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청소년 성범죄자 신상공개에 반대한다

현대판 콜로세움이자 주홍글씨인 신상공개의 실체

검토 완료

허지웅(ozzyz)등록 2005.06.08 09:41
청소년보호위원회가 판관 포청천이 되기를 자처하고 나섰다. 의욕적으로 도입한 청소년 성범죄자의 신상공개 제도가 별다른 실효를 거두지 못하자,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가 성범죄자의 사진과 상세주소까지 공개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새로운 ‘옥’ 작두는 국가인권위원회의 반대에 부딪혀 표류하고 있는 실정이다. ‘응징’을 사랑하는 대한민국 네티즌들의 80% 이상이 지지의사를 표명하고 나섰으니 조만간 영민한 포퓰리스트 한두 명이 의욕적으로 추진해볼만한 선거 공약이라 사료된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아마도 어디선가 그렇게 쓰여 있는 것을 본 것 같다. 그런데 공화국의 헌법에 의해 다스려지는 법치국가에서 공공연하게 이중처벌과 명예형이 자행되고 있으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더군다나 판사에게 재판받을 권리마저 무시된 채 말이다.

그 대상이 성범죄자이든 국적포기자이든 혹은 지하철에 애완견의 설사를 흘려놓고 자리를 떠버린 어느 여성이든 간에 관계없이, ‘신상공개’ 라는 현대판 주홍글씨가 이 나라의 대기를 부유하며 근엄한 표정으로 먹잇감을 찾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오래 전에 집 나간 상식을 붙잡아 떠올려볼 때, 신상공개가 어떠한 경우에도 진정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미 처벌받은 범죄자를 판사의 재판과정도 생략한 채 이중 처벌하는 행위는 형평성에 어긋나는 처사이며, 또한 전근대적 형벌의 대명사인 명예형의 원리를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그것은 '처벌' 의 범주를 벗어난 '복수'와 '응징'의 차원에 다름이 없다. 드라마 속 주인공의 이마에 새겨진 낙인에 가슴아파하는 대중이 눈앞에 펼쳐지는 명예형에 대해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광경은 보기에 편치 않다. 하지만 이러한 대전제 상의 논의들보다 더욱 절실한 문제의식은 그 실효성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된다.

신상공개 찬성론자들은 미국에서 96년도에 도입된 메간법을 주요한 논거로 거론하지만, 정작 메간법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었는지에 대한 결과부분에 있어서는 일절 함구하는 행태를 보인다. 사실 미국의 청소년 대상 성범죄율은 메간법의 도입 이후에도 전혀 줄어들지 않았으며, 오히려 최근 몇 년간 폭발적인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메간법과 성범죄율의 감소 사이에 어떠한 상관관계도 검증된 바 없다는 의미이다.

청소년보호위원회와 미국 신상공개 옹호론자들의 유사점은 더 강력한 통제 수단을 찾는 멘털리티에서 재차 드러난다. 미국은 메간법이 별다른 실효를 거두지 못하자, 전자수갑이나 강화 메간법 같은 대체 입법을 준비 중이기 때문이다. 제도가 효력을 거두지 못했다면 그것의 실효성을 우선 검토하고 구조적인 문제점을 파악해야 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이다. 하지만 미국과 우리나라 모두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사실 이러한 의도적 무관심이야말로 신상공개를 반대해야하는 주요한 모티브이다. 신상공개 같은 행정응징제도는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감정적으로 희석시키고 감추기 위한 현대국가의 위선에 불과하다. 집권층의 이익관계가 복잡하게 맞물려있는 시스템 상의 문제점을 들추고 구조적 모순을 수정하는 것보다는, 당장에 드러난 개인의 범죄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철저히 응징하거나 그 존재자체를 도려내 치워버리는 것이 그들의 유착관계에도 유용할뿐더러 상대적인 저 비용으로 운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신상공개 같은 명예형은 범죄자로 하여금 꾸준한 비난의 대상이 되게 함으로써, 사회 구조적 모순을 통해 쌓여진 대중의 분노를 효과적이고 지속적으로 해소시킬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하다. 이는 유독 성범죄자에 대해 극단적으로 접근하려는 작금의 시도들에서 역시 읽혀지는데, 가부장 사회의 억압구조 상에서 형성된 여성들의 분노를 엉뚱한 대상에게 잘못된 방법으로 집중시키고 희석시키려는 의도가 암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의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행해지는 정부 주도의 응징구조가, 실은 집권계층이 손쉽게 도덕적 우위를 점령하면서 동시에 이익도 꾀할 수 있는 주요한 국가시스템의 하나인 것이다.

현대판 콜로세움이자 주홍글씨라 할 만한 신상공개 제도는 헌법의 대전제에 크게 어긋날뿐더러 그 실효성마저 검증되지 못한 형편이며, 또한 국가 주도의 국민통제시스템으로써 작동하고 있다. 청소년 성범죄자에 대한 신상공개는 자칫 마녀사냥이나 중세의 공개처형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보다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구조적 모순들, 성폭력의 주요한 모티브인 가부장제의 잔재와 모든 문제해결에 있어서 폭력을 앞세우고 나아가 미화하는 병영문화의 만연에 대해 과감한 비판과 대안을 요구할 수 있는 범국민적 혜안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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