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추징금을 털어라 (4)

전직 대통령의 집을 터는 간 큰 도둑 이야기

검토 완료

김성룡(ufoi)등록 2005.09.29 11:00
실로 5년만의 대면이었다. 5년 전 검사와 도둑 그 때 그 모습으로 지요한과 윤석철이 다시 만난 것이다. 5년 전 그 사건을 지요한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사건이 아니었다면 자신의 대담한 계획에 윤석철을 끌어들일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명 “타워팰리스 S양 황금팬티 도난 사건”

S양은 청순미를 자랑하는 국내최고의 여배우였다. 석철은 그녀가 나온 영화와 드라마라면 사족을 못 썼다. 특히 전생과 현생을 오가며 천 년 전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자신의 목숨마저 내던지는 “윤회소설” 이라는 영화는 석철이 “러브레터” 이상으로 좋아하는 영화였다. 그녀가 출연하는 영화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개봉 첫날 보아야했고 그녀가 나오는 드라마가 방영되는 날이면 일체의 나쁜 짓은 멀리하고 샤워까지 하고 텔레비전에서 그녀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녀의 웃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석철은 오르가즘을 느꼈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천사, 피앙새, 나이팅게일.. 순결한 모든 언어의 대명사. 석철에게 S양은 그런 존재였다. 꿈속에서 S양을 만나는 횟수가 많아졌고 드디어 키스를 나누고 사랑을 나누던 날 석철은 S양의 팬티라도 훔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욕망과 욕정으로 타올랐다.

그런데 문제는 그녀가 타워팰리스에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국내에서 웬만큼 난다 긴다 하는 도둑들 사이에서도 난공불락의 요새로 여겨져 시도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그곳에 석철이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타워팰리스의 보안은 그야말로 철통이었다. 들어가는 입구부터 보안업체의 경비요원들이 입주자와 방문자를 나눈다. 입주자들은 입주자 전용 엘리베이터를, 방문자는 방문자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만 하고 각 층마다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것은 물론 입주자에게만 주어지는 보안카드가 없으면 다른 층에서 다른 층으로의 이동도 불가능한 시스템이었다.

영화에서라면 페이스오프에서처럼 얼굴을 뜯어고치는 수술을 한다거나 비행기에서 뛰어내려 낙하산을 타고 빌딩 옥상에 멋지게 착지한 후 스파이더맨처럼 벽을 타고 내려가 유리창을 열고 들어가면 되겠지만 석철이 선택한 방법은 타워팰리스 근처의 중국집에 배달원으로 취직하는 것이었다.

S양이 삼선짬뽕을 자주 시켜먹는다는 기사를 여성잡지에서 본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배달원으로 취직하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이미 정보를 입수한 S양의 골수팬들이 석철과 비슷한 생각으로 중국집에 취직을 해버린 상태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근처의 피자집이나 통닭집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석철은 어쩔 수 없이 가장 만만해 보이는 중국집 배달원 하나를 골라 협박과 뇌물을 반반 섞어 그만두게 한 후에야 어렵사리 그 자리에 취직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좀처럼 기회가 오질 않았다. 석철이 다른 곳으로 배달을 나가고 난 후 S양의 주문이 들어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럴 때면 여간 아쉽고 화나는 것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카운터의 여경리를 구워삶아야 했다. 그 후로 S양의 짬뽕 주문은 석철이 담당이 되었다.

석철이 그동안 저질렀던 도둑질들 중 가장 버라이어티하고 스펙터클한 도둑질 준비가 완료 된 것이었다. S양의 주문 전화만 오면 곧바로 작전개시였다. 이제나 저제나 하루하루가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어찌된 일인지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록 S양으로부터의 주문전화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나중에 알려진 일이었지만 S양은 극비리에 출국, 두 달 일정의 유럽여행을 떠났던 것이었다. 모 기업 재벌 3세와의 밀월여행이었다.

기다림에 지친 석철이 배달 일을 그만두고 다른 방법을 찾으려고 할 즈음 유럽여행에서 돌아온 S양으로부터 짬뽕 배달 주문이 떨어졌다. 석철은 뛸 듯이 기뻤다. 드디어 S양을 가까이에서, 그것도 단 둘이서만 얼굴을 마주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자 석철의 가슴은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이런 감흥도 잠시, S양의 집으로 배달될 삼선짬뽕이 두 그릇이라는 사실을 안 순간 석철은 또 다른 짬뽕의 주인이 남자라는 것을 직감하고는 질투로 온몸을 떨었다. 애써 자신의 추측이 잘못된 것이길 바랬다.

방문자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는 내내 석철은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마침내 S양 집의 초인종을 누르자 문이 열렸다. 석철의 목구멍으로 꼴딱하며 침이 넘어갔다. 금방 샤워를 했는지 젖은 머리의 남자가 S양 대신 석철을 맞이했다. 남자는 별 볼일 없는 그저 평범하지만 약간 통통한 귀공자 스타일이었다.

석철은 매트릭스의 어느 한 공간에 잘못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심한 현기증을 느꼈다. 문이 쾅하고 닫히자 매트릭스에서 빠져나온 석철은 질투의 화신 그 자체가 되어 있었다.

한 시간 후 그릇을 찾기 위해 S양의 집으로 간 석철은 다시 초인종을 눌렀다. 아무런 기척이 없자 석철은 주머니에서 찰흙처럼 생긴 것을 꺼내 주물럭주물럭 섞어 자물쇠 옆에 붙였다. 그러자 10초 후 문이 찰칵하고 열렸다.

처음 배달을 왔을 때 석철은 남자로 인한 충격에도 불구하고 순간적으로 열쇠 홈에 얇은 철판을 끼워 넣었었다. 그것은 형상기억 합금으로 일정한 온도가 되면 본래의 형태로 돌아오는 특성을 가진 금속이었다.

찰흙은 고체로 된 순간접착제로써 서로 다른 화학물질이 섞이면서 순간적으로 고온의 열을 발생시켜 물건과 물건을 붙여주는 원리를 석철은 형상 기억합금에 열을 전달하는 용도로 이용한 것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남자는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소파에 잠든 채로 있었다. 침실로 들어가자 S양이 화장대 위에 쓰러져 잠들어 있었다. 미리 짬뽕에 타놓았던 수면제가 활동을 시작한 것이었다. 앞으로 깨어나려면 서너 시간은 더 있어야 했다.

석철은 잠든 S양을 번쩍 들어 침대 곱게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야릇한 감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 이상 시간을 지체한다면 보안요원들이 의심할 지도 몰랐다. 석철은 감정을 자제했다. 그런 면에서 석철은 역시 프로였다.

재빨리 옷장에서 속옷 몇 개를 찾아 주머니에 쑤셔 넣고 남자의 옷에서도 현금과 신용카드를 챙겨 타워팰리스를 빠져나왔다.

그 길로 곧장 명품 백화점으로 달려간 석철은 남자의 카드를 마구 긁어댔다. 한도가 1억 원은 되는 모양이었다. 5백만 원짜리 구두에 천만 원짜리 슈트, 다이아몬드가 박힌 반지와 시계 세트 등등 명품으로 온몸을 치장하며 수천만 원을 썼는데도 여전히 한도가 초과되지 않고 있었다.

사건은 조용히 잊혀 가고 있었다. 타워팰리스도 보안에 구멍이 뚫렸다는 사실을 결코 알리고 싶지 않았으며 S양도 재벌 3세도 언론에 자신들의 관계가 알려지길 원치 않았다.

사건이 수면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그 후 한 달 뒤였다. S양은 딱 한번 밖에 안 입고 잃어버린 황금팬티가 못내 아까웠다. 이태리의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으로 한정 수량만 판매한 값을 따지기 힘든 그런 물건이었다. 지난 번 유럽 여행 때 재벌 3세가 큰 맘 먹고 사준 것을 하필이면 석철이 훔쳐 가버리고 만 것이다.

S양은 자신의 안타까운 심정을 친한 동료 연예인에게 이야기했고 그 이야기는 결국 가십거리 기사를 찾고 있던 스포츠 신문 연예부 기자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결국 재벌 3세의 카드 도난 사건과 S양과 재벌 3세의 관계까지 드러났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더 이상 숨길 것이 없어진 S양은 황금팬티를 찾아달라고 비밀리에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가 바로 지요한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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