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표에게 드리는 열린우리당 중앙위원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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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수(kimdoosoo)등록 2005.09.17 11:53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게 드리는 편지


박근혜 대표최고위원님!
보름달 같은 사랑과 행복이 가득한 명절을 보내고 계신지요?
오늘 아침에는 한가위를 맞이하여 경동시장에서 아버님 차례상에 올릴 사과와 밤, 황태를 구입하셨다고 하더군요. 야당 대표가 민심과 민생을 살피시는 모습이 보기에 참 좋았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열린우리당 중앙위원 김두수입니다.
한 번도 직접 얼굴을 대한 적이 없어, 무척 생소하실 것 같아서 간단한 소개의 말씀드리면, 저는 한나라당 최고위원으로 계신 김영선 의원과 일산(을)지역구에서 17대 국회의원 선거를 치렀던 사람입니다. 물론 제가 2% 차로 낙선했습니다.
더 자세히 설명드릴 수 있으나, 개인적인 소개는 이쯤에서 생략하겠습니다.

모두들 바쁘고, 할 일이 많은 한가위에 두서없는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오늘 박 대표님께 편지를 쓰면서도 많이 망설였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처음 있는 일입니다.
솔직히 고백하면, 한 번도 한나라당을 정치적 상대로, 흔히 하는 말로 정치 파트너로 생각한 적이 없었습니다. 80년대 반독재 민주화 운동을 한 사람으로서 한나라당은 타도와 박멸의 대상이었습니다. 박 대표님의 직책이나 존칭은 고사하고, 이름도 제대로 부르지 않습니다. 시중에서 하는 ‘수첩공주’는 그 중에서 고운(?) 표현에 속합니다.
제가 예의가 없어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 아니라, 한나라당에 반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아니 무의식 상태에서 자동으로 튀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제가 듣기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서도 한나라당 사람들은 존경과 흠모(?)를 담아서 호칭을 부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피장파장의 속 좁은 생각이지요. 노무현 대통령을 특별히 좋아하는 저로서는 듣기에도 민망할 정도의 증오심을 가득 실어서 부르는 호명에 마음 별로 편하지 않습니다.
그런데요. 저는 최근에, 이런 생각을 마음속으로부터 지우려고 노력하기로 했습니다.
쉽지는 않지만,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소속한 조직에서 우선 증오심부터 없애야 하지 않겠는가하고 뜻을 모았습니다. 저는 열린우리당 안에서 정당개혁을 추진하는 정파조직인 ‘참여정치실천연대’ 기획위원장도 맡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얼마 전, 워크숍에서 열심히 토론하여 결의문을 냈습니다. 한 구절을 소개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참여정치실천연대는 한나라당이 타도해야 할 증오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의회의 규칙 안에서 경쟁해야 하는 경쟁상대임을 받아들입니다. 분노와 증오의 정치를 넘어 서겠습니다”
이렇게 조직이 결의했기에 용기를 냈습니다.
무슨 편지 하나를 쓰면서도 편지를 쓰게 된 초반이야기가 이렇게 길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좀 슬퍼지기도 합니다.

박근혜 대표님께, 꼭 편지를 쓰고 싶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과의 회담 모습을 보면서도 안타까웠습니다. 대통령과 나눈 연정에 관한 회담이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의 대화’였다고도 합니다. 지금의 정치가 아무리 대립과 분열의 정치라고 하지만, 국가 지도자끼리 만나서 터놓고 얘기하면서 상생의 장, 대화의 장을 제대로 한번 해 보지 못하고, 동문서답의 대화 상황이 정상적으로 보이진 않았습니다. 못내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어제 TV로 진행된 방송기자클럽 토론회를 지켜보면서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다시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나누고 싶은 말은 투닥투닥 논박이 되고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경제 전문가들의 잘못된 보좌로 곤욕을 치루고 계시는 주택에 대한 재산세나 보유세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박 대표님을 한나라를 이끌어 가시는 지도자로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 대표님은 평소에도 다른 정치인에 비해 유독 ‘국민’이란 단어를 즐겨 쓰시는 분입니다. 언론의 인터뷰 속에 언뜻언뜻 비치시는 국민에 대한 애정을 확인할 때마다 특별한 분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지도자는 당장의 문제보다는 10년, 20년 뒤에 평가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차기 선거에서 집권할 가능성이 유력한 분으로서는 더욱 작은 이익에 얽매이는 모습은 보기에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용기를 냈습니다. 정치개혁, 특히, 선거구 제도에 대해 꼭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박 대표님은 선거구 제도를 고치는 문제는 국민의 관심과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고 하면서 선거구제는 한마디로 게임의 룰을 정하는 것이지 지역구도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당장에 먹고 살기 바쁜 국민들의 관심사항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2008년, 선거 때가 다가오서 고치면 됩니다. 지금까지, 늘 그렇게 해왔습니다. 지난 17대 총선은 선거를 1달 앞두고 개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개정한 선거법이 정상일 수 있습니까? 선거법 개정을 선거일 눈앞에서 개정할 때, 국회의원 개개인의 이해득실에 따라 왜곡되는 게 현실이었지 않습니까? 설사 국민의 관심사항이 아니어도 먼저 시작하면 안 될까요? 2007년 대선과 8년의 총선이 겹쳐있고, 임기도 통일했으면 좋겠다는 여론이 있는 현실에서, 시기가 다가오면 으레 그래왔듯이 후다닥 헌법과 정치관계법을 개정할 수 있을까요?

현재 박 대표님은 연정도 싫다. 선거구제 개정도 싫다고 합니다.
마냥 “이대로가 좋아!” 97년 IMF가 왔을 때, 강남의 부자들이 외쳤다는 그 말이 생각납니다. 지켜야할 것이 너무 많으신 것입니까? 아니면, 정말 우리의 정치문화와 제도가 정상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현행 소선거구제를 고수하겠다면, 지역구도의 극복의 대안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번 영천 보궐선거의 예를 들면서, 한나라당의 아성인 경북에서도 열린우리당이 분발하여 그렇게 어려운 선거를 처음 해 보았다고 했습니다. 역으로 그렇게 열린우리당이 총력집중을 해도 역시 안 무너지는 철옹성임이 입증되는 증거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아시다시피 소선거구제는 양당제를 지향합니다. 대통령제도에 양당제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 미국이 유일합니다. 우리나라는 소선거구제이지만, 비례대표제도도 있고, 또한 심각한 지역주의도 있습니다. 87년 체제 이후, 우리나라 정당은 3.5당 체제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다당제에 가까운 정당체제를 과연 양당제 구도로 만들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박 대표께서 했다는 "대통령제 하에서는 소선거구제가 맞다"고 했습니다.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미국식 대통령제는 소선거구제가 맞습니다. 미국은 소선거구제이기에 양당제입니다. 미국 사회는 소선거구제의 오랜 역사로 인해 양당제가 강제되어 왔습니다. 양당제이기에 지역대결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지역주의는 더욱 심각한 지역대결과 분열을 넘어서는 증오와 다른 한편에서는 공포가 있습니다. 상대 지역에서 집권했을 때, 정치보복과 탄압과 차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예가 대통령 선거에서 호남 유권자의 96%가 노무현 후보를 지지한 것입니다.

저는 경남 남해 출신입니다. 소위 영남출신이니 지역감정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제 친구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자! 호남을 봐라, 저들은 95%가 넘는다. 영남은 그래도 60% 아니냐? 우리가 지역주의냐? 호남이 지역주의냐?”

그렇습니다. 이제는 누가 맞는지도 모를 지경입니다. 고질병이 되어 버렸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말은 대결과 분열을 넘어서는 공포의 존재입니다.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좋아서가 아니라 상대당 후보는 절대로 당선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몰표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지역구도가 딱 자리 잡고 있어서 특정정당의 공천만 받으면 자동적으로 당선되게 돼 있는 구도입니다.
이것을 고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치가 앞장서서 지역 구도를 허물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언젠가 박 대표님께서 지역 구도를 극복하기 위해 정책정당을 만들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구호는 맞습니다. 그러나 저는 정책정당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당이나 국회의원을 정책에 따라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기준인 지역이 있는데, 왜 복잡하고 어려운 정책과 이념에 따라 선택하겠습니까?
이제, 박 대표님 말씀대로 지역구도 극복을 위한 행정구역 개편도 추진했으면 좋겠습니다. 10년 계획을 가지고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행정구역 개편과 함께 선거구 개편이라는 첫 발걸음을 내딛었으면 합니다. 함께 출발합시다.

지금 한나라당은 선거구 개편에서 정치적으로 수세로 몰리고 있습니다.
한나라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들이 일방적으로, 막무가내로, 정략적으로 선거구 제도를 고치게 놓아둘 것이 아닙니다. 지역구도와 선거구제 개편에 대해 ‘국민’과 ‘민생’의 이름으로 후순위로 미루어 두었습니다. 이제는 용단을 내려서 최우선 순위로 올려 주십시오. 이제는 한나라당이 주체가 되어 주십시오. 노무현 대통령과 나눈 연정에 대한 인식에 변화가 없다면, 이제 선거구제 개혁에 앞장을 서주십시오. 이제, 대한민국의 선거구제는 단순히 국회의원들만의 게임의 룰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미래가 달린 숙제입니다.

언젠가 박 대표께서 개헌을 한다면, 정부통령제, 4년 중임제로 해야지, 내각제는 안 된다는 말씀을 하였습니다. 이처럼 대안으로 이야기 했으면 합니다. 선거구제에서도 대안의 제출을 간절히 바랍니다.

다 알고 계시겠지만, 한 가지만 덧붙일까합니다.
만약에 독일식 정당명부비례대표제로 선거구 제도가 개정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얼마 전 열린정책연구원에서 발표한 자료에는 17대 총선 결과를 가지고 시뮬레이션을 했기 때문에 별다른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민심 여론조사를 대입할 때는 엄청난 변화가 있습니다.

열린우리당 지지도는 16.3%로, 창당 이후 사실상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나라당은 30.0%, 민주노동당은 10.3%, 민주당은 3.6% 지지도를 기록했습니다. 이러한 지지도대로 국회의원 의석을 가져가게 됩니다. 한나라당이 망설일 이유가 없습니다.

독일식 선거제도를 하게 되면, 모든 정당이 새롭게 정립됩니다. 지금의 정당질서가 고정되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열린우리당도 분당합니다. 물론 한나라당도 분당하겠지요. 민주노동당 조차도 분당할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의 정당은 이념과 정책에 따라 모여 있는 것이 아니라, 당선이라는 이해관계로 모여 있지 않습니까?

여기서 한국 정치세력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한번 분석해 보겠습니다.
이념적 분포를 보면, 보수주의자, 시장주의자, 민주주의자, 분배주의자로 크게 나눌 수 있습니다. 현재는 여기에 지역 기반이 결합하고, 정치적 경험과 역사가 결합하여 감자부대정당을 이루고 있습니다.
만약 독일식 선거제도가 만들어진다면, 크게 5개의 정당군이 형성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첫째군은 완고한 보수주의자가 중심이 되고, 극단적 시장주의자, 일부의 지역주의자가 결합된 소수의 수구당이 탄생할 가능성입니다.
둘째군은 시장주의자와 보수주의자가 중심이 되고, 일부의 지역주의자가 결합하는 온건 보수당의 탄생입니다.
셋째군은 시장주의자, 보수주의자, 민주주의자가 중심이 되고, 일부의 분배주의자까지 포함하는 중도우파 정당입니다.
넷째군은 민주주의자와 분배주의자가 중심이 되고, 일부의 시장주의자가 함께하는 중도좌파 정당입니다.
다섯째군은 분배주의자가 중심이 되고 일부의 민주주의자가 함께하는 좌파 진보정당입니다. 이렇게 정당의 분포가 흩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의 고정된 정당 틀로 분석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지역이 아니라 이념과 정책에 따른 정당이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역구도의 극복은 정책정당의 육성입니다. 이제, 박 대표님과 뜻이 맞는 정책정당을 찾으셨습니까? 찾았으리라 믿습니다. 제도가 바뀌면, 열린우리당만 이익이라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가 남아 있군요.
박 대표님께서 독일식 제도는 대통령제와 친화력이 떨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예, 맞습니다. 서로 좀 궁합(?)이 잘 안 맞습니다.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미국식 대통령제와는 잘 안 맞습니다. 프랑스식 대통령제와는 잘 맞습니다. 현재의 우리나라 헌법이 미국식 대통령제가 아닌 것은 알고 계시죠? 현재의 헌법에 있는 대통령제는 한국식 대통령제입니다. 미국에는 없는 방식의 정당체제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정당의 대표가 대통령 후보가 되고, 중앙당이 온 힘을 다해 선거를 치루는 방식은 미국식이 아니라, 오히려 내각제에 가깝습니다. 헌법에 총리가 있고, 국회의원이 내각의 장관이 되는 제도는 내각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상이 있어야 할 자리에 대통령으로 이름이 바꿔 있는 형식입니다. 바로 잡아야 하겠습니다. 저의 이러한 진단이 곧바로 ‘여당은 내각제를 추진하는구나’ 하고 유추해석하시지 말았으면 합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헌법 원리가 혼합형이라는 것과 이제는 일관된 원리에 맞게 수정되어야 한다는 점만 말씀드립니다.

존경하는 박근혜 대표님!

민심은 천심입니다. 현재의 민심은 박 대표님이 대표하고 계신 것이 틀림없습니다. 지지도를 보나, 언론의 호응을 보나 민심은 박 대표님입니다. 하지만. 탄핵 때도 보았지만, 천심은 움직이는 것입니다. 이제, 박 대표님께서 먼저 지역구도 혁파의 길로 움직이십시오.
우리 국민들은 산업화 세력, 민주화 세력을 포함하여 현재의 정치세력들이 지역구도에 매몰되어있을 때, 우리 모두를 앙시앙 레짐(구체제)로 거부하는 혁명을 일으킬 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전진하고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제 마무리 하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참여연대에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개혁통신’이라는 팩스 통신문에 “대통령께 드리는 편지”를 쓴 적이 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청와대에서 반응 없는 메아리만 돌아왔을 때, 다음과 같은 러시아 속담을 인용한 제목으로 마지막 통신문을 보냈습니다.

“신은 너무 높이 있고, 황제는 너무 멀리 있다”

야당 대표는 국가지도자입니다. 국민과 진정으로 가까이 있는 국가 지도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서없이 긴 편지를 드렸습니다. 박근혜 대표님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2005년 9월 16일
경기도 일산에서 김두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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