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성'과 '가벼움'으로 무장한 재미있는 영화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시사회를 보고나서

검토 완료

유영수(grajiyou)등록 2004.04.30 15:09

ⓒ 유영수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대부분의 관객들은 '이게 뭐야, 도대체 뭘 얘기한 거지?'라는 반응을 보이며 허탈해 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엔딩크레딧이 올라오는 순간 객석은 술렁임에 휩싸인다. 전혀 예상치 못한 장면에서 영화가 끝났기 때문이다.

헌준과 문호가 중국집에서 만나 과거를 회상하고 있다. ⓒ 유영수



영화는 대학 선후배 헌준(김태우)와 문호(유지태)가 오랜만에 만나 중국집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미국에 유학 갔다 와 영화감독을 꿈꾸고 있는 헌준의 첫사랑이었던 선화(성현아)에 대한 추억을 끄집어 내며 영화는 과거로의 여행을 떠난다.

ⓒ 유영수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홍상수'라는 개인에 대한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었다. 과연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그리고 이 영화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던 것인지...

코믹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란한 언어유희를 통한 폭소는 이 영화를 보면서 만끽할 수 없다. 애잔한 멜로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카타르시스 또한 이 영화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1시간 20분 정도의 상영시간 내내 관객들은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을 수 있었고 영화의 주제나 제작의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없다. 다만 즐겁게 영화를 보면 그뿐이다.

관객들에게 이런 편안함을 선사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의외성'과 '가벼움'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독특한 캐릭터로 무장되어 그 행동이나 대사들을 통해 보는 이들에게 황당함과 함께 실소를 안겨 준다.

강간당한 선화를 헌준이 샤워시켜 주는 장면 ⓒ 유영수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선화가 대학선배에게 강제로 납치당해 강간을 당했다는 얘기를 듣고 그의 애인 헌준은 '괜찮아?'라고 물으며 바로 여관으로 데려간다. 그리고 깨끗해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녀를 손수 샤워시켜 준다.

이어지는 장면. 헌준은 선화와 섹스를 하며 이렇게 말한다. '나랑 섹스해서 깨끗해지는 거야!'라고. '나 깨끗해지고 싶어. 깨끗하게 해 줘.' 선화는 화답하며 더욱 열정적으로 섹스에 임한다.

선화의 작업실에서 문호의 작업이 이어진다. ⓒ 유영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헌준의 빈 자리에 문호가 비집고 들어와 선화와 사랑을 나누는 장면에서 선화가 문호에게 묻는다. '나 신음소리 내도 돼요?' '신음소리 내세요.' 그러자 선화는 격렬한 신음소리로 동의해 준 문호를 즐겁게 해준다.

이렇듯 영화 속의 주인공들이 내뱉는 대사들은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으며 즐거운 그러나 어이없는 웃음을 주곤 한다.

영화를 다 볼 때까지 편안하게 전혀 머리를 굴리지 않아 되는 반면 영화관을 나오면서부터는 머리 속이 실타래처럼 얽히면서 고뇌에 빠지게 된다. '도대체 이게 뭐야?'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7년만에 조우한 세 사람이 동상이몽에 잠겨 있다. ⓒ 유영수



나를 포함한 거의 모든 남자들은 과거의 여자, 특히 첫사랑에 대한 추억을 평생 간직하고 산다. 특히나 술 한잔 했을 때는 더욱 그 애틋함이 간절해지곤 한다. 그래서 술이 거나하게 취해 옛 애인에게 전화를 하기도 하고 막무가내로 한번 만나자고 요구하기도 한다.

영화 속의 두 남자 주인공 헌준과 문호는 7년전의 애인 선화에 대한 추억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고 그날 밤 선화는 두 남자와 번갈아가며 섹스를 한다. 이 부분에 대해 나는 공감할 수 없었다. 두 남자의 미래는 과거의 여자와의 섹스를 통해서 완성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인지...

문호의 요구에 순순히 응하는 선화 ⓒ 유영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의 주인공 중 나는 문호 역할을 한 유지태를 유심히 지켜 보았다. 처음 스크린에서 그를 보고 나는 전혀 누구인지 알아 볼 수가 없었다. 그 정도로 그는 살이 심하게 쪄 있었고-이 영화의 유부남 역할에 맞는 캐릭터를 위해 유지태는 20kg의 체중을 늘렸다고 한다- 보통 드라마나 영화 속의 주인공들 같은 근육질의 멋진 몸매가 아닌 축 늘어진 군살을 보여 주며 일관되게 영화에서 느낄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의외성'을 관객들에게 던진다.

영화에 대한 심각한(?) 고민을 하며 귀가하던 중 전동차 안에서 방영되고 있는 TV연속극 '결혼하고 싶은 여자'의 대사 한마디가 나를 붙잡는다. '남자는 사랑의 상처를, 낫지 않는 멍처럼 오래 간직하고 산다.'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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