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날의 기억

가난은 잠시 불편한 것일 뿐. 어려 울 때 일 수록 품위를 지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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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도영(bgsdy)등록 2004.06.14 11:46
부끄럽게도 밥벌이를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몹시 더운 여름이었다. 배운 것이라고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자존심과 의무적으로 숙달해야 했던 총검술만 배워 가지고 사회에 나온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던 시절. 3백 원짜리 티 하나로 여름을 나던 시절이기도 했다.

축축 늘어진 여름. 지금의 큰 아이가 자리한 제 어미의 배를 본다는 것만큼 답답한 것도 없었다. 아내는 부른 배만큼이나 짜증을 내는 횟수가 잦아졌다. "제발 부탁인데.. 낮에는 어디 좀 나가있다 올래? 낮에 당신의 얼굴을 보고있노라면 질식할 것 같아서 그래."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주머니가 말라붙은 상태에서 친구를 찾는다는 것은 도저히 용기가 나질 않았다. 오라는 곳이 없는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작정 돌아다니는 일 뿐이었다. "당신이 낮에 집에 있으면 동네 사람들볼까 봐 창피해 죽겠다." 라고 하던 아내의 말이 틀린 게 아니라서 열심히 돌아다녔다. 고개는 들 수 없었다. 누군가 나를 알아 볼 수도 있다는 방어본능이 작용하기도 했겠지만, 머리를 들면 엄습해 오는 현기증과 뒷목의 끈적거리는 불쾌한 느낌이 자꾸 땅만 보고 걷게 했다.

그렇게 돌아다니다 들어온 날이면 꿈을 꾸곤 했다. 부대의 연병장이 보이고 다시 복귀하여 병사들을 지휘하는 내 모습이 보였다. 들리는 풍문에 의하면 나의 전역상신이 취소가 되었다고 했다. 아아 그랬구나. 내가 고생하는 것은 꿈이었고 다시 부대로 복귀한 것이 생시였구나. 전역하기 전 받던 월급은 일반 행정직 6급 수준이었다.

그것은 분명 꿈이었다. 지금의 기억에 자리한 그 때가 꿈이었듯이 그 당시에 꾸던 것이 생시라 하더라도 단색으로 남아있는 한 어쩌지 못하는 꿈이 분명했다.

어느 날 아내와 심하게 다투었다. 나의 자존심이 말했다. 그럼 나보고 어디가 서 강도질이라도 하란 말이야! 아내가 그것을 받았다. 흥. 강도질이라도 할 주변머리가 된다면 좋겠다. 그래. 가서 해 와, 돈을 가져오란 말이야!!! 그랬구나. 난 강도만도 못한 인간이었다.


며칠 뒤에 난 공사현장을 찾아 나섰다. 지금의 경인고속도로 중간에 있는 주안 5공단과 가좌동을 있는 육교 건설공사였다. 몰골을 흩어 본 십장이 말했다. 당신, 일할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데. 할 수 있겠어?

그 곳에서 보름을 일했다. 어깨를 짓누르는 철근의 통증보다 땡볕에 헐어 걸음을 더디게 하는 사타구니의 고통이 더 아팠다. 일거리는 많았다. 주간에 이어 야간에도 일하면 두 배를 준다는 괜찮은 조건에 견디고 있었다. 며칠이 지났을까 현장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하청업자가 잡역부의 노임을 들고 잠적했다더라. 소문은 사실이었다. 현장사무소를 점거한 사람들 틈에 끼어 앉아 받을 돈을 계산하는 자신이 한없이 초라했다. 그래도 난 강도는 아니잖아.

그 후 몇 번의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지만 고생이 끝나는 것 같았다. 나는 열심히 노력했고 덕분에 아내는 삼십초반의 나이에 사모님 소리를 들었으니 말이다. 아내가 말했다.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남자라고. 그때 까맣게 잊고 있었던 기억이 살아났다. 흐흐. 나보고 강도질이라도 하라고 했던 여자가. 물론 속으로 한 말이었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난 번 IMF가 터졌을 때 모든 희망을 버렸었다. 정부정책에 따라 운명이 갈리는 내 업종은 아주 박살이 나 버렸다. 아하- 세상은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소용이 없는 건가 보다. 반복에 대한 악몽보다 의지와 상관없이 굴러가는 정책에 대한 불신이 희망을 꺾어 버린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남자로 격상됐던 나는 다시 추락하기 시작했다. 아내가 강도질을 하라고는 안 했지만, 그 말보다 더 무서운 침묵으로 일관했기 때문이었다. 참을 수 없어. 이건 아니야.

어느 날 술을 마셨다. 도로가 45도로 기울만큼 퍼마신 날. 씻김굿을 하듯이 싸웠다. 그 다음 날 아침, 세상에 불을 질러 버리고 싶은 욕망을 누르며 어느 외곽도로로 내달렸다. 군데군데 잔설이 남아있는 틈으로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하는 어느 들판에 차를 세웠다. 심호흡을 했다. 터질 것 같던 심장이 안정을 찾았다. 그때 내부에서 울려오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사람은 어려울 때 일 수록 품위를 지켜야 하는 거야.

지금은 밥은 먹고산다. 이렇게 밥은 먹고 살 게 될 것을 왜 세상 짐 혼자 짊어지고 가는 것처럼 안달을 피웠었을까. 생각하면 혼자 있어도 진땀이 흐른다. 주름이 눈에 띠게 보이는 아내를 보면서 강도질이라도 해 오라던 아내의 마음을 이해한다. 그게 진심이 아니었다는 것을. 가끔 품위를 지키지 못하지만, 늘 생각은 하고 산다. 어려울 때 일 수록 품위는 지켜야 한다는 것을.....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가 올 기억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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