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타지에 살면서 변해가는 우리집에 대한 느낌

검토 완료

오윤주(100miso)등록 2005.05.03 16:22
오랜만에 집에 내려왔다. 두 달여 만인가….
1년 반 전부터 이렇듯, 두 세달 만에 찾아오곤 하는 집이지만 항상 낯설지 않은 건 우리 집이기 때문이겠지.

이 집도 발을 디딜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집을 팔려고 내놓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다닐 적의 어느 날에도 집을 판다는 말이 나왔었다.
순간 ‘울컥’ 하는 마음에 대문에서부터 한쪽에 쌓아놓은 쓰레기더미까지 이리저리 사진으로 담아놓았던 기억이 있다. 앨범을 뒤적거려보면 아마도 그 사진들이 나오겠지.

아직 푸르딩딩한 것들을 따먹다 퉤퉤 뱉고는 기다림의 마음을 갖곤 했던 가을의 풍성한 감나무, 아픈 고딩시절 땅으로만 향하던 내 시선을 끌어올려주던 선녀 같았던 목련나무, 신음소리는 무조건 ‘아픈 소리’ 라고만 알던 나에게 떨리는 진실을 알려주었던 1층의 신혼 셋방, 김장철이면 양손에 빨간 접시를 들고 애꿎은 이마로 문을 두드리곤 했던 2층의 세윤이 집과 또 다른 셋방의 새댁언니. 한 지붕 네 가족이었던 우리 집은 이제 세윤이가 살던 집만 겨우 전세를 줄 수 있게 되었다. 자주 아팠던(?) 1층의 셋방은 창고가 되어버렸고, 따로 세를 놓던 2층의 그 방은 전세로 합쳐버렸다. 시간이 지나 집도 나이를 먹었다.


함께 점심을 먹다 우연스레 쳐다본 아빠의 머리는 바람이 휑하다. 이미 40대부터 염색을 하시던 아빠의 두피에 까만 것이 묻었다. 샴푸를 잘하시라고 말하자 일부러 안닦으신단다, 머리칼 처럼 보일려고. 늙어버린 우리 집이 아빠를 닮았다.
참… 난 왜 뒤늦게 미용사를 한다고 이리 설쳐대고 있을까. 결혼도 하긴 해야하나…

아빠가 낮잠을 주무시는 큰방의 창문으로 화단이 보인다. 아빠가 열심히, 재미나게 꾸며놓으시던 우리 집의 화단은 드러나지 않은 내 자랑이었다. 다홍, 하양, 분홍의 철쭉들이 아직 화단을 한 가득 매웠다. 이제 만개를 지나 시들기 시작하는 철쭉…
이놈의 철쭉들은 왜 또 엄마를 닮은 것이냐.
봄의 송별잔치를 하듯, 아직도 느껴지는 화사함은 아쉬움의 눈물같다. 여자를 잃어가고 죽음을 준비해가는 엄마의 속을 철쭉을 빌어 애써 해아려본다.

며칠 전, 기숙사에 찾아왔던 큰오빠는 내년에 아빠가 70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쿵’ 내려 앉는단다.
이제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아빠 곁에서 살아야겠다고.
언니도 중국으로 갔는데 오빠도 내려가면 이제 정말 홀홀 단신이군. 오빠랑 엄마는 내가 내려왔으면 한다. 고생스럽다고. 그래도 움직이지 않는 내 속은 평생 외롭게 돌아다닐 운명을 감지하게 해줄 뿐이다.

오랜만에 찾아와서 느끼는 ‘가족’ 이라는 존재.
기쁨인지 아픔인지 둘 다인지, 아무튼 애매 모호한 감정만 내 속에 가득 들어찬다.
성공이 무엇이든, 행복이 무엇이든, 죽음에 대한 꿈을 가지라고 내 자신에게 말하는 나.
‘우리 집’ 이라는 공간 속에서 조차 아리송하다. 이곳이 꿈 속인지, 현실인지.
참으로 엉뚱한 내 맘에 ‘We are the one’ 이라는 평화적 문구가 떠오른다, 참으로 모순적인 느낌으로. ‘우리’라는 말 속에도 one 이라는 말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을..하나되는 세계를 염원해도 one 이라는 것을 별 가치가 없다는 것을 느끼면서 말이다. 우리 집과 하나의 가족은 뭔가 좀 더 흩어져있고, 하나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음을 느끼면서......

다시 일터로 돌아가면 따뜻한 애잔함으로 떠오르겠지, 우리집은.
세월을 더 먹은 만큼 말이다.
ⓒ 2007 OhmyNews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