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이스라엘 정착촌 거주자 입국 거부결의’에 동참해야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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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근(kklee)등록 2004.09.02 09:59
지난 8월 22일자 이스라엘 신문 ‘마아리브’의 헤드라인은 <세계 115개 국가 대 이스라엘 제재 조치>기사였다. 제재에 동참한 115개 국가는 앞으로 팔레스타인 지역 내 이스라엘 정착촌 거주자들의 자국 입국을 거부한다는 결의다. 브라질 같은 경우는 입양아를 이스라엘에 보내되 정착촌 지역의 가족에겐 불허한다는 내용도 있다.

다행히 전 세계가 올림픽에 몰두하고 있는 와중이라 아직 주 이슈로 아직 떠오르고 있진 않고 있다.

어느 나라가 열정적으로 참여했을까? 이스라엘 언론이 꼽은 대표적인 적극 참가 10여 개 나라를 보자. 인도, 태국, 네팔, 사이프러스, 페루, 볼리비아, 에콰도르, 과테말라, 남아프리카, 케냐 등이다.

그럼, 동참하지 않은 나라는 어느 나라들인가. 요즘 이스라엘 외무장관이 뛰어갈 만큼, 반유대주의로 그렇게도 시끄러운 프랑스를 비롯해 반유대주의가 뿌리 깊은 유럽은 한 나라도 동참하지 않았다. 물론 짐작하셨겠지만, 미국을 비롯한 미주 국가들도 동참하지 않았다. 중국, 일본, 싱가포르, 대만 모두가 빠져 있다.

그런데 한국은 동참했다. 대한민국은 앞으로 정착촌의 이스라엘인들의 입국을 불허한단다.

한 면 가득 실은 세계지도의, 제재 참가국(빨간색)과 제재 불참국(흰색)의 분류 지도는 딱 절반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서양의 선진국들과 저개발의 제3세계 국가들로 나뉘어 진 게 특징이다. 빨간색으로 물들여진 제재 동참국 대부분이 중동과 아프리카의 회교권의 국가들이요, 제재 불참국은 유럽과 미주의 서양 국가들로 흰색이다.

그러니 흰색의 한 복판에 붉은색의 대한민국이 유난히 돋보인다. 그리고 저개발 및 제3세계 국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한국정부가 이스라엘 제제조치에 동참한 주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우리정부는 어떤 손익계산을 따져봤을까?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날(8월22일) 이스라엘 최대일간지 예대옷 아하로놋의 헤드라인은 <부시 정착촌에 푸른신호등>, 즉 부시 행정부의 정착촌 정책수정을 다루었다.

대선(11월)을 앞둔 부시가 미국 유대인들의 압력에 그의 정책을 비밀리에 변경했다는 기사다. 뉴욕타임tm(8월21일)를 인용한 이스라엘의 신문들은 사실상 정착촌을 지지하고 나섰다는 발 빠른 기사를 실었고, 정착민들은 사실상 정착촌 건설의 허가로 받아들였다. 때론 우리도 미국 정책방향과 다른 목소리를 낼 때도 있구나.

왜 이렇게 헷갈릴까. 한국은 세계정치 흐름에 줄을 잘못 섰다. 한국 대표부는 어떤 나라가 동참하고 어떤 나라가 반대하는지 알고나 표를 던졌을까?

적어도 외교는 실리가 아닌가!

그러면, 제재에 반대한 서양의 선진국들은 소신이 없어서 인가?
그렇지 않다. 이번 제재에 불참한 서양의 선진국들은 그동안 정부와 외교채널을 통해 독자적인 목소를 내며, 여러 차례 이스라엘의 대 팔레스타인 정책을 규탄하고 강하게 비판해 왔다. 그럼에도 제재 동참은 신중했다.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의 정의에 대한 신념이 있다? 그럼 보자. 대한민국 정부나 외교부가 대 이스라엘 제재에 동참하기 전에, 일부 이스라엘인들의 대한민국 입국 불허할 만큼, 격앙된 목소리로 성명서나 비판 한 번 냈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느닷없이 앤티(anti) 이스라엘의 주류에 표를 던졌다.

특정 범죄집단도 아닌, 그 나라 정치 성향에 따라 분류된 수만명에 달하는 불특정 대다수를 향해 입국금지조치는 아무리 생각해도 신중했어야 할 일이다.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한 교민으로서 다가올 피해를 염려해서가 아니다. 미국의 압력과 눈치에 못 이겨 이라크 파병에 동참하는 것이라면, 왜 굳이 서양의 선진국들이 별 영양가 없어하는 이스라엘 제재 동참대열에 섰을까 하는 것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한국과 이스라엘 두 나라 관계를 고려하는 것은 추상이겠지만, 그 땅 이스라엘에 살아가는 교민들은 현실이다. 그렇다고 우리를 고려해 마구 허리를 굽히라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우리가 납득할 만한 정책, 그리고 다소 우리가 피해를 당하더라도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정책을 보며, 감당해 낼 수 있는 그런 신중하고 타당한 정책을 원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이스라엘에서 불이익을 당해도 그것은 각자의 몫으로 치부해 버리는 것이 외교부의 현실이었다. 교민들은 한국인에 대한 이유도 없는 부당한 횡포라는 것을 몸소 뼈저리게 느끼지만, 정부나 외교부는 그 느낌이 없다. 물론 일일이 (시다발이처럼) 어떻게 그것을 다 대응 하냐고 하겠지만, 결국 내국민 권익보호는 아직도 먼 이야기다.

그러니 말이다. 이제 이스라엘 정부는 115개 나라를 열거하며, (특히 정착촌 거주자들에게) 입국금지 공고를 낼 것이다. 그리고 이전이라도, 이스라엘 내무부 비자 담당자 중 한명이라도 <대한민국 정착촌 시민 입국불허>란 기사를 보았다면, 눈앞에서 비자달라고 사정하는 한국인들을 선대할리 만무다. 이제 한국 정부는 이스라엘 비자국을 향해 부당한 비자정책에 대해, 이러니저러니 항의할 명분을 잃었다.

명절도 다가온다. 모든 일을 제쳐두고, 어이없는 비자국의 횡포에 이곳저곳을 드나들며 또 다른 타지에서 시간과 돈을 낭비하고 있는 교민들이 많은 요즘, 더욱 씁쓸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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