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 수학, 아빠의 방법은 틀려요!

7 + 8 = 15 는 외워서 아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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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록(izone3)등록 2005.03.13 14:18

외워서 100점 맞는 학습지와 원리를 가르치기 위해 이용한 동전. ⓒ 박영록

"야! 너 도대체 몇 번을 했는데 그것도 모르니!"

저녁을 먹고 학습지를 푼다며 같이 책상에 앉던 아내가 불과 몇 분이 되지 않아 소리를 지른다. 가만히 보니 수학문제를 풀고 있었다.

3 + 9 =
7 + 9 =
10 + 9 =

어! 이상하다? 수학 학습지를 시작한 지 거의 1년이 다 되어 가는 것 같은데, 아직도 이걸 모르나? 아니, 예전엔 다 척척 풀어낸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문제들이 좀 이상했다.

"어디 줘봐!"

받아든 학습지는 지난번에 내가 보던 내용과 다른 것이 딱 하나 있었다. 예전에 척척 풀어내던 학습지는,

3 + 4 =
4 + 4 =
5 + 4 =

이런 식으로 되어 있었는데, 이번 것들은,

4 + 9 =
7 + 9 =
10 + 9 =

이렇게 되어 있었다.

처음에 풀던 문제는 두 번째 숫자는 일정하고, 첫 번째 숫자가 순서 대로 진행되는 것이었고, 지금 풀지 못하는 문제는 순서 대로 진행되던 첫 번째 숫자가 임의로 제시되었다. 즉, 예전에는 맨 처음 것만 답을 알면, 그 다음의 답은 순서 대로 쭈욱 쓰기만 하면 되었는데, 지금은 하나하나 계산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제야 '아하! 이 아이가 요령을 피웠구나! 계산을 한 게 아니라, 순서 대로 숫자만 적은 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다, 내가 가르쳐야 겠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동전이었다. 동전을 스무 개쯤 가져다 놓고, 먼저 세 개를 골라낸 후,

"상하야! 이 동전이 열 개가 되려면 몇 개를 더 놓아야 되지?"

그랬더니, 손가락으로 센다.

"손가락으로 세지마! "

옆에 엄마가 한 마디 한다.

"어? 왜? 난 손가락으로 세면서 공부했는데?"
"학습지 선생님이 그러면 안 된대!"

아이는 손가락을 접은 채 가만히 동전을 내려다 보더니, 여덟 개를 스윽 갖다 놓는다. 그래서 찬찬히 세어 주었다.

"열 한 개지?"

다시 한 번 물었다.

"네 개가 여기 있거든? 그러면 몇 개를 갖다 놔야 열 개가 되지?"

이제는 다섯 개를 가져다 놓았다. 그렇다. 내 아이는 계산을 할 줄 모르는 것이다. 그냥 적당히 비슷한 숫자를 때려 맞히는 것이다. 이상했다. 예전에 한 번 스무 문제를 내주었을 때는 다 맞히지 않았는가? 상품이 장난감이 걸려 있어서 그랬나?

"그때는 다 기억하고 있었거든…."

아내의 풀이다. 뭐? 기억? 그럼 외운단 말인가? 지금은 외운 것을 다 까먹어서 못 푼단 것이고? 이럴수가! 더하기도 외워야 하는 것인가?

"왜 그런 줄 알아요? 일일이 계산을 하면 시간이 모자라서 못 푼대요. 무조건 '탁' 치면 '툭' 하고 나올 정도로 외워야 문제를 풀 수 있대요. 곱하기도 그렇잖아요. 이제는 구구단이 아니라 19 X 19까지 외워야 해요."
"맞아요. 아빠! 아빠는 19 X 19 알아요?"

모른다. 하지만, 그거 몰라서 곱하기를 못해 본 적은 없다. 순간 멍해졌다. 결국, 수학도 이해력과 응용력, 계산능력이 아니라 암기력으로 승부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하고 싶지 않다. 분노가 일었다. 그럼, 더하기는 도대체 어디까지 외워야 하는 것인가?

내가 더하기를 아는 것은, 결코 외워서가 아니다. 난 2458 더하기를 외지 않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초등학교 1학년에 갓 입학한 아이를 가르치는 학원과 학습지 그리고 엄마들은 아이들이 더하기를 외워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더하기를 달달달 외워서 부모 보는 앞에서 '탁' 치면 '툭' 하고 내뱉는 답을 보여주며, 교육효과가 어떻느니, 얼마나 빠르게 배웠는가에 대한 자랑을 하고 돈을 버는 것이다. 교육은 장사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것이 장사겠지만, 교육은 장사로 하면 안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배우는 아이가 얼마짜리로 공부를 하는 Unit으로 인식되어져서는 안된다. 그러면, 효율과 효과를 따질 수 밖에 없다. 당장 눈 앞에서 줄줄 외운다고 교육이 잘 되된 것이 아니고, 그것을 까먹으면, 그것 봐라 우리 학습지를 안하니까 다 까먹지 않느냐라며 내세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장난을 눈치채지 못하는 조급한 부모들은 아주 훌륭한 소비자가 되어서 아이를 마치 공장에 맡기면 저절로 업그레이드 되는 시스템을 선호하고, 그 유행을 쫓아 간다.

더 무서운 것은 그 어릴 때부터 공부는 외워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들면, 그래서, 나중에 외우는 것을 못하는 아이들의 자괴감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외우는 공부는 모 아니면 도다. 잘 외우거나, 못 외우거나인 것이다. 다 외울 때까지 기다려 주지도 않고, 늦게 외우는 것은 머리가 나쁜 것으로 취급해 버린다.

단지 외우는 능력 하나로 아이들의 등급이 정해져 버린다면 이 얼마나 우스운 교육방침인가? 외우는 것은 금방 까먹는다는 것은 자명한 진리이다. 서른살 까지 대학공부를 한 내 경험으로 봐서도 배움은 외움이 아니다. 배움은 깨달음이다. 외워서 얻는 깨달음은 단 하나이다. "난 왜 이렇게 안 외워질까?....!"

많이 흥분했다. 아마 학습지에 좋은 면도 있을 것이다. 세계적인 교육열을 자랑하는 나라이니, 학습지의 수준도 세계적이리라. 하지만, 내가 꼭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적어도 더하기는 외우지 말자는 것이다. 나의 인생에 스무살까지 머리를 쓴 것이라고는 외우는 것 밖에 안했기 때문에, 내 아들만이라도 그렇게 지내게 하고 싶지 않아서 이다. 제가 틀렸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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