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촛불시위 그리고 민주주의

안병욱과 홍세화의 전격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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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수(jys2003)등록 2004.05.21 10:24

월드컵 세대의 역사적 의의를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안병욱 교수 ⓒ 정윤수



안병욱 : 젊은 세대의 역동성을 진보적 패러다임의 에너지로 바꿔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사실 한국 사회는 이미 질적으로 진보를 향해 가고 있고 젊은 세대들도 이 거대한 흐름에 보조를 같이 하고 있다. 또 그들 나름의 사회의식을 가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시대의 흐름에서, 혹은 젊은 세대의 특성에서 그 나름의 진보성을 읽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무엇인지 서로 식별하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

홍세화 : 붉은 악마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 박노자 교수는 저와 대담하면서 흡사 나치대회를 연상했다고도 말했다. 나는 그렇게까지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것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젊은이들이 얼마나 깊은 억압 상태에 놓여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게 아닌가 한다.

물신주의와 경쟁주의를 질타하는 홍세화 기획위원 ⓒ 정윤수



사회 : '붉은 악마 현상'은 대통령 선거, 파병 반대, 탄핵 촛불 시위 등에 나타난 강렬한 정치 참여 행위와 관련 있는가?

안 : 옛날에는 몇 사람이 성조기를 태우거나 해도 미국은 눈하나 꿈쩍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연약한 촛불시위에 대중적 힘이 실리니까 세계적인 화두가 될 정도로 파급력을 행사했다. 월드컵 이후의 사회 변화를 얘기할 때 바로 이 대목, 광장이라는 공동체의 체험을 나눠가진 열정적인 젊은 세대가 대중적으로 움직인다는 것, 이 점이 중요하다.

홍 : 정치적으로 성숙했다기 보다는 안정적인 물적 토대에서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면서 정서적으로 성숙했다고 본다. 잘 먹고 잘 자란 세대이기도 하다. 그러니 사회적 억압이나 불평등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다. 문제는 뒤틀린 공교육인데, '앞으로 나란히'부터 가르치는 초등학교에서부터 젊은이들은 타율적 질서의식을 내면화하고 있어 안타깝다. 월드컵 때나 그랬지 일상적인 놀이와 축제에서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

사회 : 월드컵 때의 광장과 지난 탄핵 반대의 광장은 어떻게 볼 수 있는가?

안 : 월드컵 때의 붉은 티셔츠가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것이라면 촛불이 자아내는 붉은 빛 분위기는 방어적이고 연약한 느낌을 준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소명의식이 없다면 곧 사그라들 것 같은 느낌이다. 특히 개개인의 손에 들린 촛불은 빛으로 소통되는 연결망의 고리 역할을 하였다. 그러면서도 어떤 강력한 의지의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홍 : 그러나 안타까운 건 더 나가지 못하고 어떤 지점에 멈춰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남하고 싸우는 것을 가르친다. 내면적 성찰을 통한 자기 성숙, 그것을 위한 내적 싸움과 긴장. 이런 점은 찾아보기 어렵다. 자연도 없고, 벗도 없고, 낭만도 없고. 이런 것을 죄다 잃어버린 시대다.

사회 : 그 원인을 꼽는다면?

홍 : 두 가지 큰 요인이 있다. 우선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물신이다. 어떤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 중요하고 이것에 의해 사람이 평가되는 풍조가 문제다. 가령 '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대한민국 1%의 힘' 등의 섬뜩한 광고 문구에 대해 누구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사회다. 그런 광고를 보면서 자란 아이들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게 될지, 절망적이다.

두 번째는 교육과 취업에 대한 비뚤어진 사고방식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딱 두 번 공부한다. 대학입시 때, 그리고 취직할 때. 평생교육까지는 아니더라도 자기 성숙, 자기 완성을 위한 자기 모색의 긴장이 주어지지 않는다. 이런 사회는 서서히 죽게 된다.

안병욱 : 요즘은 인터넷으로 쉽게 지식을 구하고 정보를 얻는다. 자판만 두드리면 정답이 툭 튀어나오는 시대다. 그래서 자신이 획득한 정보가 정말 자기에게 필요한 정보인가 하는 근원적 질문조차 잃어버린다. 인터넷은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데 공동체적 삶을 본질로 하는 인간의 삶으로 보건대 현재의 인터넷은 부정적인 면이 더 많다. 예컨대 대학 교수들이 컴퓨터로 논문을 쓰게 되면서 '더 빨리' 쓰게 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이 이전보다 '더 잘 쓴' 것인지는 의문이다.

사회 : 앞으로 어떤 모색을 해야 하는가?

안병욱 : 우리 역사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걸 돌파해 낸 세대는 언제나 젊은 세대였다. 지금이야 다들 어른이 되고 기성세대가 됐지만 4.19나 5.18도 그 당시 젊은 세대의 희생으로 가능했던 것이다. 요즘의 젊은 세대도 자기 시대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부응하고 있다. 월드컵과 촛불 시위가 그것이다. 젊은 세대들의 잠재력, 역동성, 감수성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치워야 한다. 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도와주기는커녕 걸림돌이 되고 있는 기성 정치권의 무책임, 무능력을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홍 : 무엇보다 사회 구성원의 자기 성찰과 모색을 방해하는 각종 물신들을 부숴 버려야 한다.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현실적인 해결책도 찾기 어렵다. 그러나 어려운 만큼 이를 해결한다면 사회 발전의 엄청난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물신 숭배와 경쟁. 이 두가지로부터 젊은 세대의 맑은 영혼과 정서를 지키고 보호할 수 있다면 젊은 세대는 우리 역사의 큰 자산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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