아가씨가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어? 여기선 시위 금지야. 그리고 복장이 이게 뭐야? 미풍양속 저해로 당장 잡아넣기 전에 당장 옷 입어!’




‘뭘 입고 돌아다니든 내 맘이에요. 그리고 1인 시위는 청와대 앞에서도 하는데 여기선 왜 못해요? 전만희가 대통령보다도 더 높아요? 나라 지키라고 세금 냈지 누가 이런 도둑놈이나 지키라고 세금 낸 줄 알아요? 당장 저리 비켜요.’




여자가 물러서지 않자 사복경찰이 전경들에게 여자를 밀어내도록 지시를 내렸다. 전경들이 방패로 비키니 여자를 방패로 밀어내려 하자 함께 온 여성단체 회원들이 합세하며 전경들과 맞섰다.




원색적인 구호를 외치며 여성단체의 시위가 더욱 격렬해졌지만 전경들은 비키니의 여자 때문에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었다.




지요한에겐 절호의 기회였다. 원래 계획은 석철과 범식이 크레인을 타고 전봇대 위로 올라가 전선 교체 작업을 하는 척 하다가 경비가 허술해지는 틈을 타 전만희의 집 정원으로 뛰어내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런 여자들의 출현으로 전경들의 시선이 여자들에게 집중되어 버렸으니 하늘이 준 기회나 다름없었다.




석철과 범식이 재빨리 크레인에 올라타자 박형사가 레버를 조작하여 전만희의 집 정원 쪽으로 크레인을 돌려댔다.




사복경찰이 강력 대처를 지시하자 전경들도 어쩔 수 없이 여성단체 회원들을 방패로 밀어내며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비키니 여자의 브래지어가 훌러덩 벗겨졌다. 여자의 하얀 젖가슴이 드러나면서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갑작스런 고요에 지요한과 크레인에서 뛰어내리려 준비하고 있던 석철과 범식도 움찔하며 동작을 멈추었다.




그러나 곧 고막을 찢는 비명소리와 함께 일방적으로 전경들에게 밀리기만 하던 50여명의 여성단체 회원들이 10여명의 전경들에게 달려들어 얼굴을 할퀴고 물어뜯었다. 전경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어디를 만지느냐? 성추행으로 고발하겠다며 여기저기에서 여자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전만희의 집 앞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그 시각 전만희는 경기도 어느 컨트리클럽으로 골프를 치기 위해 이동 중이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전만희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던 지요한은 전만희가 어느 예비역 육군 장성과 골프 회동을 하러 간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오늘을 D-day로 잡았던 것이다.




여자들 덕분에 비교적 수월하게 전만희의 집 정원으로 들어온 석철과 범식은 곧장 현관문으로 다가갔다. 밖에서는 아직까지 여자들의 구호 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석철이 열쇠 구멍에 가는 철사를 집어넣고 몇 번 흔들자 ‘철커덕’ 문이 열렸다. 지요한의 예상대로 전만희의 집 보안시설은 형편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365일 밤낮으로 경찰들이 지키고 서있으니 특별히 보안에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지요한은 재빨리 정장으로 갈아입고 집 밖에서 대기하면서 석철로 부터 희소식이 들려오기를 기다렸다. 계획은 간단했다. 석철과 범식이 전만희가 숨긴 추징금을 찾아다는 신호를 보내오면 법원으로부터 가택 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전만희의 집을 수색하여 돈을 찾아낸 것처럼 꾸민 뒤에 석철과 범식과 함께 집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이었다.




석철의 실력이라면 이 모든 것이 1시간 안에 끝날 것이라고 지요한은 생각했다. 전만희가 골프 회동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대문 손잡이를 잡는 순간 그 손목에 수갑을 채워 주리라 지요한은 다짐했다.




만에 하나 석철이 전만희의 돈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지요한은 생각도하기 싫었다. 그럴 경우엔 도둑을 검거하러 출동한 경찰인 것처럼 하면서 석철과 범식을 구하기로 약속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실행에 옮길 것인지에 대해서는 지요한은 아직 미온적인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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