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는 어려운 일, 맞습니다 맞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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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화(pregia)등록 2005.01.23 18:59
며칠 전 고등학교 시절 친구를 만났다. 나는 주로 미리 약속을 하고 친구들을 만나는 편인데, 이날의 약속은 즉흥적으로 이루어졌다. 지금 당장 친구는 내가 필요했나 보다. 영문도 모른 채, 나는 그저 오랜만의 만남이니까 '그간 나의 안부가 궁금했겠지'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약속 장소에 나갔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분위기 좋은 까페에서 식사를 한 후, 향긋한 차를 마시는 일에 더 이상 의미를 두지 않게 되었다. 수많은 인파로 북적이는 시내 중심가로 나가는 수고를 덜기 위함이기도 했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어보지만 나이가 들어가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일 게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는 집 근처의 삼겹살집을 찾았다. 밖에서 보니 우리 또래는 거의 없고,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대부분이었다. 아직 저녁 때가 되지 않은 터라 내부도 그리 붐비지 않아서 좋았다. 우선 삼겹살을 시키고 고기가 구워지길 기다렸다. 그런데 친구는 술도 마시겠다며 청하 한 병을 시켰다.

사실, 둘이서 오붓하게 만나면서 술을 시키기는 처음이었다. 여럿이 만나도 가볍게 맥주 한잔 하는 정도가 다반사이거늘, 이 때부터 친구는 뭔가 수상쩍었다. 이날 나는 감기 때문에 술을 마실 수 없는 형편이어서 좀 걱정스러웠다. 친구 혼자서 한 병을 다 마시는 건 아닌지, 그래도 괜찮은지 걱정이 된 것이다.

노릇하게 잘 구워진 고기를 이름 모를 달짝지근한 소스에 찍어서 상추에다 얹고, 마늘과 된장도 얹어 한 입 가득 베어 물기를 반복했다. 적당히 배도 불러왔고, 나는 잠시 감기를 잊고, 한 잔만 하기로 했다. 친구 혼자서 그 술을 다 마시는 걸 보기가 더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가운데 친구는 어렵게 이야기를 꺼냈다. 7년 사귄 남자친구와 이별하고 새로운 남자친구를 만났는데, 자꾸만 옛 사람이랑 비교가 된다는 것이었다.

옛 남자 친구는 친구의 투정을 다 받아주는 마음이 넓은 사람이었고, 요즘 만나는 사람은 1살 차이로 정면으로 다투는 일이 다반사라고 했다. 만약 지금의 남자 친구와 결혼하게 된다면 사흘이 멀다하고 싸울 게 뻔할 것이므로 결혼 적령기로 접어든 이즈음 어떻게든 결론을 내려야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친구에게 한 가지 답을 제시했다. 제 3의 인물을 만나야 한다고. 소설과 영화를 통해, 지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름의 철학으로 친구에게 조언을 한 것이었다. 선을 본다는 게 어렵다면 어려운 일이지만, 어차피 결혼할 생각이라면 당연히 거쳐야 할 통과의례가 아니겠느냐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친구는 선 보는 일이 두렵다고 했다. 어떤 사람을 새롭게 만날 바에야, 예전에 자신에게 헌신적이었던 그 사람에게 돌아가고 싶다고 미련을 보였다.

그리고는 다른 걱정거리를 털어 놓기 시작했다. 당장 헤어진다면, 남자 친구가 없는 '공황상태'를 어떻게 지내야하는지 걱정이라고 했다. 물론 늘 곁에서 챙겨주던 사람이 없어진다면 갑자기 외롭기도 할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 친구가 지나치게 친구를 좋아하거나 남자 친구에게 의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홀로 있을 때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이런 걱정을 내게 늘어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백하건대 이십대 초반, 나는 남자 친구를 둔 벗들이 부러운 적이 많았다. 커플링도 그 중 하나였고, 때때로 걸려오는 남자 친구의 전화도 그러했고, 남자 친구에게 받은 선물도 내가 가질 수 없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런 일들은 더이상 내게 부러움의 대상이기보다 그저 한 편의 명화처럼 보기 좋은 그림으로 각인되었고, 그런 일보다 더 가치있는 무언가를 찾고 있는 스스로에게 만족하게 되었다.

친구가 예전처럼 자신의 모난 성격을 다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기를 바라며 나의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자기 자신을 먼저 탐색하여 과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내는 것이 중요해. 그런 다음, 자신과 가장 잘 맞는 사람을 찾아야 할 것 같다. 내가 어떤 류의 인간인지도 간파하지 못한 상태에서 상대를 찾는 일은 헛수고가 될 것이야. "

"이제는 상대방의 외형적인 어떤 조건보다는 인품과 자질이 빛나게 보여야 할 것이고, 그 때 비로소 우리의 짝을 알아볼 수 있게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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