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육의 희망을 간직한 학교

[대안학교 이야기] 원경고등학교 방문기

검토 완료

정일관(jasimmita)등록 2004.03.18 18:07

원경고등학교 본관 건물 ⓒ 정일관

구미시중등교감협의회에서 경남 합천군 적중면에 있는 대안학교인 원경고등학교를 견학하기 위해 찾아 간 것은 1월말 경이었다. 며칠을 두고 이어지던 추위가 그 날만은 많이 풀려 초봄 날씨와도 같았다. 방학 중이었지만, 박영훈 교감선생님과 몇 선생님이 방문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적한 시골 마을의 들판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학교는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정성 들여 가꾼 듯한 흔적이 곳곳에 드러나 보였다. 교문을 들어서면서 마주하는 본관은 나지막한 단층 건물이었지만 매우 정갈하게 보였고, 교문 오른쪽에 오층의 붉은 벽돌집 기숙사가 우뚝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방문객 일행을 안내한 과학실에는 떡이며 다과가 준비되어 있었다. 따뜻함이 느껴졌다. 교감선생님이 학교의 현황과 교육 방침에 대해 설명했다. 올해로써 6회 졸업생을 배출한다는 역사와 함께 전국을 대상으로 하여 모집한 구십여 명의 학생이 이십여 명의 교직원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인성교육과 체험학습을 위주로 하는 대안학교인 이 학교의 특징적인 지도 방법에 대해서도 소개를 해 나갔다. 사생활 면에서 통제나 규제는 많이 하지 않는다고 했다. 예컨대 복장이나 두발 염색을 포함해 용모에 대하여 학생 자율을 많이 존중한다고 했다. 복장과 용모가 인간성 문제와 관계있는 것으로 보지 않는 지도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원경고등학교 기숙사 전경 ⓒ 정일관

그 결과 시간이 흐르고 교육의 내용이 쌓여 갈수록 자정 능력이 강화되어 가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개교 초기에는 크고 작은 사고가 매일 터지던 것이 꾸준히 지도한 결과 점차 정화되어 지난 한 해 동안에는 유리창 하나 깨어지지 않았다고 자랑삼아 말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15명의 교사가 교대로 새벽까지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상담을 통해 아이들의 고충을 들어 주는 지도를 해 왔다고 했다. 교육의 힘이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꾸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이어 교육과정을 소개했다. 국민공통교육과정은 일반고등학교와 다름이 없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교과는 학교의 특성화교과라 할 수 있는 '마음공부', '마음일기'라고 했다. '마음'을 교과목으로 삼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학교에서는 아이들을 함부로 규정짓지 않는다고 했다. '문제아'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래 못된 사람은 없다. 마음을 잘 운전하지 못할 뿐이다.'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그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마음공부'를 배우고 가르쳐 내 안에서 행복과 자유를 찾게 하는 것이 교육 목표라 했다.

마음을 바라보고 실현시키고 조사하는 방법으로 일기법을 들고 있다. 일기를 기재한다는 것은 시나 소설처럼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것이 아니라, 마치 간호사가 체온을 기록하듯, 회계원이 금전출납부를 기재하듯이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기록하는 것이며, 무슨 일을 잘 했는가 못 했는가를 밝히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마음의 묘함을 느껴 은혜로운 생활을 열어주기 위한 마음공부 방법이라고 했다.

교감 선생님의 강의에 가까운 설명을 들으면서 내내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많았다. 모두들 알게 모르게 공감과 감동, 혹은 자괴감에 젖어 가고 있었다. 이 곳에서는 인간 중심, 인간 존중의 이념을 바탕으로 인성 교육을 위주로 하고 있는데 비하여, 일반 학교에서는 인성교육을 강조하면서도 사실은 학력 위주의 주지 교육에 교육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통의 학교가 이루어내지 못 하거나 포기하는 교육의 부분을 이 학교가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생각과 느낌이 명치 깊숙이 찔려 오는 듯했다.

일기 모음집 <원경마을 이야기> ⓒ 정일관

지금 원경고등학교 아이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무슨 일을 하고, 무엇을 생각하는 아이들로 변해 있을까? 그들을 만나보고 싶었지만, 방학 중이어서 만날 수 없었다. 그러나 방문 선물로 받은 책 '원경마을이야기'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아이들이 학교의 가르침대로 마음공부를 해 나가면서 쓴 일기를 추려 펴낸 책이다.

많은 양의 일기에서 뽑긴 했으되, 하나하나의 내용에 있어서는 표현이 거칠면 거친 대로, 문장이 어색하면 어색한 대로 조금도 빼고 보탬이 없이 그대로 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교생의 일기는 물론, 선생님과 부모님의 일기까지 실려 있다. 이 학교에서의 마음공부는 학생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의 모든 구성원과 학부모까지 참여하는 공부이기 때문이다.

그 일기 속에는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하는 학교생활을 통해서 겪어 나가는 아이들의 생활 모습과 생각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새로운 체험 세계에 대한 기대와 희망도 있었지만, 그 새로운 세계에의 적응을 위해 겪는 좌절과 절망, 고통과 분노도 있었다. 아이들은 그러한 것을 통해서 '경계'를 찾아 나가는 것으로 마음공부를 해 나갔다.

"…내 자신이 지금 많이 괴롭고 답답하기 때문에 그저 자주 피하려고, 집으로 자꾸 도망 가려고 한다. 내가 왜 이렇게 되는지, 난 정말 비겁한 것 같다. 그게 경계가 된다. 자주 이렇게 도망가려고 하면 안 되는데, 경계를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했는데, 나 요즈음 마음공부를 너무 안 하나 보다."

2학년 어느 학생의 글이다. 아이들은 그 경계의 발견을 통해서 자아를 성찰하고 마음을 다듬어 나가는 것이다.

"…방황 후에 보았다. 그리고는 알았다. 깨달았다. 무엇이 날 불행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날 불행하게 한다는 것, 그리고 날 사랑해 주는 사람이 많이 있다는 것, 난사랑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나니 그 괴롭던 일들이 어느 새 아름답게 변하고 있었다.…"

3학년 어느 학생의 글이다. 이렇듯 꾸준한 마음공부를 통해 '깨달음'을 얻게 되고 그것을 통해 사고와 행동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꾸어 나가게 된다. 그리고 잃어버렸던 가능성을 되찾아 희망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 실제 금년 졸업생들 중에서 취업을 희망하는 소수의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원하는 대학의 학과를 찾아 진학했다고 한다.

마음공부는 아이들만 변해 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도, 부모도 변하게 했다. 아이들에게 '마음공부'를 가르치고 있는 교감선생님은 이렇게 적고 있다.

원경고 박영훈 교감 ⓒ 정일관

"종석은 강렬하게 나를 질타한다. 교감은 간데없고 온통 마음공부밖에 없다고 한다. 교감을 하나 새로 데려오던지 마음공부 전문교사로 나서든지 해야 할 것 같다는 종석. 우∼와 찐하다! 묘-하게 얻어맞으면서도 시원하다. 그런 얘기를 속 시원하게 말해 주는 종석이 고맙고 반성되며, 그런 점이 필요하겠고 더 보충을 해서 힘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공부는 사람의 마음을 이토록 너그럽고 선량하게 하는 것일까. 학부모들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로서의 기대감이 너무 컸나보다. 처음 학교에 올 때 건강한 마음과 착하게만 생활해 달라고 사정해보고 가슴에 애간장도 많이 태웠다. 이제는 나 자신부터 욕심을 버리고 아들의 주관을 이해해 주고 보조자 역할만 열심히 해주면 스스로 주체를 깨닫게 될 것이라 믿는다.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다."

아들에 대한 이해를 통하여 마음의 평화를 얻어 가고 있다. 마음을 어떻게 가지느냐에 따라 사람의 생각과 행동이 이처럼 달라질 수 있는 것을 보면, 행복은 바로 마음 속에 있는 것임을 절감할 수 있게 한다.

학교 시설을 안내했다. 학생수가 적기 때문에 규모는 작지만, 과학실, 도서실, 가사실, 토론실 등 특별교실이며, 교과교실이 아담하게 꾸며져 있었다. 원목을 잘라 양각으로 '나랏말(국어실)', 메스러브(수학), '역사와 인간{역사실)', '흙사랑(농업실)' 등으로 실명(室名)을 새겨 붙인 것이며, 유익하면서도 아기자기하게 꾸며 놓은 실내 장식이며, 책걸상과 교구를 배치해 놓은 것 하나하나에 선생님들의 따뜻한 관심과 사랑이 여실히 배어 있는 것이 느껴졌다.

원경고 제 6회 졸업생들 ⓒ 정일관

지금 나라에서는 사교육비 절감을 위해 고심하고 있다. 학교에 보충수업을 허용하고 방송교육을 활성화하여 학교 밖의 과외를 학교 안으로 끌어들여 사교육비를 줄이겠다는 대책을 내 놓고 있다. 이러한 시책이 성공하여 사교육비는 줄일 수 있을지라도 교육의 본질은 해결해 주지 못한다. 교육의 목적은 자라나는 아이들로 하여금 바람직한 인격을 형성하여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있다. 지금 교육 정책 당국과 학교에서는 그러한 목적을 위해 교육력을 모으고 있는가.

마음공부를 통해 행복을 가꾸는 대안학교 '원경고등학교'야 말로 교육의 본질에 충실한 학교로서 우리 교육의 희망을 간직한 학교라는 사실에 공감하며 학교를 나설 때, 교문 옆 플라타너스 가지 위에 푸른 하늘에서 내려온 하얀 햇살이 곱게 얹혀 있었다.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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