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의 선입견이 진실 규명을 어렵게 했다

-시온글러브 화재 사건을 다루는 지역신문의 보도태도

검토 완료

안태준(anti21)등록 2005.01.26 17:44
지난 8일 경상북도 칠곡군에 있는 (주)시온글러브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장애인 노동자 4명이 목숨을 잃었고 5명이 다쳤다.

여러 날이 지난 지금 이 사건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무리'를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지난 1월18일 대구장애인연맹 등 지역의 7개 시민단체가 진상조사단을 꾸려 '시온글러브 참사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나섰지만 이들이 제기한 의혹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 문제도 난항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주)시온글러브는 지난 19일 중소기업진흥공단 대구지부에서 금융기관 및 거래업체, 장애인고용촉진공단, 중소기업진흥공단 등 80여 명의 관계자들에게 향후 대책 설명회를 갖는 등 회사 살리기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새다. 유족들이나 장애인단체에서는 사건의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한쪽에서는 회사 살리기가 본격화되고 있으니 말이다.

왜 이런 석연찮은 일이 연출되는 것일까. 그 이유가 뭘까.

'좋은 기업' 부각에 치중한 지역신문들

우리의 이런 궁금증을 풀어줄 열쇠 말은 '좋은 기업'이다. '시온글러브는 장애인을 많이 고용하고 남달리 잘 돌봐준 좋은 기업이다.' 이번 사건을 보도한 지역신문들은 한결같이 시온글러브를 '좋은 기업'이라고 칭찬했다. 그들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매일신문>은 1월10일치(26면) '장애인 37%고용 장갑전문업체'란 기사에서 "전국 최고의 장애인 고용 우수회사…평소 장애인 직원들과 함께 장난을 치는 등 친구처럼 지내온 김 사장…장애인 직원을 채용한 초창기 시절엔 김 대표 부부가 장애인 직원들의 대소변 수발까지 해 왔다."고 보도했다.

또 1월11일치(6면) '화마 딛고 일어서라'는 기자노트에서 "김원환 대표 평소 기자가 알고 있는 그는 장애인 직원들의 대부다…(주)시온글러브는 장애인 직원들의 천국이었다…(사)경북곰두리봉사회 노세중 회장은 장애인 부모님들에겐 '꿈의 기업'으로 자리매김한 곳이라며 안타까워했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영남일보>도 1월10일치(24면) '칠곡 시온글러브 화재 참사'란 기사에서 "장애인 전용 엘리베이터 2개를 설치할 만큼 장애인에 대한 배려도 다른 기업체에 비해 각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장애인 고용에 남다른 애착심을 보인 시온글러브는 장애인에 대해서도 정상인과 같은 임금을 적용한 기업체로 잘 알려져 있다"고 보도했다.

또 1월15일치(12면)에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장애인 고용의 모범 우수사업체…중증의 장애인 부모에겐 '꿈의 기업'으로 자리매김해 왔고…그동안 그 많은 중증장애인들에게 일터를 제공하고 재활의 기반을 마련해왔으며 생산품인 면장갑을 통해 지역사회 경제발전에 이바지하던 사업주를 구속하고 또 공장이 결국 문을 닫게 되는 파국의 결과를 낳는다면 그것은 많은 중증장애인들의 재활의 희망조차 무너지는 결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내용의 경북곰두리봉사회장의 글을 싣기도 했다.

기업체에서 일반적으로 장애인 고용을 기피하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전체 종업원의 37%를 장애인으로 고용한 시온글러브는 분명 호감이 가는 기업체임에는 틀림이 없다.

노동부에 따르면 2002년 말 현재 장애인고용의무제도에 의해 고용되어 있는 장애인의 고용률은 1.18%에 불과하다. 또한 지난 5일 발표에 따르면 상시 노동자 300명 이상의 대형 사업장에서 장애인 의무고용비율 2%를 지키지 못해 정부에 낸 장애인고용부담금 총액이 2001년 717억, 2002년 888억원, 2003년 1039억원, 2004년(추정) 1184억원으로 해마다 큰 폭으로 늘어날 정도로 장애인 고용을 기피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유가족이나 장애인단체들에 따르면 시온글러브에 근무한 장애인 노동자들의 처우는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대부분이 최저생계비 수준의 임금을 받아왔다고 한다. 실례로 이번에 사망한 고 이동열씨의 경우 2003년 2월부터 2004년 9월까지 총수령액 기준으로 월 60만원을 받았다. 이 가운데는 정부로부터 지원된 고용장려금 월50만원이 포함된다. 결국 시온글러브가 장애인 노동자들에게 지급한 금액은 월10만원 정도였다는 주장이다.

또 지난 18일 구성된 '진상조사단'에 따르면 시온글러브는 2001년 본격적으로 장애인을 고용하면서 2004년까지 고용장려금 11억6천만원, 시설융자금 14억9천만원, 승강기 설치비 무상지원금 4천만원 등 32억원 정도를 정부로부터 지원 받았다. 그리고 같은 기간 회사 규모는 수출액이 50만 달러에서 500만 달러로 늘어나는 등 10배의 성장을 이룩했다고 한다.

물론 정부의 지원금을 바탕으로 회사를 성장시킨 점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무상지원금으로 승강기를 설치했고 정부보조금으로 최저생계비 정도의 임금을 지급했으며 이런 저임금 장애 노동자들의 노력으로 회사가 급성장했다는 주장이 있는 상황에서 사업체를 "천국"이나 "꿈의 기업"으로 상찬하는 언론의 태도는 지나치다.

뿐만 아니라 회사의 좋고 나쁨을 떠나 사건은 사건대로 진실을 밝히는 것이 언론 본연의 임무임에도 불구하고 지역신문들이 기업체 칭찬에 치중함으로서 결과적으로는 사건의 진실을 외면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유가족들과 장애인단체들의 진실 규명 요구가 뒷전으로 밀리고 기업체 살리기가 우선되는 현실, 언론의 책임이 크다 하겠다.

진실 규명 노력 부족한 지역신문들

솔직히 말하자. 지역신문들은 진실규명은커녕 사실보도에도 미흡함을 드러냈다. 우선 사건 당일에 대한 보도를 살펴보자

영남일보는 "s사에서 불이 나 공장내에서 작업을 하던 종업원 5명이 중경상을 입었고 불이 날 당시 공장 내부에는 40명 가량의 종업원들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고 사건 당일인 1월8일치에 보도했다.

그리고 1월10일치에 "불이 날 당시 기숙사에는 14명의 장애인 직원들이 잠을 자고 있었으나 무사히 대피한 5명을 제외한 나머지 9명이 사망 또는 부상의 피해를 당했다. 지하 제조공장에서 야간 근무하던 비장애인 7명은 불이 난 20여분 뒤 전기가 끊겨 기계가동이 중단되자 긴급히 빠져나왔다."고 추가 보도했다.

매일신문은 "시온글러브 공장에서 불이 나 기숙사에서 자고 있던 장애인 근로자 14명 가운데 3명이 숨지고 1명은 행방이 확인되지 않았으며 7명이 부상해 치료를 받고 있다"는 기사를 사건 당일인 1월8일치에 보도했다. 그리고 1월10일치에 "장애인 4명이 숨지고 6명이 부상"했다고 추가 보도했다.

그런데 이후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영남과 매일의 보도는 많은 부분이 사실이 아니었다. 경찰과 장애인단체 그리고 에이블뉴스 등에 따르면 사건 당일의 상황은 이랬다.

'이번에 사고가 난 공장은 지하1층과 지상2층으로 되어 있다. 지하1층은 장갑을 짜는 편직실로 24시간 가동된다. 지상1층에는 코팅실과 창고가 있고 지상2층에는 기숙사와 식당, 사무실, 화장실 등이 있다. 사고 당일 지하1층에는 비장애인 남자 5명(파키스탄인 3명)과 장애인 여자 1명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상2층 기숙사에는 비장애인 4명과 장애인 15명이 잠을 자고 있었다. 또 비장애인 경비원도 1명 있었다.

불이 나자 제일 먼저 사실을 인지한 편직실 직원 3명 가운데 파키스탄인 1명은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피시켰고, 비장애인 1명은 경비원과 상의 후 신고 및 봉고차를 옮기는 등의 일을 했으며, 나머지 비장애인 1명은 2층 기숙사 206호로 들어가 장애인 5명을 탈출시켰다. 그리고 편직실의 장애인 1명은 기계가동이 중단되자 그대로 밖으로 나왔다. 또 기숙사의 비장애인 4명과 장애인 1명은 함께 잠을 자다 탈출했다. 하지만 기숙사에 있던 나머지 장애인 9명은 대피하지 못해 4명은 목숨을 잃고 5명은 상처를 입었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진실규명은 먼 나라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사실 지역신문들은 ①장애인 다수 고용 업체인 시온글러브가 재난에 대비해 평소 안전교육이나 구조활동교육은 했었는지 ②화재경보기나 장애인 대피 시설 등이 갖추어져 있었는지 또 작동은 제대로 했는지 ③정부의 재정지원을 받는 3명의 직업생활상담원이 제구실을 했는지 ④막대한 정부 지원금은 제대로 사용되었는지 ⑤관리감독 기관은 소홀함이 없었는지 등 이번 참사의 원인 규명과 책임 소재를 밝혀내려는 노력에는 소홀했다.

단지 매일신문 1월12일치 사설 '장애인 참사로 고용 위축 안 된다'에서 "이 공장에는 장애인이 대피할 안전 시설이 없었고 이들을 보호할 관리자도 없었다고 한다…소홀한 안전 대책과 관련한 공장 측의 책임과 관리감독 기관의 책임은 면할 수 없다"고 보도한 것이 이번 화재 사건의 문제점을 지적한 유일한 기사였다.

기자의 선입견은 진실보도를 어렵게 한다

'어떤 일에 대하여, 이전부터 머릿속에 들어 있는 고정적인 관념이나 견해'를 선입견이라 한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는 것이 기자의 제1의 의무라고 한다면 기자와 선입견은 견원지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이번 사건의 보도는 그렇지 못했다. '좋은 기업'이라는 기자들의 선입견이 사건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좋은 기업이니까 보호해야 하고 그렇다보니 기업과 기업주를 찬양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당연히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은 점점 뒷전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사건이 발생한 지 20일 지났다. 아직도 진실 규명과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언론은 지금이라도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장애인 고용 모범업체를 살리는 일도 중요하지만 참사의 진실을 덮어둘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 2007 OhmyNews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