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있음, 외로움과 벗하라

홀로있다는 건, 외롭다는 건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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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buda1109)등록 2004.05.11 21:30

통도사, 한 수행자의 외로운 만행길 ⓒ 김대현



가만히 생각해 봅시다.
우리가 살아오며 추구하던 그 모든 것들은
내 혼자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습니다.
다른 누군가와 견주어 질 때만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됩니다.

나와 견줄만한 누군가가 있을 때,
내가 (그 보다) 잘생겼을 수도 있고, 똑똑할수도 있고,
명예로울 수 있으며, 부자일 수 있고,
학벌이 좋을 수도 있는 법입니다.

혼자서는 잘나고 못나고도 없으며,
부자와 가난도 없고
아름다움과 추함도, 뚱뚱함과 가냘픔도
학벌이나 명예, 지위가 높고 낮음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진정 혼자일 때
그 어떤 시비분별도 다 끊어지는 것입니다.
그 말은 다시말해
혼자일 때 어디에도 걸리지 않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돈의 많고 적음에, 잘나고 못남에, 높고 낮음, 크고 작음
이 모든 양극단의 판단 분별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입니다.

혼자일 때 답답하고 무기력한 이유는 바로 여기 있습니다.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것을,
혼자서는 도저히 이루어 낼 수가 없기 때문이며,
혼자라는 것은 나를 알아주고 인정해 줄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어떻게 하면 남들보다 더 잘 살고, 남들에게 인정받는지
남들에게 잘 보일 수 있으며,
남들에게 승리할 수 있는지를 교육 받아왔습니다.

그것이 삶을 살아가는 행과 불행을 좌우해 왔습니다.
돈이 남보다 많으면 행복, 그렇지 않으면 불행,
권력이나 지위, 계급이 남보다 높으면 행복, 그렇지 않으면 불행,
얼굴이며 몸매가 남들보다 잘 빠지면 행복, 그렇지 않으면 불행,
학벌이 남들보다 좋으면 행복, 그렇지 않으면 불행,
남들보다 커야하고, 남들보다 잘나야 하고,
남들보다 똑똑해야 세상 살아가는 행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듯 남들에 비해 어떠어떠한
상대적인 행복을 찾는 대에만 익숙해 왔습니다.
남들과 함께 있음으로 ‘나’를 느끼고 맛볼 수 있었습니다.
나는 착하다, 잘생겼다, 똑똑하다, 키가 크다 등 등...
이 모든 ‘나’를 규정하는 판단 분별은 상대가 있어야만 가능한 것들이었습니다.

홀로 있음이란
나를 내세울 수 없다는 말입니다.
‘나’를 내세울 수 없기 때문에 혼자는 괴로운 것입니다.
나를 내세우는 일만 배우고, 그것만을 하며 살아왔는데
그 일에서 한번 떨어져 보라고 하니 무기력해 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혼자있음’의 공부는 상대적인 모든 시비분별을 떠나는 공부입니다.
그러기에 ‘혼자있음’ ‘외로움’이란
가장 빨리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체험적인 공부, 생생한 공부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있을 수 없는 이유는
바로 이 ‘나’라는 놈 때문입니다.
‘나’가 남아 있는 이상 여전히 시비분별은 닦이지 않을 것입니다.

생(生)이 없다면 사(死)는 논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생이 있기 때문에 죽음 또한 생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많은 남들 즉 상대가 없다면
나 즉 혼자라는 것 또한 혼자라고 이름 붙일 필요조차 없게 됩니다.

상대가 없는 ‘나’는 더 이상 나가 아닌 것입니다.
조금 쉽게 말해 이 세상에 오직 ‘나’ 혼자만 있다면
둘 셋이란 말 조차 필요 없을 것이고,
상대라는 말 조차 끊어진 개념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렇기에 혼자있음이란
상대와의 시비분별이 끊어진 자리입니다.
그것을 배우는 일이다보니 혼자있음이 답답하고 무기력해지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배워 온
상대와의 분별 속에서 남들보다 더 나아야 한다는 신념들을
송두리째 뽑아버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수행자는 이겨내야 합니다.
홀로있음에서 오는
그 고독감과 외로움에 당당히 맞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며
시비 분별을 끊어버리는 큰 공부이기 때문입니다.

고성 건봉사, 해질녘 홀로 앉아 외로이 ⓒ 김대현



수행자는 혼자 있음을 배워야 합니다.
수행자는 외로워야 합니다.
아니 혼자있음, 외로움 속에서도
늘 자기 마음의 주인을 확고히 세울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의 주장자 밝게 서 있다면
주장자로 살지 곁가지로 휘둘려 살지 않습니다.
혼자서도 당당하고 떳떳하며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외로움이라는 것은 하나의 상황입니다.
봄이 오면 꽃이 피고 가을이 되면 단풍 지듯
그렇듯 상황 따라 잠시 일어난 인연일 뿐입니다.
결코 우리가 얽매여 외로움에 치를 떨어야 할 그런 경계는 아닙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혼자 왔다가 혼자 가야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사실은 혼자 살고 가는 것입니다.
잠시 부모, 부부, 친구, 친지, 형제, 이웃, 도반과 함께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또한 잠시 조건따라, 우리 업식따라 인연지어진 것에 불과합니다.

함께 하기 때문에 덜 외로운 것처럼 생각하지만
외로움의 근본을 살펴보면
함께 한다고 적어지거나 혼자라고 늘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잠시 없어짓 듯 해도 조건이 맞으면 다시 생겨나는 것이지요.

이런 사실을 바로 깨닫게 되면,
즉, 외로움이라는 것 또한 하나의 상황이라는 것을 바로 알게 되면
그 헛된 마음에 놀아나지 않을 수 있게 됩니다.
상황을 바꾸는 것으로 외로움을 달래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으로 외로움을 달래려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갈 수 있어야 수행자 입니다.
수행자는 외로움과 즐거이 벗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외로움이란 놈의 실체를
가만히 관해 벗겨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혼자인 것을 싫어하지만
어느 한 순간도 혼자이지 않은 때는 없습니다.
올 때도 그랬고 갈 때도 그럴 것이며 살아가는 매 순간 순간이 그러할 것입니다.

혼자 있음,
외로움과 벗해보시기 바랍니다.

외로운 길을 걷는다
외로움은 내 안에 연꽃 한 송이 피어오르게 한다

산다는 건
외롭고 고독한 일입니다.

이렇게 혼자 있을 때
외로움을 느끼지만
오히려 혼자 있음의 외로움은
내 안에 연꽃 한 송이 피어오르게 합니다.

사람들은 말하겠지요.
함께 있으면 외롭지 않다고...

정말 그럴까요?
물론 그럴 거라고 느끼고 실제로 덜 외로울 수도 있겠죠.

그러나 조금 깊이 비추어 보면
함께 하고 있음이
우리의 외로움을 덜어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함께 해도 우린 여전히 외로워요.
가족과 함께 할 때도 우린 외롭고,
친구와 함께 있어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어도
번잡한 군중 속을 거닐 때 에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을 때라도...

그 어느 때라도
그 누구와 함께 있을 때라도
우린
여전히 외롭습니다.

함께 있음으로
외로움을 덜어낼 수 없어요.
그건 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함께 있음으로써
외로움을 달랠 수 있다고 할 때
우린 세상에 속고 있는 것입니다.

외로움을 떨쳐낸 것이 아니라
잠시 덮어두고 있을 뿐이지요.
언제까지 덮어둘 수 있을까요?
덮어두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속고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린 내 안의 참된 고독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차라리
저홀로 외로움을 맞이했을 때
그 때 우리는 외롭지 않습니다.
아니 너무 외로워서 외롭지 않아요.

우린 누구나 외로워야 합니다.
철저하게 저홀로 고독해져야 합니다.

외로움이 싫다고
자꾸 벗어나려 하지 마세요.
그래도 어차피 우린 외로워요.

그럴 바에야
두 눈 똑바로 쳐다보고
외로움을 마주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혼자 있을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에 관심을 바라지 않고,
누군가와 함께 하지 않고,
철저히 혼자가 될 수 있을 때,
그럴 때
우린 비로소 나 자신과 마주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나 자신과 마주하기를 꺼려하고,
자꾸 바깥 세상에 기대를 버리지 않기 때문에
나 자신을 만나질 못해요.

나 자신과의 만남을 이루려거든
먼저 바깥의 관심이며 기대를 다 포기해 버리세요.

바깥으로 치닫는 그 어떤 마음도 다 놓아버리고
철저한 고독과 마주해야 합니다.

나홀로
그 고독 앞에 우뚝 설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고,
그 누구도 함께 갈 수 없어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길입니다.

바로 이것이
참된 의미의 출가입니다.

참된 출가를 하였을 때,
나홀로 고독 앞에 우뚝 서 있을 때,
속 뜰의 본래 향기는
은은하게 피어날 것입니다. / 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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