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조선>이 대통령 사과를 요구하고 나서나

[미디어비평]헷갈리는 조선의 논지, 하야→심판수용→대통령 사과→탄핵 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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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민(hanfan)등록 2004.04.19 10:46
<조선>은 헌법재판소인가?

<조선일보>는 헌법재판소를 자임하는가? 오늘 19일자 <조선일보> 논설주간 강석천은 "탄핵 해법은 대통령 사과부터"라는 칼럼에서 "탄핵은 정치적으로 풀고, 정치적 매듭의 출발은 대통령 사과부터"라는 조선일보식 탄핵 심판을 제시하고 있다.

어떤 경우든 탄핵에 대한 정치적 매듭이 필요하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 정치적 매듭의 출발은 대통령 탄핵이 어떻게 여기까지 굴러오게 됐는가를 돌아보고, 지금이라도 시인할 것과 사과할 것을 선선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다. 탄핵 소동의 원인은 대통령이 제공했다. - 강석천 칼럼 중

강 주간은 이번 총선 민의는 해석하기 나름이라며 열린우리당이 152대 121라는 의석수를 내세우며 탄핵 철회를 요구한다면, 한나라당 또한 38.3% 대 35.8%, 불과 2.5%의 정당 투표율 차이를 내세울 수 있을 것이라며 '대변'까지 하고 있다.

탄핵이 국회에 계류 중일 당시,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대통령이 선거법 위반 논란에 대해 '사과'하면 탄핵을 철회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先사과, 後철회'로 알려진 이들의 태도는 많은 국민의 공분을 자아냈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국가 중대사가 사과로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이들의 태도에 수긍하지 못하는 여론이 압도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1달이 지난 지금, <조선일보> 논설주간은 탄핵 주도 정당과 동일한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다.

사설로는 '탄핵심판 승복' 주장, 칼럼으로는 더 강한 주장

지금까지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대하는 <조선일보>의 태도는 크게 두가지로 구분되지만 결과적으로는 탄핵 주도 정당의 입장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시기적으로도 한나라당의 주장 시기와 비슷하고, 그 내용도 무척 흡사하다. 구분되는 두 가지란 사설에서의 주장과 칼럼을 통한 주장에 존재하는 차이를 의미한다.

한나라당이 논평을 내고 탄핵과 관련해 '결자해지는 정동영 의장과 열린우리당이 먼저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곧이어 <조선일보>에서 동일한 주장을 폈고, TV 토론 등에서 한나라당 패널이 열린우리당에 '탄핵심판 승복'을 요구하면 그 다음날 사설에서 이를 이슈화하는 보도 행태가 총선 기간 동안 반복됐다.

<한나라당 대변인 논평>열우당이 여야 대표회담을 여는 이유로 '결자해지'를 내세운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 정동영 의장은 박근혜 대표의 제의를 받아들여 헌법재판소가 어떤 판결을 내려도 승복할 것이며 흑색비방선전을 즉각 중단하겠다는 약속을 국민 앞에 해야 한다. -4월 8일 전여옥 논평 중

<탄핵심판 국민이 납득할 절차로>헌재의 탄핵심판은, 더이상 그것을 뒤엎을 제도와 방법이 없는 마지막 결론을 내는 과정이기 때문에 어떠한 절차적 흠이나 심리의 불충분도 남지 않도록 엄격한 법 원칙에 따라 재판을 진행시켜야 한다. … 그리고 여야는 물론 국민 모두가 냉정하게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기다려 승복하는 자세를 보이는 것이 탄핵심판 이후의 정치적 혼란을 최소화하는 길이다. - 4월 10일 사설 중

총선 정국이 한창이던 지난 11일, 모 방송사의 생방송 TV 토론에 나섰던 한나라당 박세일 선대위원장 등이 열린우리당 패널로 참석했던 김근태 원내대표를 향해 "헌재결정 승복할 것임을 이 자리에서 약속하라"고 요구했다. 김근태 대표는 답변을 유보했는데 그 다음날 <조선일보>는 사설을 통해 김 대표를 비판하며 한나라당의 핵심 주장이었던 '탄핵심판 승복'을 또 다시 요구하고 나선다.

<탄핵심판 승복 약속 왜 안 하나?>열린우리당은 헌재 결정에 승복하겠다고 약속할 경우 이번 총선에서 탄핵 문제가 흐려질까 걱정하는 모양이지만, 그렇게 약속한다고 탄핵이 흐지부지될 일이 아니다. … 한나라당, 민주당도 헌재가 탄핵 소추를 기각할 경우 무조건 승복하고 수용해야 한다. 기왕에 문제가 된 이상 각 정당 모두 헌재 결정에 승복하겠다는 대국민 약속을 발표해야 한다. -4월 12일 사설 중

사설에서는 '승복' 주장을 폈던 <조선일보>는 칼럼을 통해 자신들의 속내를 좀 더 확대시킨다. 김대중칼럼은 탄핵 정국이 한창이던 지난 1달 남짓 동안 몇 차례의 글을 통해 은연 중에 상처입은 대통령을 강조해, '하야'를 주장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김대중칼럼은 <탄핵 이후> <위선정치의 극치> 등에서 탄핵의 국회소추 의결로 이미 대통령은 국정 수행에 어려울 정도의 큰 상처를 입었으며, 대통령이 살아남더라도 그 상처는 이미 치명적이며 그로 인한 분노와 수치심, 자괴감이 어떤 형식으로 우리 사회에 어떤 낙진할 것인지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헷갈리는 조선의 논지, 하야→심판수용→대통령 사과→탄핵 철회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일찍이 한번도 없었던 일이며, 이번 총선에서는 이를 감행한 정당에 대한 국민적인 평가가 이뤄졌다. 탄핵을 주도했던 민주당은 초미니 정당으로 외면받았고, 한나라당 역시 원내 과반 정당에서 제1야당으로 전락했다. 그도 영남이라는 지역 정서를 자극하지 않고서는 얻기 힘든 실적이었다.

한나라당이 '박풍'과 '노풍'으로 잘 나갈 때는, 탄핵 심판 수용을 열린우리당에게 강권했던 <조선일보>는 총선이 열린우리당의 압승 및 과반의석 확보로 귀결되자 '대통령 사과 뒤 탄핵 철회'라는 새로운 카드를 선보이고 있다.

현란한 <조선일보>의 움직임 속에서 그나마 일관적인 태도도 엿보이는데 바로 한나라당 비판에 대한 부분이다. 탄핵과 관련해 <조선일보>는 열린우리당과 대통령에게는 요구사항이 많고, 주장할 사항도 많아 보이는데 유독 한나라당에 대해서는 '강요하는 행동'이 보이질 않는다. 대통령에게 먼저 사과할 것을 주장하는 글에서, 한나라당에게 '선 철회 의사 표명'을 요구할 법도 한데 그런 주장은 찾아볼 수 없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표와 일부 사회단체에서는 정기간행물의등록등에관한법률(정간법)을 선진국 수준으로 손질해서 언론사의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관철할 것임을 강조했다. <서프라이즈> <노사모> 등의 친노 사이트에서는 "<조선일보>와의 전면전을 선포하노라" 등의 구호를 내걸며, 이제는 자력으로 법률을 만들 수 있는 열린우리당을 압박하고 나섰다.

탄핵정국과 총선정국에서 특정 정당의 주장과 지지율 등락에 따라 대통령 탄핵에 대한 입장을 변경해 온 <조선일보>. 이 때문인지 총선이 끝난 지 불과 일주일도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언론 권력'에 대한 관심과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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