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율스님은 도대체, 누구인가?

지율 스님 인물 분석

검토 완료

권민희(cindy53)등록 2005.02.03 19:24
‘스님의 단식’과 관련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공사문제만을 놓고 보면 대안 없는 스님의 주장이 환경에 대한 전문가 공동조사를 해서 어쩌자는거냐 결국 공사 중지하자는 거 아니냐는 억측을 낳고 그러한 생각은 증폭되어 스님을 국가개발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만들어 버렸다. 설령 그게 아니라도 ‘왜 그렇게 고집을 피우냐’는 이야기는 이제 부드러운 수준이 되어 버렸다. 단식 100일이 가까워 오면서 인터넷 게시판에는 지율스님의 입장에 대해 부정적 글들이 부쩍 늘어나게 되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지율스님 개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숙제를 안게 된다. 한 인간으로서 수행자로서 여성으로서 지율스님이라는 분을 어떻게 조명해야 하는가의 문제다.

한 개인을 이해하면 그가 처한 상황도 함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단순히 천성산 문제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지율스님을 이해함으로써 삶에 대하여 좀더 깊이 있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마련해보자.



출가와 수행

지율(知律) 스님은 1957년 경남 산청군 색동면 지리산 기슭에서 태어났습니다. 스님은 어려서 성당과 교회에 다니기도 했습니다. 한 지인은 “내원사의 스님방 책장에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 꽂혀 있다”며 “젊을 때부터 근원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으셨던 듯하다”고 전합니다.

스님께서는 우연히 원효 스님의 ‘대승기신론소’를 읽다가 깊은 감명을 받고 발심(發心)하여, 92년 양산 통도사에서 청하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습니다. 스님은 94년부터 줄곧 산사의 선방에서 참선한 선승입니다. 대원사, 화운사, 수덕사, 동화사 등의 선방에서 하안거를 났으며 97년 구족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98년 낙동 정맥 천성산에 자리한 내원사에서 수행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내원사는 신라 원효 때 창건된 역사가 깊은 사찰입니다. 당시 만해도 스님은 새만금을 새의 이름으로 알 정도로 세상일에 캄캄한 분이었습니다.


천성산지기의 소임

2000년부터 지율 스님에게는 ‘산감’이라는 소임이 주어졌습니다. 산감은 ‘산감독’의 준말로 총림과 같은 큰 사찰에서 산림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맡긴 소임입니다. 산의 도벌을 막고, 숲을 돌보고, 산불을 감시하는 일이 주로 하는 역할이지요. 스님은 ‘천성산지기’가 된 것입니다.

스님은 매일같이 산을 오르내리며 산을 알아갔습니다. 어느 골짜기에 어떤 도롱뇽이 사는지도 꽃이며, 나무며, 바위며, 늪이며, 오솔길이며, 풀벌레들이며, 화엄벌에 얽힌 사연까지도 .....

지율 스님은 그렇게 천성산의 뭇생명들의 섬세한 호흡을 하나하나 몸에 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책을 보면서 산에 대하여 공부했습니다.



"스님 방의 한쪽 벽면은 생태학?관한 기초적 텍스트부터 천성산에 서식하는 다양한 생물들에 관한 정보, 고속철도에 관련된 기사들의 스크랩, 그리고 환경 관련 법령집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자료와 책자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이 모든 자료를 스님은 지난 몇 년간 혼자 힘으로 수집, 분류, 분석, 학습 하면서 천성산에 관한한 이 세상 어느 누구 보다도 확실하고 완벽한 지식을 얻었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방의 한쪽 편에는 스티로폼을 이용한 놀랄 만큼 정교하게 만든 천성산 모형이 놓여 있었다. 스님은 그것을 만드는데 꼬박 열흘이 걸렸다고 했다. 이 모든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스님이 산에 대해 말할 수 없이 깊은 애정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특히 스님이 산과 계곡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 깃들여 사는 것들, 나비, 소쩍새, 도롱뇽 및 풀, 나무, 꽃들에 관해 이야기를 할 때 그 얼굴이 형언할 수 없이 환하게 밝아지는 것을 보면 이제 스님과 천성산은 뗄 수 없는 한 몸이 되어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 ‘지율, 숲으로 가다’, 김종철(녹색평론)님의 글 중에서


지율 스님과 천성산 그리고 단식

2001년 4월 외출에서 돌아오던 스님은 산의 울음소리를 들었습니다. 포크레인이 굉음을 내며 산을 깎고 있었습니다. 천성산 관광도로 공사였습니다. 그 때 스님은 ‘벼락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때 돌이켜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공부하러 내원사 선방에 왔다가 산에 올라갔는데 포크레인으로 바위를 부수고 길을 내는 현장을 봤지요. 그게 얼마나 섬뜩하고 잔인하게 보이던지 저는 폭행당하는 여자가 생각났어요. 구타당하는 어린이를 보거나 강간당하는 여성을 보고 그냥 지나쳤을 때의 그런 심정을 느꼈어요. 사회적인 폭력이나 정부나 조직의 힘 등을 파악하지 못했는데도 저는 직감적으로 ‘내가 여기에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구나.’ 느꼈어요. 살아오면서 ‘이건 아니다’라는 현장을 수없이 지나쳐 왔었어요. 그래서 무관심하게 살아왔던 벌이다 생각하고, 그것에 대한 제 대답을 산을 통해서 한 것 같아요.”

도로공사에 이어 터널공사가 들이닥쳤습니다. 스님은 공사를 막기 위해 포클레인 삽날에 몸을 던지고, 거리에서 3천배를 했습니다. 2003년 3월부터 35일, 45일, 58일 끝없는 단식이 이어졌습니다. 부산역에서 천성산 정상까지 삼보일배를 통해 굳은 의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이번 ‘58+’ 단식까지 합치면 2월 2일로 단식 일만 237일이 넘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우물가의 수다라고 생각해요. 제가 원래 수다쟁이라. 호호호.” 스님에게도 변화는 있었다. 세 번째 58일 단식 때 청와대 앞에서 ‘묵언수행’했던 스님은 이제 자신의 일을 스스로 ‘수다’라고 규정했다. “이 세상 어머니들이 우물가나 빨래터에서 하시듯 그렇게 수다를 늘어놓고 있는 거예요. 수다는 그 자체로 수다스럽지만, 자기정화도 있거든요. 그런데 전 그렇게도 못한 것 같아요. 세상을 맑히는 일을 해야 하는데, 자꾸 사회의 부조리를 대하다 보니까….” 기자 앞에서 늘어놓는 스님의 수다는 힘겨워 보였다. 목소리는 겨우 울대를 넘어 작고 낮게 새어나왔다.
- ‘생명의 화두 결코 놓을 수 없다’ 한겨레 신문2005-01-13 안영춘 기자


바느질과 종이도롱뇽

스님은 재판을 준비하는 틈틈이 천성산을 400번 오르내리기도 했습니다. 천성산의 아름다움을 담기 위해서 사진을 배웠고, 그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서 인터넷도 익혔습니다. 환경 공부도 하고 법률 책도 뒤적였습니다. 도롱뇽 소송 아이디어도 지율 스님의 머리에서 나왔습니다.
스님은 단식현장에서 언제나 실과 바늘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종이 도롱뇽을 접기를 제안하셨습니다. 45일간의 단식을 마치고 ‘지율, 숲에서 나오다’라는 책을 내기도 했습니다.
“아지랑이 세상으로 떠밀려 다시 이 거리에 않은 까닭도 잠시 잊어지고 도롱뇽을 수놓고 있는 이 순간만이 삶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도롱뇽을 수놓으면서 아흔넷의 연세에도 항상 바느질을 멈추지 않으시는 내원사에 계신 노스님 생각이 납니다. 소품을 만들어 주실 때에는 새 천을 사용하는 일이 거의 없으셨습니다. 우리가 쓰레기통에 버린 우산 천을 뜯어 여행 주머니를 만들어 주시거나 헌 옷을 기워 멋진 누비 적삼을 만들어 주시곤 하였습니다.
저희도 이 도롱뇽을 수놓기 위해 부산 진시장으로 천을 탁발하러 다녔습니다. 지금 제가 수놓고 있는 바탕천은 ‘창’이라는 커텐집에 걸려있던 고급 커텐 샘플이었는데 마음 좋은 주인아저씨께서 서슴없이 걷어 주셨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정성을 모으고 한 땀 한 땀 도롱뇽을 수놓는 손길 속에서 사랑, 평화 그리고 고귀한 생명의 숨소리가 깨어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생명과 대안

대부분의 사람들이 천성산 개발의 방조자가 된 양심 때문에 지율 스님의 단식 중단을 호소했지만, 여전히 지율 스님은 “말라가는 것은 내가 아니라 우리의 산과 샘, 개울”이라며, 자신이 아니라 죽어가는 생명을 봐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일반인은 한 사람의 목숨을 바라보고 있지만, 이미 그는 한 사람이 아니라 수억의 생명인 셈입니다.

“저는 대안을 말하지 않아요, 아니 못합니다. 왜냐면 천성산을 뚫는다는 말에 이미 너무 깊은 마음의 상처를 받았습니다. 대안이라는 건 결국 천성산 대신 다른 데를 뚫거나 다른 곳을 지나가라는 소리잖아요. 제가 받은 마음의 상처가 너무 컸기 때문에 그 상처를 다른 누군가한테 안길 수가 없어요. 저는 고속철도가 천성산을 뚫지 말고 우회하라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천성산이 살겠다고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하면, 어느 누군가에게 너무도 귀할 수 있는 숨은 가치를 훼손시키라는 말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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