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징금을 털어라 (6)

전직 대통령의 집을 터는 간 큰 도둑 이야기

검토 완료

김성룡(ufoi)등록 2005.10.06 17:22
‘에이. X발 진짜!’

석철의 신경질에 지요한은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음과 동시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알았어요. 알았다구요. 할게요. 도와드릴 테니까 그만 우세요.’

라고 석철이 다음 말을 잇지 않았다면 지요한은 분명 석철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을 것이다. ‘이렇게 쉽게 약발이 먹힐 줄이야!’ 석철의 동의를 구걸하다시피 얻어내곤 지요한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눈물은 석철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만능열쇠나 다름없었다.

‘진짜? 거짓말 아니지?’

지요한은 한껏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확실한 다짐을 받아내려는 듯 석철에게 물었다.

‘그럼 제가 시도 때도 없이 거짓말이나 늘어놓는 정치인 나부랭이로 보이세요? 죽으면 죽었지 전 그런 짓은 안합니다. 이제 그만 일어나세요.’

지요한은 그때서야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과정이야 어찌 됐든 지요한은 날아갈 듯 기뻤다. 석철에 대한 고마움 보다는 그의 마음을 돌려놓았다는 성취감 때문이었다.

‘그래. 고맙다. 이 은혜는 내가 평생 안 잊는다. 그래. 나가 봐.’

석철이 취조실 문을 열고 나가려는 찰라 지요한이 또 불쌍한 표정으로 말꼬리를 흐리며 조심스럽게 내뱉었다.

‘저기.. 방금 여기서 있었던 일.. 아무한테도 얘기 안했으면 좋겠는데..’

‘걱정 마세요. 저 누구처럼 남의 약점이나 이용하는 그런 비열한 놈 아닙니다.’

지요한에게 쏘아붙이듯 말하고는 석철이 문을 열고 나갔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형사 둘이 석철을 데리고 가자 남아있던 박형사가 취조실 안으로 들어왔다.

‘어떻게 잘 됐습니까?’

박형사가 물었다.

‘박형사님도 참.. 그럼 내가 누굽니까? 천하에 지요한 아닙니까? 하하.. 그리고 이거..’

지요한이 지갑 속에 끼워져 있던 가족사진을 빼서 박형사에게 주었다.

‘쓸모가 많더라구요. 저도 결혼하면 가지고 다녀야겠습니다. 하하하..’

지요한은 오후에 석철과 대면하기 전 범식과 먼저 면담을 했었다. 잔뜩 쫄아 있는 범식을 윽박지르고 달래서 석철의 최대 약점이 무엇인지 알아낸 것이다. 처음엔 범식의 말을 듣고 자신을 엿 먹이려는 것이 아닐까 반신반의 했었다.

범식이 거짓말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나서도 석철 앞에서 자존심을 구길 생각을 하니 고민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일단 결심을 하고 석철과 대면하자 계획에도 없던 무릎 꿇기와 배우 못지않은 눈물 연기까지 분위기에 맞게 척척 행동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지요한 자신도 놀랐다.

자신이 생각해도 기대 이상이었다. 취조실에 혼자 남은 지요한은 자신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 싶어 피식 피식 자꾸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일주일에 걸쳐 치밀한 작전 계획을 세운 뒤 한전 직원 복장으로 변장한 지요한과 석철, 범식, 박형사는 크레인이 달린 작업용 트럭을 타고 전만희의 집 근처로 갔다. 10여명의 전경들이 시위 진압용 경찰봉과 방패를 들고 전만희의 집과 주변을 삼엄하게 지키고 있었다. 전만희의 집 옆 전봇대에 트럭을 세우자 경비를 서고 있던 사복 경찰 한 명이 다가왔다.

‘뭐 하십니까?’

사복경찰이 지요한 일행을 좌우로 훑어보며 물었다.

‘전선이 낡아서 교체 작업하려구요.’

지요한이 능숙하게 말을 받았다.

‘여긴 공사하려면 허가증이 있어야 하는데 가져오셨습니까?’

‘아이구 그럼요. 저. 여기...’

지요한이 사복 경찰에게 허가증을 내밀었다. 허가증은 지요한의 지시로 박형사가 가짜로 만든 것이었다.

‘담당 부서에 확인해 볼 테니까 잠깐 기다세요.’

‘아. 예..’

큰일이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사복 경찰이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예. 수고하십니다. 한전이 몇 번이에요?’

114에 전화를 건 모양이었다.

‘예. 고맙습니다.’

사복경찰이 다시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지요한의 귀에까지 들리는 듯 했다. 강력범들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지만 지금처럼 떨린 적은 없었다. 지요한의 가슴이 미친 듯이 뛰었다. 그것은 박형사도 마찬가지였다. 반면에 석철과 범식은 태연했다. 차라리 여기서 일이 잘못돼서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가길 바랐다.

‘예. 한전이죠? 저기 뭣 좀 확인하려고 그러는데요.’

그 때였다. 카랑카랑한 여자의 목소리가 골목 안에 메아리 친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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