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동은 유통기한이 없다?

미국의 한인수퍼에서 유통기한없이 꽁꽁 얼려 파는 소시지,어묵,햄 등 가공식품들, 유통과정에 문제는 없을까?

검토 완료

신은정(bloody10)등록 2005.04.10 19:47

한국수퍼에서 구입한 유통기한없는 가공식품들 ⓒ 신은정

지난 2월, 미국으로 오면서 내 이름앞에 '재미교포'라는 생소한 수식어가 얹혀졌다. 현재 내가 사는 곳은 보스톤 인근에 있는 캠브리지라는 작은 도시다. 미국 생활에 어느정도 적응이 돼갈 무렵 남편을 따라 한국 수퍼에 장을 보러 갔다. 김치도 먹고 싶었고 어린 시절 노란 계란물 입혀 부쳐먹던 소시지 맛도 그리웠다. 과연 듣던대로 한국 수퍼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김치, 미역, 참치캔 등 눈길 가는 것들을 집어담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한국에서 유통되는 소시지를 유통기한 없이 꽁꽁 얼려 팔고 있는 것이다. 구석구석 꼼꼼히 살펴봤지만 포장지 어디에서도 유통기한을 확인할 수 없었다.

"아줌마, 이거 유통기한이 어떻게 돼요?"
"냉동은 날짜가 없어요."

날짜가 없다는 대답보다 주인의 심드렁한 말투가 더 놀라웠다. 찜찜했지만 먹고 싶다는 유혹이, 어린 시절의 그 추억이 너무나 강렬했기에 결국 얼린 소시지 하나를 집어 들었고 며칠 후 설마 하는 심정으로 부침개를 부쳐먹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내가 이 사실을 기사로 쓰는 이유는 소시지 값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문제의 냉동소시지를 대부분의 한국 수퍼에서 팔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을 사먹는 소비자는 형편이 여유롭지 못하거나 나처럼 지독한 향수병에 시달리는 한국인들일 것이다.

배탈사건을 겪은 이후 나는 인근에 있는 한국 수퍼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조사해보았다. 가게마다 약간의 편차는 있었지만 한결같이 유통기한 없는 가공식품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공통점이 있다면 참치캔이나 냉동만두 같은 비교적 유통기한이 긴 제품들은 선명하게 날짜가 찍혀있는 반면 소시지,햄,맛살,어묵 같은 훈제식품은 대부분 유통기한이 없다는 것이다. 두 곳의 수퍼에서는 포장도 되지 않아 출처조차 알 수 없는 꽁꽁얼린 어묵을 파운드당 2-3달러의 싼(?) 값에 팔고 있었고, 그나마 가장 규모가 큰 수퍼에서도 유통기한이 없는 소시지와 햄을 냉동도 아닌 냉장 상태로 판매하고 있었다.

모든 가공식품에 유통기한이 있다는 것은 기본적인 상식이다. 그런 단순한 규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물론 유통기한이 없다고 해서 반드시 그 식품이 유해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유통과정이다. 내가 찾아낸 몇몇 식품들은 한국에서도 구입한 경험이 있는 소위 유명 브랜드의 제품들이다. 한국에서는 쉽게 눈에 띄던 유통기한을 눈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애초에 해외용을 따로 생산했거나 아니면 국내에서 시판되던 것을 재포장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기업은 올바른 정보를 알려줄 의무가, 소비자는 자신이 소비할 상품에 대해 알 권리가 있지 않을까.

미국에 온지 이제 두 어달, 그동안 내가 만난 교포들은 일요일도 없이 정말 열심히 살고 있다.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가게는 1년 365일 문 닫는 날이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낯설고 말설은 타국에서 자리잡기까지 그 고생이야 이루 말할 수 없을 터, 향수를 미끼로 먹거리를 가지고 해외교포들을 두 번 울리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 2007 OhmyNews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