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정만이 대안은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연정 제안에 대한 제언

검토 완료

김민식(kame1004)등록 2005.08.02 13:36
지난 2002년 대선과 2004년 총선을 통해 우리는 지역주의가 약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전히 지역주의는 한국정치에 있어 유의미한 변수임에는 틀림없지만, 냉전반공주의와 지역주의 외의 다른 변수들, 예를 들어 세대와 계층 그리고 이념이 정치적 대표체계에 들어오게 되었다.

비록 새로운 정치, 사회적 요소가 선거에서 유효한 변수로 등장하였지만, 앞으로의 선거에서도 지역주의는 맹위를 떨칠 것이 분명할 것이다. 아직 우리나라의 정당들은 지역주의의 정치적 동원 외에 계층과 이념, 정책적 견해의 다름을 정치 제도권에서 수렴하고 대표할 능력과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연정’ 제안은 각 정당이 가지고 있는 지역적 프리미엄을 포기하고 현 정권의 권력분점을 통해 지역주의를 극복을 위한 제도의 마련에 같이 협력하고 만들어가자는 그의 강력한 의지의 표명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연정 제안에는 뛰어넘기 어려운 한계가 존재한다. 그것은 지역주의 정당구조를 형성할 수밖에 없었던 한국 정당의 근본적인 한계 즉, 이익대표체계의 불평등성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미완(未完)의 민주주의 혁명, 1987년 민주화

1987년 민주화는 선거결과가 사전에 확정되거나 사후에 변경할 수 있는 권위주의 정치체제를 민주주의 정치체제로 전환시킨 역사적인 일이다. 정치학자 아담 쉐보르스키(Adam Przeworski)의 지적대로, 민주화는 ‘불확실성의 제도화’ 즉 정치적 경쟁의 복원을 의미한다.

그러나 1987년 한국의 민주화는 군부 내 온건파와 제도권 야당 엘리트 간의 협상과 기층 대중의 배제를 특징으로 하는 협약 민주주의(pact democracy)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즉 한국의 민주화는 민주화 연합세력과 군부권위주의 지배연합세력이 ‘직선제 개헌’을 통한 최소한의 절차적 민주주의의 회복에 합의하는 타협을 이룸으로써 가능하게 되었다.

민주화의 문턱을 넘을 수 있었던 주요한 원인은 5공화국 하에서 급진된 사회운동 세력이 민주화를 위한 협상에서 배제되고, 이 과정에서 권력구조와 분배구조의 근본적 변혁이 제도정치권 내에서 다루어지지 않음으로써 가능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임혁백 교수는 ‘한국의 민주화를 위한 최대연합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중산층의 가담이 필수적이었는데, 권위주의 정권에서 경제성장의 직접적 수혜자인 중산층은 분배구조 개혁 없이 정치적 자유의 확대만을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즉 직선제 개헌은 최소한의 공통분모이며, 최소강령주의적 전략인 것이다.

1987년 민주화 과정은 사회적 지지기반이 없는 소수 명망가 중심의 제도권 야당(간부정당, cadre party)이 사회경제적 개혁의 모색 없이 직선제 개헌이라는 최소한의 절차적 조건에만 타협하여 무색무취한 포괄정당(catch-all-parcy)의 특성을 보여줌과 아울러,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의 유불리만을 고려한 개헌정국을 볼 때, 향후 정당체제가 이념과 정책보다는 선거에서의 승리 그 자체에 목적을 두는 선거전문가정당(electoral professional party), 정당의 보수적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지역주의에 억압된 불평등한 이익대표체계

한국의 지역주의는 전근대적 잔재가 아니라 근대화, 산업화 과정에서 나타난 경제개발과 엘리트 충원의 지역차별과 실질적인 사회경제적 불평등에 기인하다. 즉 지역주의는 지방의 차별적 선택과 배제 그리고 서울로의 초집중화의 결과물인 것이다. 이미 1968년 그레고리 핸더슨(Gregory Handerson)은 “서울은 단순히 한국의 최대도시가 아니라, 서울이 곧 한국이다”라고 지적했듯이, 중앙집중화는 지역의 차별과 배제를 낳았다.

이렇게 지역에 따른 이해(利害)의 차이가 엄연히 상존하는 정치경제 구조 하에서 정치인들이 지역을 동원하고 유권자가 이에 호응하는 것은 (선거이론의 측면에서 봤을 때) ‘합리적 선택’(rational choice)이다. 비록 그것이 사회적으로는 비합리적이라 할지라도.

정당이 사회적 갈등(conflicts)과 균열(cleavages)을 표출하고 대변하며, 공익과 공공선에 대한 여러 경쟁적인 논의와 이슈들을 정책대안으로 조직하는 역할을 한다는 최장집 교수의 정의(定意)는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던져준다. 정당은 대중을 정치적으로 동원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한 사회의 주요한 세력의 참여와 이해관계가 제도정치권에서 다루어지지 못하고 배제될 때 정치는 엘리트 카르텔에 의한 정치, 미 정치학자 샤츠슈나이더(E. E. Schattschneider)가 말한 ‘상층부의 편향성 동원’(mobilization of upper class bias)의 정치가 될 뿐이다.

최 교수의 정의에서 볼 때, 한국에서의 냉전반공주의와 지역주의는 계급이나 계층 등 사회의 기능적 분화에 따른 균열을 해체, 억압하고, 정당이 사회적 기반을 가질 수 없게 하는 정당의 저발전(低發展)을 결과했다. 정당이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정치대표체계에서 대표할 수 없음으로 해서 정치체제의 사회통합기능을 현저히 약화되었다. 사회의 주요한 갈등과 이익이 제도권에서 다루어질 수 없을 때, 이들은 ‘거리의 정치’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잦은 시위와 집회는 저발전된 한국 정당정치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연정만이 대안은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한 방법으로 선거구제 개편을 제안했다. 또한 대통령 자신이 가진 정치권력 중 상당 부분을 내놓더라도 야당 특히 한나라당과 함께 선거구제 개편논의를 하고자 하고 있다. 민주당과의 합당, 민노당과의 소연정의 범위를 넘어, 한나라당에게 총리지명권과 조각권(組閣權)을 주는 대연정으로 통해서라도 선거구제 개편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하지만 지역주의는 단시 선거구제를 개편한다고 해서 해결될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지역주의는 단지 정치적 현상인 동시에 사회경제적 현상이다. 인적, 물적 토대가 확실한 그러나 실체가 없는 가공할 대상이기에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서는 다각적인 고려와 분석을 통해 접근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선거제도는 단순다수제(plurality system)를 채택하고 있다. 투표자가 적든 많든 그 중에서 가장 많은 득표만 한다면 이긴다. 다수결주의 하에서는 승자독식(winner-takes-all)의 원칙이 지배한다. 이 경우 정치적 경쟁은 ‘죽고사는 문제’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우리의 정치는 늘 사생결단의 정치이다. 단순다수제는 유권자의 선호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다. 유권자의 사표방지가 선호와 무관한 투표행위를 조장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의 중요한 갈등과 균열은 사회화되지 못하고, 정당간 경쟁은 권력을 둘러싼 생사의 투쟁이 되어버린다.

최장집 교수는 현재의 정당체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결선투표제(run-off)를 제안한다. 즉 유권자에게 끊임없이 차선의 선택을 강요해 자신의 선호대로 투표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마련하여 현재의 선거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최 교수는 비례대표제의 성격을 강화해야 할 것을 주문한다. 독일과 같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도입해, 정당투표를 통한 비례대표제에 기반을 두면서도 작은 지역구에서 유권자가 후보자와 직접 접촉할 수 있는 기능성을 유지시킴으로써 정치엘리트의 수직적 책임성을 강화시킬 것을 제안한다. 결국 한국민주주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보수독점적 양당체제가 해체되어야 할 것이다.

임혁백 교수 역시 다수결주의 하에서의 승자독식을 우려하면서, 지역주의와 같은 장기화된 갈등(protracted conflics)에 의해 사회의 균열구조가 고착화된 경우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인 ‘경쟁’을 의도적으로 제한하고 경쟁의 결과에 상관없이 ‘최소한의 권력분점’을 보장을 제도화함으로써 공존의 길을 모색하였다. 즉 임 교수는 네 가지 원칙을 제시하며, 협의주의(consociationalism)를 제안하였다.

1) 대연합정부(grand coalition government) : 단순다수결의 선거의 결과 대신 경쟁의 결과에 관계 없이 권력분점이 가능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
2) 상호 비토(veto) : 대연합정부 유지를 위해 소수파의 사활적 이익을 보호하여 정치적 패배를 강요하지 않음. 비토권 남용방지를 위해 다수파 역시 비토권 보유
3) 비례주의(proportionality) : 경쟁의 결과에 관계없이 소수파에게 일정한 몫의 보장
4) 부분의 자율성(segmental autonomy) : 참여하는 각 집단 내부의 배타적인 자율성을 인정하여 각 집단엘리트에게 구성원에 대한 독점적 대표성을 부여함

박찬표 박사는 더욱 구체적으로 접근하면서 지역정당체제 극복을 위해 분권화와 양원제를 제시한다. 수도권, 영남으로의 경제력 집중을 해소하고, 국제와 지방사무 및 행정권한의 재조정 등을 통해 초중앙집중화된 중앙권력의 해체와 분산을 주문한다.

또한 박 박사는 라입하트(A. Lijphart)의 이론을 빌려 ‘양원제’가 지역주의에 기반한 제로섬적 권력경쟁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이 된다고 주장한다. 제1원은 국민직선제, 유권자수에 비례한 의원정수 배정을 원칙으로 하고, 제2원은 지역대표성에 입각하여 간선제와 지역별 동수 배정 원칙을 특징으로 한다(제2원의 간선제 선출에 대한 이유로 그는 제2원의 정당정치의 예속을 지적하였다). 현행 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가 직접선출에 의한 ‘이중 대표성’이 있는 만큼 제2원의 선출에도 이 두 기관이 참여해아여 지자체장이 지방의원 중 상원의원을 지명해 지방의회가 이를 인준하는 방식을 제안한다.

지역별 대표의 수를 결정함에 있어 지역대표성과 소수지역 이해의 보호라는 측면에서 ‘지역별 균등배분’이 바람직할 것이며, 이를 위해 부산, 울산은 경남과, 인천은 경기와, 대구는 경북과, 대전은 충남과, 광주는 전남과 각각 통합시켜 전국을 1특별시 9개 광역자치구역으로 묶고 각 특별시와 광역자치구역별로 5명의 간선의원을 선출하도록 하여 영남, 호남, 충청 간의 세력비를 균등하게 하여야 함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제2원이 지방의 이해를 실질적으로 대표할 수 있도록, 그 권한은 지방자치단체의 이해와 관련된 정책영역에서만 제1원과 동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범위를 제시한다. 그 외의 안건에 대해서는 제2원의 거부권을 제1원이 단순다수결로 극복할 수 있도록 하여 제1원의 우위를 보장할 것을 제시하였다.

연정제안이 정치발전의 계기가 되기를

민주화 이후 등장한 지역주의의 정치적 동원과 지역정당체제는 정당의 정치적 대표기능, 사회통합기능을 왜곡하고 저하시킴으로써 한국민주주의 공고화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 지역주의는 박정희의 권위주의 발전국가 택한 ‘지역불균등 발전전략’의 결과 내부식민지론이 나올 정도로 수도권과 영남에 비해 호남을 비롯한 지역들이 저발전된 데에 기인한다. GDP의 50% 정도를 차지하는 수도권의 경제력 집중은 중앙집중화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현재의 지역주의는 한국의 근대화가 남긴 중앙집권적 국가구조에 의해 재생산되고 있다. 지역주의에 대한 해법은 서울, 수도권 중앙집중화를 해소하고 중앙의 권력을 지방으로 즉 단순한 권한이양이 아닌 지역의 자생력과 자치력을 강화할 수 있는 물적,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 주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노 대통령의 연정 제안은 적지 않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2002년 대선을 통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는 정치권력을 선거결과와는 무관하게 한나라당에게 넘긴다는 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그리고 민주당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매우 넓은 이른바 포괄정당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연정을 할 조건은 어느 정도 마련되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당원이 중심이 되는 정당을 표방한 열린우리당이 당의 주인인 당원들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한나라당과 연정을 하는 것은 또 다른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노 대통령의 연정 제안은 한편으로 현재의 정당들이 얼마나 사회적으로 허약한 기반 위에 서 있는가를 보여주는 역설적인 결과를 낳았다.

정당연합과 권력구조를 둘러싼 논의에서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지분이 줄어드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이들은 변화의 시기에도 자신들의 지분을 안정적으로 보장해줄 기제와 제도를 찾을 것이다. 선거제도를 포함한 정체제도는 정치행위자 간의 ‘전략의 산물’이므로, 정치엘리트에게 현실성 있는 것이어야만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정치엘리트에게만 맡겨놓을 수 없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국민들의 이해와 여론이 충분히 반영된 제도가 마련될 수 있도록 유권자인 국민들의 날카로운 시선이 정치엘리트의 언행에 항상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에 관해 갈등하지 않는 사람들은 갈등의 해결을 위한 민주주의의 세련된 규칙을 고안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는 러스토우(D. Rustow)의 지적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아무쪼록 노 대통령의 제안을 계기로 한국의 정치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어 한국의 민주주의가 더욱 공고화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게 되기를 학수고대한다.
ⓒ 2007 OhmyNews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