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그거 아냐! 왜 거짓말 해!”

'차떼기'로 연행된 19살 뜨거운 여름

검토 완료

김수원(suwona)등록 2004.12.29 10:18

ⓒ 최인수

1999년 여름.
범민족통일대축전이 열리는 서울대.

정부는 행사를 불법집회로 규정하고 서울대를 원천봉쇄했다. 하늘에선 경찰헬기의 해산방송이 연일 이어졌다. 공권력은 입구를 막고 학교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검문, 연행했다. 수습기자를 막 뗀 19살 대학신문 사회부 기자였던 나는 며칠간 계속된 취재로 무척 지쳐있었다. 인터뷰 중에도 졸음이 몰려왔다.

행사 마지막 일정을 앞 둔 밤. 입구에서는 시민단체의 항의가 일어났다. 나가야하는 사람들은 내보내달라는 요구였다. 경찰은 이들이 나올 수 있도록 길을 조금 터 주었고 나도 그 틈에 끼어 부산으로 가는 전세버스에 합승할 수 있었다. 차가 5분쯤 달렸을까. 잠을 청하려는데 전경이 버스에 올라탔다.

"여러분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지금부터 현행범으로 체포합니다“

어이가 없어 사람들이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버스는 그대로 한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우리는 공안계에서 남, 여로 분류되어 조사를 받기 시작했다. 한 쪽에서는 행사 곳곳에서 찍은 사진을 가져와 우리의 얼굴을 비교했다.

“이름?”

“…”

“야, 어디서 묵비권행사 같은 거 본 모양인데, 여기선 그런거 안통해. 너, 제대로 이야기 안하면 나중에 취업도 못하는 전과자 되는거야. 그러고 싶어?”

“…”

“너, 임마. 빨리 얘기해야 집에 갈 수 있어. 집도 서울이 아닌 것 같은데, 엄마 보고 싶지 않아? 거기서 뭐 했는지 아저씨한테 얘기만 해주면 니가 제일 먼저 나갈 수 있다니까”

나는 울컥 눈물이 나려고 했다. 어서 이곳을 나가고 싶었다. 인적사항을 하나씩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래그래. 집회에 참석해서 같이 노래 부르고, 구호도 외치고 했다. 그 말이지?”

“저는 다만 취재하러 간 겁니다. 같이 동참한 적은 없습니다”

“이 새끼야! 그런 곳엔 취재도 허가를 받아야한단 말이야! 너 허가 받은 거 있어? 없잖아. 거기가면 다들 한통속이면서 뭐가 한 적이 없어!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저기서 조사받는 저 사람 본 적있지?”

“거기서 본 적 없습니다”

“같이 버스도 타고 왔으면서 뭘 못 봤다고 그래?! 그게 그거 아냐! 왜 거짓말을 해! 집에 가기 싫어?!”

경찰은 조서를 뽑아서 나에게 내밀었다.

“이거 대충 읽어봐. 읽었지? 엄지손가락 이리줘봐. 계장님, 이 녀석 끝났거든요. 이제 집어넣어도 되죠?”

우리는 이틀 뒤 풀려났다. 나오자마자 경찰서장실 앞으로 몰려가 차비를 달라고 요구하며 실랑이를 벌였지만 받지 못했다.

뉴스에서는 그날 행사에서 임산부, 노약자를 무차별로 강제연행하는 등 경찰의 공권력 남용이 도마 위에 올랐다.

당시 연행해 온 사람들을 빨리 입건처리하려고 새벽까지 밤샘조사를 벌였다. 조서를 검토할 때 요구사항을 무시하면서 수정을 회피하는 경우도 있었고 나처럼 어린 학생을 이용해 거짓진술을 유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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