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빠', '유빠' 이제 개혁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

'대연정' 위해 '국보법 폐지'를 버릴 수라도 있다는 말인가

검토 완료

김수민(lolla)등록 2005.09.07 16:31
노무현 대통령의 거듭되는 대연정 제안을 지켜보며 필자는 드라마 '용의 눈물'을 떠올렸다. 태종 이방원이 갑작스럽게 왕위를 내놓으려고 하자, 의중을 간파한 양녕대군이 조정대신들과 함께 석조대죄를 하는 장면 말이다. 만약 노무현 대통령이 대연정 제안을 별안간 뒤집어 한나라당과의 전투 의지를 다진다면, 그리고 그간 뇌동한 이들의 충성도를 의심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럴 리는 없겠지만, 대연정을 지역구도 타파의 충정이 발현된 것이라고 선전하는 분들의 표정을 상상하니 즐겁고,

'노빠' 그리고 '유빠'로 통칭되는 부류들은 이해찬 총리가 한나라당, 조선일보와의 일전을 불사했을 때 뜨거운 갈채를 보낸 사람들이다. 이라크전쟁파병과 보수화에 환멸을 느껴 돌아선 나도 당시에 속이 참 후련했다. 나는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했고, '시사평론가 유시민 등이 주도하는' 개혁국민정당의 당원이었다.

내가 그리했던 까닭에는, 억누르든 갖고 놀든 한나라당을 제압하라는 것도 담겨져 있었다. 노무현을 지지한 유권자 전부가 그렇진 않았겠지만, 아마도 그중 대다수는 아니었겠지만, 적어도 끈질기게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 그리고 지금까지 노빠 겸 유빠로 남은 사람들도 그랬을 것이다.

작년 3월 12일, 촛불을 든 시민들은 격분했다. 누군가는 배를 갈랐고, 어떤 이는 국회의사당에 차를 갖다 박았다. 노빠, 유빠가 아니더라도 그 시민들이 한나라당을(그리고 민주당을) 정부여당의 연합 상대로 규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대통령의 특정정당 지지발언은 선거법 저촉 여부와 관계 없이 탄핵 이유가 안 된다.

만약, 대통령이 입을 다물었다면,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왜 '정체를 밝히지 않느냐'고 법석을 떨었을 것이다. 참고로, 당시 여론추이로는, 열린우리당이 정당 지지율 1위였던 반면, 대통령의 지지율은 30퍼센트선에서 빠져 나오질 못했다. 야당은 그저 '선관위 해석'이라는 빌미로 치킨 게임을 벌인 것이다. 무조건 싫은 것이다. 총선과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끝난 뒤에도 그런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무슨 순교자병이라도 도진 것일까. 더없이 거룩한 자세로 '적과의 동침'을 선언하고 나섰다. 이걸 막고 치유할 가장 강력한 주체는 시민단체도 민주노동당도 아니다. 노무현을 떠받치고 밀어준 노빠, 유빠라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노무현의 정치적 소울-메이트' 유시민 의원이 '입 경호'를 펼친다. 최장집, 김동춘이 삽시간에 '수구세력의 프레임'을 떨치지 못한 먹물이 된다. 노빠, 유빠, 손톱이 아닌 달을 보라고 한다. 대연정이 손톱이고, 달이 새로운 세상이라는 것이다.

지금 장난하자는 것인가. 노무현 대통령은 한나라당이 주도하고 열린우리당이 참여하는 대연정을 이야기했다. 노빠, 특히 유빠들은 열린우리당의 이른바 실용지도부의 무능과 구태를 목도하지 않았던가. 한나라당 의원들의 평균 성향을 감안하면, '대연정 제안'은 그들에게는 지옥문의 안내문구와도 같은 것이다. 그래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면, 두 보수정당의 차이를 시큰둥하게 여겼던 진보주의자가 아닌 한, 개념을 상실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유시민 의원은 2년 반에 걸쳐 그 지지자들의 위상까지도 흔들어 놓았다. 필자가 지지를 철회한 것도 아닌게 아니라, 너무 '쪽팔렸기' 때문이다(그래도 뽑은 책임을 피해가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럼에도 꿋꿋이 버티던 노빠-유빠들은 작년 말의 '240시간 연속의총'부터 올봄의 열린우리당 전당대회까지 물을 만난 듯 움직였다.

나는 유빠가 '문빠'나 '염빠', 또는 '난닝구'보다 수천수백배 낫다고 생각한다. 진중권의 표현을 빌리면, '그래도 그 바닥에서는 래디컬'이다. 민주노동당 지지자보다 진보적인 유빠도 상당수다. 유빠들은 소위 '4대개혁입법'의 가장 완강한 지지자였다. 그것 빼고는 할 게 없어서라고 넘길 수도 있겠지만, 개혁입법의 필요성을 감안하면, 또 이 나라 정치지형을 감안하여 상대적인 의미라도 구한다면 유빠들은 한국사회의 보배들이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노무현 대통령 가시는 길에 꽃가루를 뿌리고 있다. 재채기가 나오려고 한다. 이라크파병과 노동계 탄압을 묵인하고 거들었던 그들의 지난 모습이 연상되어 알러지가 마구 일어나는 것이다.

선거제도 개편? 중대선거구제는 엉터리에 코미디니까 독일식 정당명부제로 가정하자. 좋다. 아주 좋다. 개인적으로 미우나 고우나 국가와 사회를 정상화하고, 빈자와 약자의 이해를 관철시킬 정당은 민주노동당 뿐이라고 생각한다. 13% 지지율이면 40석, 선거제도 하나 바꿨는데 민주노동당 의석은 지금의 네배로 불어난다. 열린우리당은 줄어든다. 유시민 의원의 배려, 눈물나게 고맙다.

하지만 다시 말한다. '한나라당이 주도하고 열린우리당의 참여하는 연정'이란다. 하기사 열린우리당이 주도하고 한나라당이 참여하는 연정이라는 대통령이 제안했을 리가 없겠지. '바보 노무현' 어쩌고 했지만 대통령이 진빠 바보가 아니다. 필자는 평소 한나라당을 두고 나빠서가 아니라 멍청해서 망할 것이라고 악담을 했지만, 당이 쪼개지는 걸 감수하면서까지 '개구리'라고 욕했던 분에게 들러붙지는 않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뭔가 시원찮다고 느꼈는지, 총리에 각료 제청권까지 줄 수 있다고 한다.

노빠 및 유빠 여러분. 정치는 장난이 아니다. 그대들이 노무현의 최대 업적이라고 자랑하는 권력기관 독립.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대연정 치하에서 어떻게 되리라고 예상하는가? 노무현 대통령-강금실 법무장관 아래서도 송두율은 엄하게 구속됐다. 총리, 장관이 누가 되든 국정원, 경찰, 국세청이 진정 역사의 도도한 흐름에 실려갈까. 그대들은 박근혜 대표가 수첩에 적힌 대로 '절대 연정없다'고 되풀이하기만을 학수고대하는 게 정상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리까지 내놓을 수 있다고 한다. 큰일이다. 지난 대선 정국에서 유시민은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으면 공안정국이 조성될 거라고 했다. 좀 막나간 상상이긴 하나, 박근혜 총리, 정형근 국정원장, 주성영 법무장관...... x됐다!

듣자하니 개헌론까지 솔솔 나온다. 물론, 염두에 두고 고민할 만한 주제다. 그렇지만 헌법 탓으로 극우파가 날뛰고 서민이 자살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통령 4년 중임제가 안 되서, 내각제 없어서 대통령이 당당하게 승부 못 거는 것 아니다.

어차피 필자는 열린우리당이 단독으로 입후보해도 안 찍어둔다. 허나 몇줌의 기대는 남아 있다. 탄핵사태에서 터져나왔듯 "어떻게 뽑은 대통령"인가. 노빠, 유빠 분들도 두해 반을 참아온 것이 남은 두해 반에 대한 열망 때문일 것이다. 그러잖아도 남은 임기, 북핵이랑 부동산에 매달리다 다 보내게 생겼다. 민생복지 문제는 질기고 악랄하게 매달려서 챙기고, 국가보안법 폐지, 사학법 개정 같은 것들은 개혁정치세력과 시민사회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해결해야 한다. 노빠, 유빠는 그러지 못해서 속이 까맣게 탄 사람들의 모임 아닌가?

한나라당이 굳이 난리 안 쳐도 현재의 정부여당은 국보법 폐지, 사학법 개정을 미루고 또 미룬다. 대연정을 한다면, 각서에 2년 반동안 아예 그러지 않으마, 쓰고 도장을 찍어야 한다. 이 막대한 기회비용은 선거제도를 최첨단으로 고쳐놓는다 한들 만회할 수 없다. 지는 척하고 몇년 뒤로 미루자고 해서는 안 된다. 최소한 유빠는 그러면 안 된다. 그거야말로 그들이 줄기차게 공격했던 언필칭 실용주의다. 존재가치를 스스로 부정하는 짓이다.

지역주의 타파? 백번천번 양보해서 한나라당을 껴안으면 지역주의가 타파된다고 치자. 남들은 '그 선의만큼은 인정한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사고방식이 노무현의 정치일생에 먹칠한다고 생각한다. 지역주의는 패가 갈려서 서로 헐뜯고 싸우고, 또 대부분 한쪽의 일방적인 공격으로 점철된 수많은 쟁투 중 하나다. 한나라당과의 연립 뒤에, 다르지만 다를 바 없는 쟁투들이 생겨날 것이다. 궁금하면 연정해보기 바란다. 국정목표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성향의 정중간에만 설정되어도, 몸소 화염병 들고 나설 확률이 높아진다.

혹시 각료직 미끼로 개혁과제 일거에 해결하고, 슬슬 구슬러서 한나라당 분당 유도하고, 절대절명의 실책 저지르면 그걸 핑계로 연정 파기하고, 그 전에 이미 선거제도와 헌법은 다 바꿔놓고, 드디어 차기 대선과 총선에서 압승필승, 연전연승하겠다는 것인가? 설마!

열린우리당 전당대회 예선에서 임종인 의원은 '한나라당이 설치한 철조망을 통과하는 방법 세가지'를 들었다. 첫째, 밑으로 통과(굴복), 둘째, 옆으로 통과(적당한 타협), 셋째, '폭파!'다. 연설이 끝나고 힘차게 악수를 하던 유시민 의원의 뒷모습이 YTN 돌발영상에 잡히기도 했었다. 대연정은 첫째인지 둘째인지는 좀 불명확하다고 쳐도, 셋째는 절대 아니다. 폭탄처럼 터질 수는 있겠지만 그러면 모두 다친다. 불발탄으로 애매하게 터지면 한나라당만 망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정치, 그런 식으로 하는 것 아니며, 그걸 목적으로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열린우리당을 제1당으로, 유시민을 재선의원 겸 여당 상임위원으로 뽑아준 것은 더욱 아니다.


친노 사이트 '서프라이즈'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누리꾼들은 수첩에 쓰인 백단어를 읽다시피하는 박근혜 대표를 경멸했다. 묻고 싶다. 그대들은 그 하찮고 얄팍한 수첩이라도 들고 다니는가. 무분별한 노무현-유시민 추종은 '수첩 받아적기'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나는 대통령으로서의 노무현이 승부사라는 평을 믿지 않으나, 그가 모험가라는 사실은 또렷하다. 나는 노무현이 '거국내각' 제안을 하리라고까지만 예상했지, 원내 약 90퍼센트를 점유하는 연립정부를 운운할 줄은 몰랐다. 그 발상이 어디로 튈지 무슨 수로 알까. 노빠, 유빠들은 도대체 언제까지 곡예를 부릴까.

어쩌면 이 정도까지는 약과일지 모른다. 남의 당일이긴 하지만 다음 대선과 총선에서 노빠, 유빠가 어떤 선택을 할지가 두렵다. 연정에 반대한 인사들을 몰아붙이는 꼴을 보라. 박덕을 넘어서, 적반하장이다. 아무리 개혁적이고 깨끗하고 유능하더라도 노무현, 유시민과 대립하면 돕지 않을 태세다. 사실 노무현 정부보다 더 나은 정부가 열린우리당 태내에서 나오려면 노대통령에게 얼마간 비판적인 인사가 대통령이 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이런 인사는 현실적으로 노빠와 유빠가 아니면 별다른 지지기반을 만날 수 없다는 점이다. 노빠, 유빠가 민주개혁의 진척, 가까이는 개혁정부 창출에 공헌하려면 대통령과는 거리를 두고 소신을 발휘해야 한다. 이렇게 가다가는 노빠, 특히 유빠들은 2002년 동교동계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 동교동계도 그만큼 썪는 데에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노무현 대통령은 슈레더, 고이즈미처럼 승부를 걸고 싶다고 했다. 정 원한다면 각오를 해라. 대연정의 과정에서가 아니라 그 이전에 대연정 찬반을 걸고 말이다. 이것은 불행한 사태다. 노빠, 유빠들은 특유의 단순정직한 감성을 살려서라도 "옥새를 거두"라고 만인소를 올려야 한다. '삼성의 구원투수' 소리나 들으라고 노무현을 뽑았던가. 대통령한테야 속았다고 치면 그만이지만, 노빠, 유빠는 한국사회에서 의식있는 축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노빠, 유빠들이 대연정에 쏟는 열의의 반이라도 '이건희 게이트'에 쏟았으면 한다.
ⓒ 2007 OhmyNews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