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가장 존엄한 권리이자 죄악

자살은 자기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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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환(oject)등록 2005.02.28 17:11
잠들어 있을 때의 가치가 깨어있을 때의 그것을 앞설 때, 삶을 사랑하는 마음 보다 삶을 증오하는 마음이 더 클 때, 뜻밖의 사고나 불행으로 목숨을 잃기를 무의식적으로 원할 때, 이런 생각을 가진다는 것은 인간이 생을 마치는 세 가지 유형 중의 하나인 자살이라는 방법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일 것이다.

태어나는 시각부터 죽는 시각까지가 인간의 삶이라면 죽음은 생의 마지막이다. 과학적으로 따지자면 수정상태, 태아상태, 뇌사상태 등의 여지가 많겠지만 보편적인 견해는 저렇다. 인간이 죽는 세 가지 유형은 자연사, 사고사, 자살이다. (안락사는 자연사와 사고사의 가운데라 하겠고 타살은 사고사의 일종이다.) 자연사를 제외하면 정상적이지 못한 죽음인데 사고사는 우천으로 중단된 야구게임과 같고 자살은 바둑에서의 불계패와 같다. 여기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은 자살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은 스스로 내릴 수 있는 가장 존엄한 권리이자 가장 크나큰 죄악이다. 스스로 의사를 결정할 수 있는 자유 민주주의에서 자살만큼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가장 큰 선택은 없다. 하지만 가장 사랑하는 자신을 이 우주에서 사라지게 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수 많은 사람들을 충격속으로 넣는 것은 씻을 수 없는 죄이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은 누구도 개입해서는 안될 가장 존엄한 자의적인 선택에 발벗고 간섭한다. 많은 세상사에서 보편적인 시각은 언제나 그렇지는 않지만 대부분 옳은 가치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권리라기 보다는 죄악으로 해서는 안될 것으로 여기는 데 동의 할 것이다.

자살은 바둑의 불계패와 같다. 스스로 판을 포기하는 것이다. 바둑에서의 불계패는 정당한 패배 가운데 하나이다. 상대기사 외의 다른 사람들의 개입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인생은 바둑의 그것과는 다르다. 상대방은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고 수많은 구경꾼들과 훈수꾼들이 있다. 혼자서 인생을 살아가고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영향력이 합쳐져서 인생을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다.

자살도 그와 같다. 결국은 스스로 고뇌하고 스스로 죽는 것이지만 결국이라는 단어는 '인간은 원숭이이다'라고 귀결 될 수밖에 없다. 많은 구경꾼들의 눈을 의식하고 훈수꾼들의 이야기에 꾀어 돌을 던지는 것이다. 자살은 모든 구경꾼들과 훈수꾼들 그리고 상대기사를 공범으로 만드는 것이다. 지는 기사의 주변 사람들은 그가 이 불리한 판을 뒤엎고 상대를 멋지게 이기기를 바라지 돌을 던지는 것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드래곤 라자'라는 책을 보면 "나는 단수(單數)가 아니다"라는 말이 나온다. 나는 그냥 '나'가 아니라 어머니의 아들이자 아내의 남편이고, 자식들의 아버지이자 직장동료들의 동료이고 친구들의 친구이란 뜻이다. 자살이라는 것은 나 하나가 죽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내가 죽는 것이다. 그것이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존엄한 선택, 자유주의의 승리라고 말하지 않고안타까운 선택이라고 말하는 이유이다.

얼마 전에 영화배우 이은주씨가 자살로 생을 마쳤다. 수많은 사람들을 충격과 안타까움으로 몰아넣은 뉴스였다. 그녀의 죽음은 스스로의 선택이었으나 그녀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힘든 상황에 직면하더라도 조금만 더 자신과 주변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불리하고 힘든 판세를 뒤엎고 멋진 역전승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삶이 아름다워야 한다. 삶이 아름답기 위해서는 세상이 아름다워야 한다.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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