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공자를 노숙자 꼴로 만들어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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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영(bakilhong)등록 2004.07.03 16:05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져 서울보훈병원 응급실에 계시다는 연락을 받고 우리 가족은 부랴부랴 서울로 향했다. 병명은 심근경색이라고 했다.

빗길을 뚫고 몇 백리 길을 달려 병원에 도착해 보니 아버지는 응급실 한 켠 침대 위에 누워 계셨다. 한 달여 전 댁으로 찾아뵈었을 때 봤던 건강한 모습과는 사뭇 대조가 되는 초췌한 환자의 모습으로.

우리가 도착하자 아버지는 아프신 와중에도 "회사는 어쩌고 이렇게 왔느냐?", "그 먼 길을 뭐하러 식구까지 다 데리고 왔느냐?"는 등 자식 걱정부터 챙기셨다. 우리는 "아프신 분이 별 걸 다 신경 쓰신다"며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고 여쭤 보았다.

이에 아버지는 저간의 사정을 얘기해 주셨다. 전날 충주 집에서 바람을 쐬러 나가셨다가 돌아오는 길에 가슴이 뜨끔한 느낌을 받았었는데, 밤이 되자 이 부위에 참을 수 없는 통증이 엄습해 와 일단 인근 병원 응급실을 찾으셨다고 했다.

그곳에서 "심근경색인 것 같다"는 의사 소견을 들으셨고, 장비 부족으로 인해 심근경색은 그곳 병원에서 치료하기 힘드니 다른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말에 늘 다니시던 서울보훈병원을 선택하셨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어진 아버지의 이야기는 우리 가족을 분노케 했다. 아버지가 이 병원 응급실에 도착해 처음 받은 대접이라는 게 너무 기가 막혔기 때문이었다. 맨 바닥에 대충 자리를 깔아 노숙자 비슷한 모양새로 누워 계시게 만들었다니 말이다. 응급실 침대가 부족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졸지에 노숙자 비슷한 모양새로 바닥에 누운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내셨다고 한다. 열여덟 채 다 피지도 못한 나이에 6.25전쟁에 참전해 나라를 지키려고 싸우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긴 했으나 그 대가로 오른 팔을 잃은 국가유공자가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겠느냐고 말이다.

우리 가족이 찾아 뵈었을 때 누워 계시던 그 응급실 침대는 그런 소동 끝에 간신히 얻으신 것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주위를 살펴보니 그곳 응급실 안에는 온 지 얼마 안된 사람들인 듯 침대가 아닌 바닥에 누워있는 환자들이 여럿 보였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었다. 진찰 결과 아버지는 중환자실 입원이 필요하다는 결정이 내려졌는데, 병실이 없다는 이유로 무한정 응급실에 대기해야 한다고 했다. 위급한 암환자조차 병실이 없어 입원을 못하고 있는 현실이라는 게 병원 측 설명이었다.

청춘을 불살라 나라를 위해 희생한 국가유공자들이 그런 대우 밖에는 받고 있지 못한 현실이 너무 화가 났다. 특히나 응급실 침대가 부족하다거나 병실이 부족한 게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닌 듯한데 국가유공자들이 노숙자처럼 응급실 바닥을 굴러다니도록 정부에서는 도대체 뭘하고 있었나 싶어 더욱 화가 났다.

그리고 한편으론 이라크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한 고 김선일씨의 경우와 왠지 비교가 돼 속이 상하기도 했다. 국가유공자도 아닌 그에게 쏟아보내지고 있는 정부의 관심과 노력에 비춰볼 때 이곳 보훈병원에서 우리 아버지를 비롯한 다른 국가유공자들이 너무 홀대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무슨 대가 따위를 바라고 그렇게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것들은 물론 아닐 것이지만, 국가유공자에 대한 대우가 이래서야 나중에 나라에 무슨 위급한 일이 생겼을 때 과연 어느 누가 발 벗고 나서 희생을 자처할 지 심히 염려스럽다. 우리 정부의 성의있는 개선노력이 있어야만 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끝으로 이 글이 이런 열악한 병원 환경 속에서나마 성심성의껏 환자들을 돌봐주고 계신 서울보훈병원 의료진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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