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담배' 스팸메일이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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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완(kordow)등록 2005.08.05 16:02

내 메일함으로 날아온 담배광고.

‘담배를 인상 전 도매가로’, 25,000원 해야 할 담배 한 보루를 17,000원에 판매한다는 스팸메일이 편지함에 도착했다. 얼마 전 봤던 방송이 기억난다. 면세용 담배와 동남아, 중국 등지에서 생산된 가짜 담배가 서울지역 노점상과 인터넷을 중심으로 판매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스팸메일에 등장하는 담배가 그런 담배인지 광고에 적힌 전화번호로 재차 연락을 시도해 봤지만 자동응답기 목소리만 들려왔다. 결국 이 담배가 방송에서 본 그 ‘녀석(?)’이라고 잠정 결정을 내려버렸다.

사실 애연가인 필자에게 ‘가짜 담배’는 낯설지 않다. 이미 2002년에 런던에서 이런 ‘녀석(?)’들을 자주 만났기 때문이다.

어학 연수차 런던에 6개월여 체류했던 필자의 지갑이 가장 부담스러워 했던 것이 바로 담배였다. 런던 물가가 한국에 비해 2배 이상 높아 먹고 자는 가장 기본적 생활을 영위하기도 쉽지 않았던 차였지만, 그 중 가장 괴로웠던 건 한 갑에 약 4.75파운드(대략 9천원)정도 하는 담배 값.

한국에서 지인들을 통해 공수해 오기도 하고, 세관의 눈을 피해 프링글스같은 과자 통에 밀반입(?)하기도 했지만(영국은 담배 규제가 심한 편. 1인당 들고 들어갈 수 있는 한도가 200개비 정도로 기억한다) 이리저리 피워대는 통에 늘 상 부족하기 마련인 게 담배다.

가짜 담배를 '5,000원'에 산 이유

담배가 날 버릴 것인가. 내가 버릴 것인가를 고민하던 와중 날 유혹한 것이 바로 이 ‘녀석’, 가짜 담배. 차이나타운에 가면 2.5파운드(한국 돈으로 약 5천원, 가짜도 비싸다)에 녀석을 구할 수 있었다.

한국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어쨌든 당장이 급했던 필자는 차이나타운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곳에 가면 검은색 가방을 둘러멘 한 눈에도 척 알아볼 만한 아줌마들이 주위를 살피고 있다. 그리고 근처에서 ‘시가렛’하면 검은 가방에서 담배를 꺼내 준다.

여기서 구입한 놈이 유명한 ‘말XX'. 밀봉된 상태에선 진짜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이내 비닐이 예쁘게(?) 뜯기지 않고 은박지도 조잡하다는 걸 알게 된다.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이면 가짜임은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담배맛보다 종이 태운 연기를 들이 마신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지 모르겠다. 담배를 둘러싼 종이가 마치 A4용지 같이 두꺼운 게 이를 증빙한다.

물론 이 블랙마켓에도 가짜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간혹 선원용 면세 담배도 거래된다. 즉, 어떤 판매책이 더 양심적인가에 달렸지만 일반인으로서는 알 길이 없다.

담배 한 갑에 9,000원하는 영국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믿었던 ‘가짜담배’가, 담배값 3,000원 시대를 앞둔 한국에서 벌써 유통된다는 것이 애연가의 한 사람으로 착잡하다.

‘담배값 인상 찬반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요즘, 솔직히 필자는 어느 쪽 손을 들어야 할지 잘 모른다. 애연가로서는 담배가격 인상을 반대해야할 듯 하고, 반면에 인상을 주장하는 쪽의 논리도 감사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그들의 주장엔 비흡연자들의 권리가 포함돼 있는 만큼 흡연자들의 건강에 대한 애틋함도 녹아 있지 않은가.

그러나 담배가격 인상을 둔 논란의 틈바구니에 하나는 지적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주변에서 무슨 일만 있으면 ‘자본주의’ 들먹거린다고 탓할지 모르겠으나, 결국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의 ‘빈익빈 부익부’ 구조에 있다.

대학 1학년 심리학 수업내용에서 교수가 ‘부적 강화제’라는 것을 설명하면서 담배를 예로 들었다. 흡연자들은 노동으로 육체가 지칠 때, 또는 업무로 머리가 복잡한 사무실에서 담배를 빌미로 잠시 휴식을 취한다. 몸에는 해롭지만 그것을 통해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반대로 정적 강화제로는 운동과 같은 것이 있다. 부적 강화제라고 무조건 부정적이진 않다고 설명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통계치가 없어 단정 지을 순 없지만, 개인과 주변경험에 비추어볼 때 스트레스가 받거나 긴장감과 압박감 등 심리적 요인이 많을수록 담배를 피우는 횟수도 증가한다.

연봉 1,000만원 미만자에겐 '연초비' 소득공제

10년이 다돼가는 심리학 강의와 주변경험까지 들춰내는 이유는 담배와 계급에 대한 관계를 주장하기 위해서다. 정확한 수치는 없지만, 추정컨대 노동 강도가 높은 직종, 업무량이 많은 직종에 종사하는 자일 수록 담배소비량이 높을 것으로 예상되며, 특히 저소득층일수록 담배 끊기는 더욱 힘들지 않을까.

높은 연봉과 안정된 직장을 가진 이들과 위와 같이 생존유지를 위한 강도 높은 노동에도 불구하고 소득수준은 평균아래에 밑도는 이들 중 금연의 가능성은 당연히 전자가 높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담배가격 인상은 이들에게 곤혹스러운 일임이 자명하다. 정말 건강을 위해 금연하는 것이 아닌 돈이 없어 금연해야 하는 상황.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 부분을 간과해선 안 된다.

왜냐면 이들의 선택이 영국에서 필자가 그러 했던 것처럼 ‘가짜 담배’의 ‘유혹’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고, 그렇다면 결국 ‘담배가격 인상’의 목적달성도 실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담배가격 인상’을 반드시 추진해야 한다면 이들에 대한 해결책도 내놓아야 한다. 예를 들어 연봉 1,000만원 미만자에 한해 ‘연초비’를 소득공제 항목에 추가해 1년에 20만원씩 세금을 환급하는 식의 구체적인 정책마련이 필요하다.

물론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적 문제인 동시에 한계인 ‘부익부 빈익빈’과 ‘부의 대물림’ 현상을 완전 해소할 방법이 없는 우리 시대는, 근시안적이고 ‘땜빵’식 이라는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대안을 제시할 수밖엔 없다.

‘가짜 담배’로 답답해 진 마음에 쓰기 시작한 글을 맺으면서 필자도 담배 한 개비 물러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득공제 항목에 ‘연초비’가 신설되더라도 필자와는 관계가 없음을 알아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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