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한 십자가

이웃 할머니가 본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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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임숙(asp0606)등록 2004.04.09 15:38
일교차가 심한 날들이다. 일이 밀려서 좀 무리를 했더니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이럴땐 동네 목욕탕 사우나실에서 시간을 보내는게 최고인 것 같다. 작은 동네 목욕탕은 늘 아는 얼굴을 마주치고 마음 편하게 나누는 이야기가 있어서 즐겁다. 젊은 사람이든 연세드신 어른이든 한동네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넉넉한 정이 흐른다.

"어머, 할머니, 안녕하세요."
"어? 그래, 오늘 빨리 목욕하고 시장에나 나가 봐야지."
"무슨 일 있으세요?"
"ㅇㅇ당 대표가 오늘 거기 오잖아. 가서 만나 봐야지."
"아유 할머니, 혹시 돈 받으신거 아니죠. 만약에 그렇다면 50배 물어내야 할걸요? 하하..."

"내가 얼마전에 영화관에서 예수님의 고난을 담은 영화를 봤는데 너무 끔찍했어. 무식하게 큰 십자가 형틀에 달리신 예수님이 심한 고문 때문에 살이 다 찢겨 나가고 그 고문 속에서도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은 그 모습 때문에 모두들 울었지. 영화관은 작은데 화면이 너무 크고 소리도 커서 그랬는지 그 고통이 크게 느껴졌어. 그래서 그날 밤에는 악몽을 다 꾸었다니까."
"할머니 영화하고 오늘 시장에 나가 보시는 거하고 무슨 상관이에요?"

"그때나 지금이나 패거리 정치 때문에 죽는 사람이 많다고 느끼기 때문이지. 성경을 읽어 보면 이 사람이 왕이 되어 몇 명을 죽이고, 저 사람이 왕이 되어 몇 명을 죽이고 하는 반복되는 역사가 있잖아. 패거리가 많으면 무조건 이기는 세상이야. 이게 죄인인 우리 인간이 사는 세상이라구."
"할머니 굉장히 세련되셨어요. 영화 속에서 정치를 보고 흐름을 느끼시는 걸 보니 할머니야말로 웰빙 할머니세요."

"내가 손자 둘을 집에서 키우고 있는데 녀석들이 너무 말을 안 들으니까 때려 줄까 하다가도 그 영화 본 후로는, '아이구, 우리 작은 예수님 예쁘기도 하셔라' 하면서 웃고 만다니까."

돌아오는 주일이 부활절이다.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맑고 화창한 날들이 이어진다. 아, 그리고 오늘은 성 금요일,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돌아가신 바로 그날 고난의 날이다. 아무 죄 없으신 예수님을 생각하다가 할머니 말씀대로 정치판으로 생각이 미친다.

선거가 바로 코앞에 닥쳤다. 이젠 패거리 정치, 머릿수만 많으면 장땡인 정치는 사라졌으면 좋겠다. 맑고 투명하고 순리가 살아나는 그런 정치인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선거날을 기다린다.

유권자들은 어떤 사람을 뽑아야 웰빙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겠다. 바른 마음자세로 오늘은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고 내일은 내일의 정치인을 생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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