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시간을 쪼개 놓았는지 참 편리하다.

월요일을 보낸 이야기

검토 완료

김치민(sinkimch)등록 2005.09.27 10:53
**새벽

누가 시간을 쪼개 놓았는지 참 편리하다.
짧은 시간의 단위를 만들고 이를 모아 더 긴 시간을 만들고...
사람이 간사한지 내가 간사한 것인지 오늘도 나는 새로운 한 주를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여느 시간과 다름 없는 모양이 계속되건만 마음을 놓기도 하고 잡기도 하는 내가 새삼 신기할 따름이다.
요즘은 월요일 아침 순천 출발시간이 이름하여 새벽 구실을 한다. 어둑어둑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가방 한 개는 등에 메고 또 하나는 손에 들고 입에는 담배 한개비 물고서 나서는 풍경이 내가 또 한 주를 시작하는 모습이다.
잠깐 달리는 사이 율촌 산단 너머 하늘이 붉게 물들고 여유롭게 바라본다. 눈을 부릅뜨고 속도계를 응시하며 도로 사이에 떡 벌리고 눈을 부라리는 과속 측정기를 피하는 선생님에게는 좀 미안한 생각이 든다. 신호등 두어개는 차가 없어 그냥 지나고 나머지 신호는 초록불이라 그냥 지나고 마지막 돌산에 있는 신호등은 눈치보며 슬금슬금 지나니 돌산 군내항이다.

**아침

오늘은 유달리 활어 어판장에 사람이 많다. 추석 명절이라고 바다에 나가지 않았던 어부들이 꽃게, 장어, 오징어, 그리고 이름모를 수많은 바다고기들을 고무 대야에 크기별로 담아 경매가 한창이다. 중계인이 굵은 목소리로 가격을 부르고 상인들의 손가락질과 아우성이 혼돈을 이루며 중계인의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끝으로 고기를 들고나온 어부의 표정이 달라진다. 듬성듬성 보이는 월호도와 화태도 어부은 많이 잡았냐고 묻는 선생에게 웃음으로 화답한다. 07:15, 항상 같은 소리로 뱃고동이 울리고 활어시장 구경은 뱃고동으로 마감이다. 화들짝 배에 오르면 온통 아는 얼굴들이다.
관사에는 빨래감이 아무렇게나 물통에 담겨있다. 비누 듬뿍 칠하고 한쪽에 50번씩 기계적으로 문질러 빨래줄에 널었다. 바람이 있으니 집게로 단단히 묶었다. 방학 때 말썽 피운 냉장고가 또 말썽을 부렸다. 봄에 키운 열무를 뽑아 시레기를 만들어 냉동실에 넣었는데 얼지도 않고 물이 흐르는 모양새가 아무래도 심상찮다. 시원찮은 냉장고가 잘 보관하지 못해 변해 버렸다. 만든 다음 된장국 한 번 밖에 끓여먹지 못했는데... 아깝다. 텃밭에는 방학 끝나고 뿌려둔 배추가 제법 컷다. 그나마 위안이 된다. 저놈은 잘 키워 맛있게 먹어야지.
대충 정리하고 화태도에 가는 배를 탓다. 아까 탓던 배인데 내렸다 다시 타니 선비 1000원을 다시 받는다. 그냥 공짜로 태워주면 좋을텐데. 마음씨 넉넉한 웃음과 돈은 받는 손은 서로 번지수가 다른 모양이다. 아뭏튼 인사 곱게하고 10여분을 걸어 오늘만 두번째 출근이 끝났다.

**학교

보은이가 환한 얼굴로 아양을 떤다. 교무실까지 와서 커피를 타주겠다고 꽤나 정성을 들인다. 나는 녀석의 속셈을 안다. 지난 목요일 녀석은 컴퓨터를 나에게 맡겼다. 도통 말을 듣지 않는다며 선생님이 고칠 수 있냐길레 시큰둥하니 가져와 보라고 했었다. 녀석은 필시 관사에 가져다 놓은 컴퓨터를 빨리 고쳤으면 하는 마음에 저리 아양을 떨 것이다. 그래도 아양을 떠는 녀석이 밉지만은 않다.
3학년 담임 선생님이 아이들 걱정에 자못 심각한 얼굴로 상의를 해오신다. '졸업앨범을 만들어야겠는데...'로 시작된 이야기가 벌써 일년이 지난 느낌을 준다. 혹 내게 짐지우려는 건 아닌지 머리속이 복잡하다. 3학년이 일곱명뿐이라 보통학교처럼 앨범을 만들 수 없다. 그랫다간 아이들 부모님 주머니를 다 털어도 모자랄 것이다. 궁리 끝에 사진을 편집해서 자체 제작해보기로 했다. 결국 내 일이다.

** 공부방

김치찌게 끓이고 새로 산 밥통에 쌀 씻어 밥하고, 마실 물 끓이고, 아침에 널어놓은 빨래 걷고...
아직 밥도 못먹었는데 옆 공부방이 청소하느라 부산하다. 라디오가 일곱시를 알리고 아이들 소리가 조용해졌다. 날씨 선선하고 제법 풀벌레소리까지 들리는 한적한 섬마을의 밤풍경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저녁 먹고 보은이 컴퓨터를 손보았다. 워낙 오래된 컴퓨터라 최신 버전의 운영체제는 설치할 수 없다. 다행히 구입할 때 딸려나온 시디가 있어 다시 설치했다. 컴퓨터가 잘 작동된다. 보은이 녀석에게 잘난 척 할 좋은 기회다. 이왕 시작했으니 좀 쓸만한 내용을 갖춰야겠는데 도통 프로그램이 없다. 솔직히 정품 프로그램을 구입할 여지가 없다. 평가판들을 구해 설치했다. 바이러스 검색, 한글, 그림편집 프로그램, 압축 프로그램 등... 한 달 후 다시 고장났다고 들고 오면 큰일이다. 방법을 찾아야 할텐데. 학교에 있는 교육용을 설치하려해도 설치가 되지 않을 듯하다. 하기야 설치하면 불법인데.
아이들이 돌아갔다. 아이들은 신기하게도 시간의 마디를 잘 안다. 그것도 쉬는 시간과 끝나는 시간은 정확하게 잘 지킨다.

시간의 마디.
구분되는 듯하지만 결국 마디들의 순환인 것을...
작은 것들로 나누지만 시간의 더미 속에 있는 것을...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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