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핀잔 들은 사연

월호도 '호수 위 작은 공부방' 이야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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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민(sinkimch)등록 2005.09.14 11:22

관사 앞 텃밭에서 자라고 있는 옥수수 ⓒ 김치민

5월부터 관사 앞 텃밭에는 누가 심었는지 모를 옥수수가 자라고 있었다. 방학이 끝나고 텃밭 한 귀퉁이에서 자란 옥수수는 꽃을 피우고 열매를 영그느라 바빴다. 분명 앞집 아주머니가 심은 듯한데 내가 출근한 후에 잡초제거며 김매기를 하는 터라 직접 확인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퇴근하여 보니 옥수수가 모두 없어졌다. 옥수수를 모두 따낸 옥수수 대만 텃밭 귀퉁이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뭐야? 여지껏 남의 텃밭에 옥수수를 기르더니만 알맹이만 가져가고 이제 쓰레기만 남겨 놓았네?”

야속하기도 하고 심통이 나기도 했다. 앞집 아주머니 소행이 분명한데 당장 달려가 항의라도 하고 싶었다.

월요일 아침 바쁘게 통학선 시간에 맞춰 관사를 나서고 있는데 앞 집 아주머니가 비닐봉지를 들고 찾아왔다.

“선생님, 이거 삶아 드세요.”

비닐봉지에는 붉고 작은 알맹이가 옹골지게 박힌 옥수수가 20여개 남짓 들어 있었다. 바쁘게 출근하느라 허드레 인사치레를 하고 출근했다.

아이들은 리코더 불기 연습이 한창이다. 내일 리코더 연주 수행평가가 있나보다. 3명은 방에서 책을 보고 대거 다섯 녀석이 관사 뜰에서 리코더를 불어댄다. 잘 훈련된 연주라면 모를까 녀석들의 리코더 소리를 듣는 것은 굉장한 인내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연습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이럴 땐 몸을 움직여 일하는 것이 제일이다.

내일 아침밥을 미리 준비하기로 했다. 쌀을 씻어 전기밥솥에 담고 스위치를 눌렀다. 밥통 옆 비닐봉지가 보인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가마솥 보리밥 위에 올려 삶아준 옥수수가 생각났다. 다시 밥솥을 열고 옥수수를 넣었다. 밥솥이 씩씩거리고 스위치가 내려갔다. 밥이 다 되었다는 신호다.

한동안 시끄럽던 리코더 소리가 나지 않는다. 연습이 끝난 모양이다. 아이들은 방에 들어갔다. 9시가 가까워온다. 밥솥을 열고 옥수수를 꺼냈다. 옥수수에 밥알이 된통 붙었다. 젓가락으로 잡고 수저로 밥알을 얼추 떼어냈다. 쟁반이 없어 빈 찬통에 옥수수를 담아 공부방으로 갔다. 내심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반가워하기를 기대하며...

“너무 심심해요.”
“여기에 당원을 넣어 삶으면 맛있는데.”
“선생님 다음에는 잘 삶으세요.”
“와! 웬 밥알이 이렇게 많아?”

녀석들은 옥수수에 잔득 붙어 있는 밥알을 떼면서 제각기 한마디씩 한다. 녀석들 내 딴엔 저녁 먹은 지 오래 돼서 배고플까봐 열심히 삶아서 내온 옥수수인데 감사하다는 말은커녕 이리저리 흉잡는 것이 못내 서운하다. 콱, 군밤이라도 한 대 먹이고 싶다. 아예 찬미는 선생님 눈치를 봐가며 가장 작은 놈을 골라 든다. 보은이 녀석은 표정이 가관이다. 마치 선생님이 가져온 성의를 봐서 먹고 있으니 사뭇 감사하라는 표정이다. 분위기가 기대와 딴판이다. 솔직히 내가 먹어봐도 심심하다. 그래도 어쩌랴 뻑뻑 우기는 수밖에...

“야, 그래도 오래 씹으면 단맛이 나잖아.”
“에이, 단맛은 무슨 단맛이요. 심심하기만 하구만.”

옥수수를 하나씩 돌리고 나서도 세 개가 남았다.

“야, 여기 남았다. 더 먹을 사람 먹어라.”
“맛은 없지만 하나 더 먹어야지.”

주성이 녀석이 냉큼 오면서 하나 더 집어가고 신애도 집어가고 하나 남은 건 내가 먹었다.

아직 옥수수가 몇 개 남았는데 내일은 맛있게 삶아서 나 혼자 먹어야겠다.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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